섬진강 15_김용택
산 사이
작은 들과 작은 강과 마을이
겨울 달빛 속에 그만그만하게
가만히 있는 곳
사람들이 그렇게 거기 오래오래
논과 밭과 함께
가난하게 삽니다.
겨울 논길을 지나며
맑은 피로 가만히 숨 멈추고 얼어 있는
시린 보릿잎에 얼굴을 대보면
따뜻한 피만이 얼 수 있고
따뜻한 가슴만이 진정 녹을 수 있음을
이 겨울에 믿습니다.
달빛 산빛을 머금으며
서리 낀 풀잎들을 스치며
강물에 이르면
잔물결 그대로 반짝이며
가만가만 어는
살땅김의 잔잔한 끌림과 이 아픔
땅을 향한 겨울 풀들의
몸 다 뉘인 이 그리움
당신,
아, 맑은 피로 어는 겨울 달빛 속의 물풀
그 풀빛 같은 당신
당신을 사랑합니다.
- 김용택, ‘섬진강 15’
겨울 달빛 속의 물풀.
볼 순 없지만, 느낄 수 있는 네 마음은 아마 풀빛 일거야.
시린 겨울 달빛 받아, 제 몸 가득 머금은 물빛만큼이나 투명해진 물풀.
그 풀빛을 닮은 네가,
조용히 마음 안에 들어온다.
미소로 수줍은 사랑을 말한다.
미소도 투명한 물빛, 풀빛이다.
기꺼이,
가장 내밀한 공간을 내어 준다.
네 빛에 물들어 나도 함께 환히 비친다.
빛난다.
맑아진다.
가벼워진다.
사랑은,
그렇게, 구름 위를 걷고 있다.
그렇게, 의식할 새 없이 서로를 비추며 물들고 있다.
그렇게, 가늠할 수 없이 깊어지고, 넓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