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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애니 Oct 31. 2023

소소한 일상 4

아가미


 “오늘 장인어른 생신이니 특별히 잘 부탁드립니다.”

 “안 그래도 오신다고 하길래 자연산 실한 놈들로 준비해 뒀습니다. 입에 맞으실 거예요. “

 모처럼 이모네 가족과 외식한다고 해서 달뜬 마음으로 갔더랬다. 형제가 없던 나로서는 외식보다 사촌동생들을 만나는 것이 더 좋았기 때문이다.

 그 식당 이름은 기억이 안 나지만 좀 특별해 보였다. 테이블이 하얀 주방장 모자를 쓴 아저씨를 둘러싸고 있어 우리는 나란히 앉아야 했다. 나는 당연히 1살, 2살 터울인 사촌동생들 옆에 앉아 음식을 기다렸다. 시간이 조금 지나자 주방장 모자를 쓴 아저씨가 음식들을 하나씩 내주며 이름을 말해 주었다. 하지만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엄마는 이런 곳은 또 언제 올지 모르니 주는 대로 많이 먹으라고 했다. 그때였다. 아저씨가 어디선가 생선 한 마리를 들고 우리 앞으로 왔다. 아저씨가 두 손으로 힘껏 잡고 있는데도 어찌나 펄떡거리는지 나도 모르게 의자를 뒤로 빼 멀찍이 떨어져 앉았다. 동생들은 오히려 큰 구경거리라도 생긴 양 고개를 쭉 내밀고 아저씨를 쳐다봤다.

 아저씨는 발버둥치는 생선을 도마에 놓고 한 손으로 누르더니 냅다 칼등으로 생선의 머리를 내리쳤다. 펄떡거리던 생선이 조용해졌다. 동시에 식당 안도 조용해졌다. 아저씨는 날카롭게 빛나는 칼로 생선 배를 갈라 내장을 꺼내고 뼈에서 살을 분리해 냈다. 나는 차마 침도 못 삼키고 그 광경을 쳐다봤다. 몸에서 내장이 꺼내지고 살이 발라지는데도 생선의 아가미는 계속 들썩거렸다. 잘리지 않은 꼬리지느러미도 꿈틀거렸다. 도마 위에 놓여 있는 생선의 눈과 마주쳤다.

 ”차라리 날 죽여줘! “

 주방장 아저씨는 검은 접시에 생선 모양을 그대로 살려 회를 담아 주었다. 동그란 눈을 뜨고 힘겹게 들썩거리는 아가미 옆으로 날렵하게 썰린 살점들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맛있게 드십시오! 싱싱해서 씹는 맛이 일품일 겁니다!”

 아직 가늘게 움직이는 아가미 옆으로 젓가락들이 바쁘게, 아니 우악스럽게 오갔다.

 “정말 싱싱한데? 엄청 쫄깃해!”

 다들 정신없이 먹어 댔다. 하지만 난 젓가락을 들 수가 없었다.

 “얼른 먹어. 동생들 봐라, 얼마나 잘 먹니?”

 엄마가 입맛을 다시며 독촉했다. 그러고 보니 동생들도 끊임없이 입을 오물거리며 젓가락질을 해댔다.

 “어? 응, 먹을 거야……”

 난 작은 살점을 하나 집어 입에 넣었다. 하지만 씹고 또 씹어도 삼켜지지가 않았다. 다들 맛있다고 하는데 내겐 단물 다 빠진 뻣뻣한 풍선껌처럼 느껴졌다. 질겅질겅 씹으며 접시를 보니 생선의 아가미가 더 이상 움직이지 않는다.

 아저씨가 또 다른 생선을 가지고 와서 손질을 시작했다. 난 밥을 푹 떠서 된장국에 말았다. 그리고 후루룩 소리를 내며 고개를 처박고 밥을 먹었다.


 아주 오래전 일이지만 그 생선의 처절한 눈을, 가늘게 움직이던 아가미를 잊을 수가 없다. 난 특별히 동물을 사랑하는 사람이 아니지만 그 뒤로 ‘회’라는 단어가 붙는 음식은 근처에도 못 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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