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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an Apr 27. 2017

잔상

What happened in Australia



저녁 8시 경 일몰 풍경이 한눈에 들어오는,

이 집에서 바람이 가장 잘 드는 곳, 테라스에 나가면

위로는 맑게 갠 아름다운 하늘, 아래로는 기분까지 정돈되는 말끔한 정원이 보인다.

취한다_라는 말이 제법 어울린다.

보이는, 보이지 않는 자연들이 온몸의 촉수를 간질인다.



그러나 한편.

외면하고 싶은 것들도 눈앞에 클로즈업된다.

전면의 낡은 건물, 외관이 흉하다.

순간적으로 불쾌함이 든다.

내가 서 있는 이곳과는 너무나 이질적인 것이 눈앞에 있다는 사실이 거부감을 준다.

눈으로, 마음으로 선을 긋는다.

외면한다.


그러다 문득, 건물 안에 순간적으로 스치는 물체, 아니 사람을 발견한다.

세상에나! 사람이 살고 있구나.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본다.

미간을 좁혀 눈에 잔뜩 힘을 준 채 건물 안 사람들을 관찰한다.


고양이를 안고 소파에 앉아 졸고 있는 할아버지,

테이블에 둘러 앉아 담소를 나누는 엄마인 듯, 딸인 듯, 모녀,

거실에 내의만 걸친 채 누워있는 중년의 남자,

.

.

.

어느새 낡은 건물의 창은 액자가 되고, 액자 속 그림들이 살아 움직인다.

깊이 들여다봐야 비로소 볼 수 있는 것들이 있다.

잘 보이지도, 잘 들리지도 않지만, 모두가 조용히 잘 살고 있다.

손을 뻗어 닿을 리 없는, 계절이 다른 이곳에서도 모두가 여전히 잘 살고 있다.

정겹고 평화로운 그림들이 사는 이곳에서 내내 잘 살고 있다.


여기는 무엇이든 아름답고 멋있는 것들로 가득 차 있어. 그것도 의도적으로 만들어 낸 아름다움이 아니고 풀이나 나무나 연못이나 새나 동물이나 벌레나 구름이나 대지가, 그리고 공기가, 모두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지극히 자연스럽게 제각각 자신들의 아름다움을 드러내지 않고 소박하게 매일매일을 살아가고 있는 것이.......
         - '얀이야기_5. 얀과 콩새의 이야기'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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