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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애니 Jan 19. 2024

소소한 일상 11

동굴에 남다

 엄마가 숟가락을 들다 말고 냉장고에서 요구르트를 꺼내 왔다.

 “왜? 입맛이 없어?”

 “아니, 입 헌 게 아파서 못 먹겠어.”

 모처럼 집에서 아침을 먹을 때였다. 주중엔 일하느라, 주말엔 놀러 다니느라 바빠 엄마가 아픈 줄도 몰랐다. 하긴, 알았다 해도 그러려니 했을 것이다. 엄만 원래 입병이 잘 생기니까. 그런데 이번엔 느낌이 이상했다. 밥을 우물거리며 엄마의 입안을 들여다봤다. 동굴 같은 입 속에 하얗고 몽글몽글한 것이 몰려 있었다. 작은 콜리플라워 같다고나 할까. 언뜻 보기에도 징그러웠다.

 ”그렇게 아프면 병원에 가지 그랬어? “

 난 인상을 쓰며 말했다.

 “안 그래도 갔었는데 의사가 대학병원에 가보라고 하더라. 너무 오래간다고. 그래서 예약해 놨어. 같이 갈 수 있니?”

 가슴이 철렁했다. 입병인데 대학병원으로, 그것도 우리나라 최고 중의 하나인 ㅇㅇ대학병원으로 가라고 했다니!


 중년을 넘긴 듯한 의사는 엄마의 입 안을 한참 보더니 레지던트에게 이것저것 지시를 했다.

 ‘우리말로 얘기하면 어디가 덧나나?’

 한 마디도 알아들을 수 없는 말에 짜증이 났다. 검사 결과가 나오면 다시 보자며 의사는 자리를 떴다. 불친절한 의사의 태도가 거슬려 엄마 손을 슬쩍 잡았다. 겨울이었는데도 엄마 손은 땀으로 축축했다. 온갖 검사를 거친 후 마지막이라며 레지던트는 엄마 입에서 조직을 떼어내겠다고 했다. 나는 차마 못 보고 고개를 돌렸다. 엄마의 입에서 가늘게 신음 소리가 났다. 돌아보니 엄마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했다.


 “설암입니다. 초기이긴 하지만 혀를 2/3 가량 절제하는 게 최선입니다. 빨리 수술하지 않으면 1년을 넘기기 힘듭니다. 수술 날짜를 잡고 가세요.”

 그 뒤로도 뭐라고 설명을 하긴 했지만 내 귀엔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혀를 절제한다고? 그럼 말은? 식사는? 머릿속이 온통 뒤죽박죽인데 엄마의 낮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잘 알겠습니다. 하지만 수술은 하지 않겠습니다.”

 입이 아파 말도 제대로 못 할 때였는데 그때만큼은 또렷하고 단호하게 말했다. 놀란 의사를 뒤로 한 채 난 엄마 손에 질질 끌려 나왔다. 진료실을 나오자마자 난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온몸이 덜덜 떨렸다. 숨을 쉬기가 힘들었다. 눈물이 쏟아질 것만 같아 이를 악물었다. 엄마는 나를 일으켜 의자에 앉히더니 병신으로 살 수는 없노라고, 이만큼 살았으면 되었노라고 했다. 다만 나한테 미안하다고 했다. 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엄마는 늦었다며 그 길로 과외를 하러 갔다. 무작정 걷다 보니 극장 앞이었다. 당장 들어갈 수 있는 표를 달라고 하자 ‘보디가드’를 끊어 주었다. 상영 시간 내내 난 숨죽여 울었다. 엄마 앞에서 가까스로 참았던 눈물이 끊임없이 흘러내렸다.

  고단했던 엄마의 삶을, 앞으로는 더욱 고단할 게 분명한 그 삶을 내 맘 편하자고 연장시키는 게 과연 옳은 걸까? 아니, 그래도 하는 데까지는 해야 하지 않을까? 마음의 풍랑이 좀처럼 가라앉지 않았다. 내 옆에 엄마가 없는 건 상상할 수 없었다. 하지만 수술 이후의 달라진 엄마의 삶은 더더욱 상상할 수 없었다.


 엄마가 일을 그만둔 것 말고는 큰 변화가 없었다. 아니, 변화가 없는 것처럼 약속이나 한 듯 살았다. 내가 출근할 때면 엄마는 베란다에서 보이지 않을 때까지 손을 흔들었다. 하지만 엄마는 날이 갈수록 말하는 것도, 먹는 것도 더욱 힘들어했다. 급기야 집안에서 움직이는 것도 힘들어 보였다. 누군가 옆에 있어야 한다는 걸 알았지만 즐겁게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는 것도, 수입이 없어지는 것도 아까워 망설였다. 아깝다고? 저울질하고 있는 내 모습에 소름이 돋았다. 그 길로 난 회사를 그만두었다.

 하루하루 생명이 꺼져 가는 엄마를 지켜보는 것이 그토록 힘들 줄 몰랐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수액을 사 오고, 마약성 진통제를 받아 오며 엄마 옆을 지키는 것밖에 없었다. 엄마는 고집스레 내 도움을 피했다. 기저귀를 하면 편할 것을 끝끝내 기어서 화장실을 다녔다. 엄마와 난 24시간 내내 갇혀 지냈다. 고통스러웠다.


 수액을 사러 갔다가 나도 모르게 수면제를 달라고 했다. 동네 약국을 다 돌며 수면제를 사 모았다. 주머니 안에 수면제가 한 움큼 잡혔다. 그만 끝내고 싶었다. 나는 비겁했다. 하지만 뼈만 앙상하게 남은 엄마가, 애처롭게 나를 바라보는 엄마가 자꾸 눈에 밟혔다. 죽음보다 더한 고통이 있다면 이런 게 아닐까 싶었다. 결국 그 수면제는 끝내 주머니 밖으로 나오지 못했다. 난 그 동굴에 남기로 했다. 그때 난 25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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