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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애니 Oct 19. 2023

소소한 일상 3

말의 힘

  “어머, 너 안경이 어울리네! 안경 쓰니까 눈이 작은 줄 모르겠다! “

  4학년 때였다. 놀러 온 이모의 안경을 장난 삼아 썼는데 엄마가 대번에 어울린다고 했다. 평소에 엄마는 내게 아빠를 닮아서 눈이 작다느니, 웃으면 눈이 있는 줄도 모르겠다느니 하면서 놀려 댔다. 엄마 눈은 쌍꺼풀이 있는 커다란 눈이었고, 아빠는 외까풀의 평범한 눈이었다. 놀리는 엄마의 말을 들을 때마다 난 움츠러들었고 사진을 찍을 때면 일부러 웃지 않았다, 작은 눈이 신경 쓰여서. 하지만 엄마는 그런 내 속도 모르고 생각날 때마다 내 눈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했다. 그런데 안경이 잘 어울린다니! 게다가 눈이 작은 줄 모르겠다고 하지 않는가!

  당장에 안경을 쓰고 싶었다. 하지만 내 시력은 양쪽 다 1.5! 안경을 포기할 순 없었다. 난 어두운 곳을 골라 책을 읽기 시작했다. 버스 안에서도, 길을 걸으면서도 책을 읽었다. 워낙 책을 좋아했기에 엄마는 별로 신경 쓰지 않는 듯했다. 오히려 책 좋아하는 아이라며 대견해하기까지 했다.

  눈이 나빠지게 심혈을 기울이던 중, 학교에서 신체검사를 했다. 물론 시력검사도 했다. 난 잘 보이는 글자도 일부러 안 보이는 척했다.

  “0.5, 0.8! 눈이 나쁘네. 엄마한테 안경 써야 한다고 말씀드려!”

  그날로 안경을 맞춰 쓰기 시작했다. 하지만 내 기대와 달리 안경 렌즈 속의 내 눈은 점점 작아져만 갔다. 한번 나빠지기 시작한 시력에 가속이 붙어 안경 렌즈도 점점 두꺼워졌기 때문이다. 거울 속의 내 눈은, 아니 기억 속의 내 눈은 그렇게 늘 작았다. 결국 사진 속의 나는 언제나 화난 모습이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에 들어가면서 콘택트렌즈를 끼기 시작했다(안경을 쓰면 아무리 예쁜 옷을 입어도 옷태가 잘 안 나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렌즈가 눈에 잘 안 들어가 애를 먹을 때면 작은 눈을 탓하기도 했다. 그러다 연애를 시작했다.

  “너, 눈이 참 크다!”

 이 사람이 놀리나? 난 발칵 화를 냈다. 비꼬는 거냐고. 깜짝 놀란 그는 거듭 진짜라며 거울 좀 보라고 했다. 렌즈를 끼느라 매일 거울을 봤지만 단 한 번도 눈이 크다고 생각한 적이 없었다. 당연히 날 놀리는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날 이후로 거울을 볼 때마다 내 눈이 커 보이기 시작했고 눈이 크다는 말도 종종 들었다.

  장난기 쏙 빼고 제일 친한 친구에게 물었다.

  “내 눈이 커, 작아?”

  느닷없는 질문에 친구는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눈 크다고 자랑하니? “

  그때부터 사진 속의 나는 늘 웃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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