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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애니 Oct 04. 2023

소소한 일상 2

찜닭


 ‘얘가 정말 내 아들 맞나?’

 식당으로 들어서며 자꾸 아들을 쳐다봤다. 지금껏 살갑기만 했던, 그래서 휴대폰 속에 ‘살인미소 성실맨’으로 저장된 아들이었다. 복잡한 내 속을 아는지 모르는지, 아들은 자리에 앉자마자 익숙하게 찜닭을 주문했다.

 “여기, 우리 학교 앞에도 있는데 진짜 맛있어요!”

 “그래?”

 난 행여 속내를 들킬까 봐 슬쩍 웃으며 물었다.

 “예은아, 너도 좋아하니?”

 “엄마, 얜 아침저녁으로도 먹을 수 있을 걸요! 이 집 찜닭, 되게 좋아해요!”

 예은이가 미처 입을 떼기도 전에 아들이 대답했다. 예은인 웃음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그랬구나! 저 아이가 좋아하는 거였구나!’

 그제서야 이 집으로 들어온 이유를 알았다.

 난 육식을 안 좋아하기도 하지만 닭과 관련된 음식은 유난히 싫어해서 달걀 프라이도 안 먹었다. 어린 시절, 재래시장 닭집에서 들리던 처참한 닭들의 아우성과 닭의 멱을 따던 주인의 살기 어린 눈빛에 질려 지금껏 입에 대지 않던 차였다. 그래서 나에게 닭고기를 먹게 하는 사람과 결혼하겠노라 호언장담하기도 했다. 지금도 집에서 식구들이 치킨을 시켜 먹을 때면 난 따로 밥을 차려 먹는다. 아들이 모를 리 없다. 그런 내게 찜닭을 먹자고 하다니!

 음식을 기다리며 내 앞에 앉아 있는 아이들을 물끄러미 쳐다봤다. 뭐가 그리 좋은지 둘은 계속 시시덕거리는 게 여기, 진주에 왜 왔는지조차 잊은 듯했다. 까까머리도 낯설었지만 아들의 이런 모습은 더욱 낯설었다. 세 시간만 지나면 군대라는 울타리 속에 갇힐 녀석이 저렇게 속없이 웃고 있다니! 아니, 엄마 식성도 까먹고 있다니!

 찜닭이 나오자 아이들의 눈이 반짝거렸다. 맛있겠다고도 했다. 하지만 난 거무튀튀한 국물이 영 거슬렸다.

 “엄마, 맛있어요. 얼른 드세요.”

 선뜻 수저를 들지 않자 아들이 재촉했다. 아차 싶었다.

 “그래, 맛있어 보이네. 먹자. 예은아, 많이 먹어!”

 나는 앞접시에 감자와 양파를 골라 거무튀튀한 국물과 함께 담았다. 아이들은 서로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큼직한 고기를 골라 상대방에게 주느라 정신이 없었다.

 ‘예은이가 잘 챙기는구나!’

 갑자기 코끝이 뜨거워졌다. 뭔지 모를 감정이 치밀어 올랐다. 더 앉아 있을 수가 없어 화장실로 자리를 피했다. 한쪽 가슴이 욱신거렸다.


 식사를 마쳤는데도 소집 시간까지 좀 여유가 있었다. 식당을 나서니 경상대학교가 보였다.

 “둘이 저기 한 바퀴 돌고 와. 시간이 될 것 같은데?”

 난 아주 세련된 엄마 흉내를 냈다.

 “엄마도 같이 가요!”

 ‘마음에도 없는 소릴 하네!’

속마음을 들킬까 봐 재빨리 대답했다.

 “아냐, 엄만 커피 한 잔 마셔야겠어. 오늘 한 잔도 못 마셨더니 힘들어.”

 더없이 쿨한 모습으로 아이들을 밀어내고 편의점에서 믹스커피를 한 잔 샀다. 왠지 달달한 커피를 마셔야 할 것 같았다. 한 손에 커피를 들고 편의점을 나서는데 저 멀리 두 아이가 손을 꼭 잡고 가는 모습이 보이더니 이내 사라졌다. 나는 그 자리에 우두커니 서 있었다. 이상하게 믹스커피에서 쓴 맛이 났다.


  부랴부랴 아이들과 택시를 타고 훈련소로 갔다. 늦지 않았다고 했는데도 택시 기사가 사정없이 달렸다. 택시 안에서 몸이 이리저리 흔들렸다, 내 마음처럼!

  훈련소 앞은 사람들로 가득했다. 수많은 까까머리들이 떼 지어 우왕좌왕하고 있었다. 아들은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허세를 부리며 예은이와 내게 인사하고 까까머리들 속으로 사라졌다.

 ‘내가 없었으면 둘은 어떤 이별을 했을까? ’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옆에서 커다란 울음소리가 들렸다.

 ‘촌스럽게! 도대체 어떤 엄마가 울고 있는 거야?‘

 하고 고개를 돌렸다. 이런! 아저씨가 엉엉 울고 있었다. 아니, 꺼이꺼이 소리를 내며 통곡을 했다.


  예은이를 먼저 고속버스에 태워 보냈다. 그 아이 집이 서울이 아니라 다른 차를 타서 다행이다.

  강남터미널에 도착하니 남편이 기다리고 있었다. 9시가 다 되어 갔다. 눈앞에 보이는 아무 식당이나 들어갔다. 음식을 기다리는데 왈칵 눈물이 쏟아졌다.

 “오늘 점심에 뭐 먹었는지 알아? 찜닭 먹었어, 찜닭! 예은이가 좋아한다며 그놈이 앞장서 들어가더라!”

  속사포같이 내뱉는데 자꾸 눈물이 났다. 훈련소에서 본 그 아저씨가 그랬던 것처럼 나도 소리 내서 엉엉 울었다. 꾸역꾸역 울음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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