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_ 18 : 리스트뱐카, 바이칼 호수
20170206, 바이칼 호(湖), 호버크래프트, 안가라(앙가라) 강
마을을 살짝 둘러본 다음 바이칼 호수로 향했다. 지구 위 최대 담수량을 자랑하는 엄청나게 넓은 호수답게 바다로 착각할 수도 있을 것 같을 정도였다. 저 멀리 수평선 근처에 육지가 보이는 것 같기도 하지만 그 정도가 워낙 희미해서 없는 듯하다.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이미 얼어붙은 바다를 보았기는 했지만 그것과는 또 다른 느낌이다. 거기는 눈이 거의 안 쌓여있었지만 얼음이 상당히 뿌옇고 표면이 울퉁불퉁하게 불규칙적이었다. 반면 여기의 얼음은 상당히 투명하면서 표면이 매끄럽고 평평했다.
호숫가로 다가가니 신기한 광경을 목격할 수 있었는데, 얼음이 조각나서 융기된듯한 광경을 목격할 수 있었다. 자연이 만들어낸 기하학적인 풍경이 상당히 아름다웠는데, 정말 말로만은 설명할 수 없을 정도로 장관이었다. 두꺼운 유리 파편들이 잔뜩 쌓여있는 모습 같기도 하고, 조각난 판 형태의 보석이 흩뿌려진 것 같기도 하다. 절단면이 깨끗한 큰 얼음에서는 담청빛이 살짝 났는데, 푸르스름(Blue)하면서도 에메랄드 빛이 살짝 도는 것이 정말 청아한 모습이었다.
왜 이런 식으로 형성된 것인지 알 수 없지만 얼면서 부피가 커짐에 따라 그렇게 된 것이 아닐까 조심스럽게 추측만 해본다. 궁금해서 살짝 검색해보았지만 해답을 찾을 수 없었다. 좀 더 제대로 찾아보고 싶었으나 환경이 환경인지라 엄청 추웠기 때문에 폰을 오랫동안 꺼내 들고 있을 수 없었으며, 특히 배터리 잔량이 50% 이상이었는데도 저온으로 인해 전원이 계속 꺼졌다. 아이폰이 추위에 특히 약하다고 하더니만 다른 폰은 괜찮은데 내 폰만 자꾸 꺼진다. 리튬 이온 전지가 추위에 약하다고는 하지만 이 녀석만 좀 유별난 것 같다.
그런데 정말 춥기는 엄청 추웠다. 이번 여행 중에서 체감 상 제일 추웠던 곳이 여기라고 생각한다. 이후 영하 30도를 우습게 넘어가는 곳도 지나가긴 했지만 거기는 바람이 거의 안 불었던 반면, 여기에서는 강하지는 않아도 지속적으로 바람이 불었기 때문에 엄청 춥게 느껴졌다. 그래서 손이나 전자기기를 오랫동안 밖으로 내놓고 있을 수 없었으며, 다리는 마치 가벼운 동상이 걸리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겨울의 바이칼은 역시 방한대책을 확실히 세우고 다녀야 할 것 같다.
이러한 풍경은 호수 가장자리를 따라 계속 이어져 있었는데, 얼음 조각이 얇은 것도 있는가 하면 두꺼운 것도 있어 상당히 다채로운 양상을 보여주었다. 얇은 얼음 조각들은 정말 유리가 깨진 조각처럼 보였기 때문에 왠지 위험해 보였다. 선단공포증이 있는 사람들은 그 구간을 지나기 상당히 어려울 것 같다. 반면 두꺼운 조각들은 그 빛깔이 아름다워 투명한 보석 같기도 했다.
가다 보니 바이칼 호 한가운데를 향해서 걸어가는 사람을 발견할 수 있었는데, 무엇을 하러 가는지는 모르겠지만 무거운 가방을 메고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단순 탐험을 위해서인지, 아니면 낚시를 하기 위해서인지 알 수 없었지만 그 모습만큼은 상당히 멋있었다. 나도 호수 한가운데로 가보고 싶기는 했지만 걸어서 갈 엄두는 전혀 나지 않았는데, 거리가 엄청났던 것도 있지만 준비를 잘 하지 않은 상태에서 안 좋은 상황이 발생할 경우 구제될 단서가 거의 없다시피 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아름다운 경치를 구경하면서 호숫가를 걸어가다보니 마을로 돌아가는 길이 나왔다. 그쯤 되니 이전까지의 독특한 광경은 볼 수 없었고 마을에서 주로 볼 수 있던 평평한 모습이 나왔기에 그냥 마을로 향했다. 잠깐 산책을 한 덕에 마을 중심지에서는 볼 수 없었던 진기한 풍경을 볼 수 있어서 좋은 기회였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렇게 끝내는 것만으로는 아쉬웠기에 호버크래프트(공기부양정)를 타고 바이칼을 한 번 둘러보기로 하였다. 여행사를 통해 예약하여 탑승하는 방법도 있지만, 가볍게 즐길 거라면 그냥 호버크래프트가 모여있는 곳에 가서 넌지시 물어보면 된다. 사람이 없는 것 같아도 가까이 가서 부르면 안에서 사람이 나온다. 가격을 물어보니 언어가 잘 통하지 않으므로 바닥에 쌓인 눈에다가 숫자를 그려서 가격을 알려주었는데, 역시 아라비아 숫자가 편리하다는 것을 다시 느끼게 되었다. 가격이 조금 있는 편이었는데, 부담이 된다면 여러 명이 모여서 탑승하는 편이 나을 것 같다.
타서 앉으니까 굉음을 내기 시작하면서 서서히 앞으로 나아가기 시작한다. 호버크래프트를 어릴 때부터 말로만 들었지 실제로 타본 것은 처음이었는데, 시끄럽다고 하더니 역시 시끄럽다. 그래도 귀가 찢어진다거나 할 정도는 아니고, 예초기를 틀어놓은 듯한 정도다. 속도는 생각보다 빨랐는데, 그런 속도로 호수를 가로지르니 상당히 상쾌한 기분이다. 마음 같아서는 밖에 나가서 앉아보고 싶었지만 그랬다가는 몸이 날아가는 건 둘째치고 추위에 얼어붙을 것 같다.
호버크래프트는 안가라(앙가라) 강을 향해 질주했는데, 오른쪽으로는 리스트뱐카(리스트비안카)의 전경을 볼 수 있었다. 가까이서 볼 때에 비해 호수의 장대함과 뒤의 높은 산 때문에 훨씬 더 소박하게 보이는 느낌이다. 그러면서도 참 길쭉한 마을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는데, 호버크래프트로 한참을 가야 마을 끝을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윽고 안가라 강과 바이칼 호수가 만나는 곳 근처에 도달했는데, 호수 쪽은 표면이 얼어있었지만 강 쪽은 표면이 얼지 않은 채 거칠게 흐르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고, 얼어있는 부분도 그 두께가 그러데이션과 같이 멀수록 얇은 것처럼 보였다. 정적인 모습과 역동적인 모습이 만나는 경계선이라는 점이 참 신기했다.
그렇게 한동안 달리다가 살짝 호수 쪽으로 들어오더니 호버크래프트를 멈추었다. 그리고 문을 열어 잠시 바깥에 내려서 구경할 수 있게 해주었는데, 아마 가장자리 쪽은 위험할 수 있기에 조금 안쪽으로 들어온 듯하다. 하긴 바깥쪽은 얼음 아래의 물이 비쳐 보이는 듯할 정도로 얇아서 잘못하면 얼음이 깨져 빠질 수 있을 것 같기도 하다.
호수 한가운데는 앞서 산책하면서 본 울퉁불퉁하게 솟아오른 부분은 찾아보기 힘들었고, 엄청 평평하게 얼어있는 모습이었다. 눈으로 덮인 드넓은 평지가 펼쳐져있는 모습을 보니 정말 시원한 기분이 들었고, 눈이 없었다면 도대체 어떤 풍경이었을지 상상도 해보았다. 바닥의 눈을 살짝 치워보았는데, 발 밑으로 얼음이 아주 두껍게 얼어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자잘한 금도 가있지 않은 데다 매우 투명하면서도 엄청 딱딱한 느낌이라 오히려 이질적이었다.
주변 풍광을 만끽한 다음 다시 호버크래프트에 탑승하여 원래 장소로 되돌아 갔다. 요금은 처음 장소로 돌아간 다음 현금으로 지불하였다. 여유가 많다면 오래 동안 바이칼 깊숙이도 둘러보고 싶다. 중간에 솟아오른 얼음 장애물이 없다면 차량으로도 갈 수 있을 것 같기도 한데, 직접 운전해서 가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을 것 같기도 해서 호버크래프트를 빌리는 편이 나을 것 같다.
당일치기가 아닌 덕분에 해가 중천이 아닐 때의 바이칼도 볼 수 있었는데, 어스름의 붉게 물든 하늘 아래 어둠이 깔린 바이칼은 또다른 매력을 내뿜었다. 대조되는 느낌의 색이 아름답게 조화를 이루고 있으니 정말 아름다웠다. 같은 장소라도 시간의 흐름에 따라 정말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마음에 들었다.
해가 떠오를 때의 바이칼 또한 고운 빛이 얼음과 눈을 통해 반사되어 상당히 온화하면서도 밝은 풍경을 만들어 주었는데, 안타깝게도 사진으로 남은 것이 없어서 올리지 못해 아쉽다. 피곤하더라도 살짝 이르게 나와서 잠깐이라도 볼 가치가 충분히 있다고 생각한다.
이번에는 리스트뱐카에서 바이칼을 보았지만, 다음에는 다른 곳에서도 보고 싶다. 워낙 넓은 호수인 터라 보는 장소에 따라 그 느낌이 상당히 다르다고 하던데, 올혼(Ольхон, Olkhon) 섬에서 보는 것이 참 괜찮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다. 다만 요즘에는 그곳이 상업화가 많이 되어서 예전의 멋이 상당히 사라졌다고 하던데, 더 사라지기 전에 방문해보고 싶다.
호버크래프트까지 탄 뒤 호텔로 돌아가 잠시 쉬고 몸을 녹인 다음 저녁을 먹으러 갔다.
설명에 ⓒ가 붙어있는 사진과 타이틀만 직접 찍은 것입니다.
출처 1 : ⓒ OpenStreetMap contributors. https://www.openstreetmap.org/copyright 참조. 편집은 직접 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