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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애니 Aug 28. 2023

어쩌다 영국 2

미시즈 팔코너

 마당에서도 못 놀고, 집안에선 살살 걸어 다녀야 하는 아이들에게 영국이라는 나라는 참 재미없는 나라였나 보다. 아이들은 하루에도 몇 번씩 언제 학교에 갈 수 있냐고 보챘다.

감자는 영국으로 오기 전에 영어 공부를 조금이나마 했지만 천방지축 콩알이는 땡큐밖에 모르는 상태였다. 게다가 콩알이는 5개월의 어린이집 생활이 단체 생활의 전부였다. 그런 아이가 여기서는 생일 때문에 유치원이 아닌 정규 학교 과정을 다녀야 한다고 했다. 1학년을 다니다 온 감자의 학교 생활도 걱정스러웠지만 콩알이의 학교 생활은 그래서 더더욱 걱정스러웠다. 하지만 아이들에게 학교는 심심한 것을 해결해 줄 만한 곳이었나 보다.

 “아직 방학 중이라 아무도 없대. 며칠만 기다리자.”

 한국은 방학 중이라도 행정실은 돌아갔는데 여긴 아예 문을 걸어 잠그고 아무도 없었다. 서비스를 받는 입장에선 영 불편한 제도였고 일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아주 좋은 제도였다. 어느 쪽이 좋은 걸까?

 

 며칠 뒤, 동네를 산책하는 길이었다. 아이들이 다니게 될 학교 앞을 지나는데 작은 쪽문이 열려 있었다.

 “들어가 볼까?”

 가뜩이나 아이들이 궁금해하는데 남편이 부채질을 했다. 말릴 겨를도 없이 세 사람은 안으로 불쑥 들어갔다. 왠지 이 나라는 어디든 함부로 들어가면 안 될 것만 같아 불안했다.

 주택들로 둘러싸인 학교는 한눈에 들어올 정도로 아담했다. 단층 건물에 녹색 잔디밭, 한쪽 구석엔 낡은 놀이기구가 몇 개 있었다. 잔디밭 가장자리에는 꽤 큰 사과나무가 죽 둘러서 있었는데 그 밑에는 사과가 제법 떨어져 있었다. 서울에서 나고 자란 나는 이렇게 작은 학교가 신기하기만 했다. 감자와 콩알이는 신이 나서 여기저기 뛰어다녔다. 모처럼 활기 있어 보여 기분이 좋다. 누군가가 나타나면 남편이 알아서 하겠지라는 생각에 마음을 놓은 것도 있다.

 

신나게 뛰어다니던 아이들이 갑자기 멈춰 섰다. 뒤따라가던 남편과 나도 덩달아 멈춰 섰다. 흙 묻은 청바지에 장화를 신고 양손에 꽃 포기를 든 백발 할머니가 우리를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차림새를 보니 학교 잡일을 하는 분인 것 같았다. 가슴이 철렁했다. 며칠 전 아랫집 여자에게 당한 수모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어떻게 하지? 무조건 미안하다고 할까? 머릿속에 온갖 생각이 스쳤다. 그때였다.

 “What brings you here?”

 백발의 할머니가 환하게 웃으며 물었다. 순간 짧은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남편은 사정을 얘기하며 온 김에 입학 수속을 하고 싶다고 했다. 할머니는 아직 개학 전이며 지금은 자기밖에 없다고 했다. 다음 주면 다들 출근하니 그때 다시 오라며 아이들에게 다정하게 손을 흔들었다.

 “여보, 그 할머니 힘든 일 하시는데도 참 친절하게 대해 주지? “

 왠지 학교가 괜찮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드디어 남편이 애들 입학 수속을 마치고 왔다. 아이들과 나는 쪼르르 달려가 어떻게 되었는지 물었다. 남편은 필요한 준비물이 적힌 안내장을 꺼내 주며 말했다.

 “지난번에 학교에서 마주친 할머니 기억하지? 오늘 또 마주쳤는데 하마터면 우리가 실수할 뻔했어.”

 “왜?”

 “글쎄, 그분이 교장 선생님이래! 미시즈 팔코너!“

 으응? 그 흙투성이 백발 할머니가?

 그렇지, 여긴 한국이 아니었다. 난 지금까지 흙투성이 교장 선생님을 본 적이 한 번도 없다. 아니, 생각도 못해 봤다. 내 기억 속의 교장 선생님은 늘 엄한 얼굴에 말쑥한 옷차림으로 월요일에 하는 조회 때나 볼 수 있는 분이었다. 지금의 교장 선생님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아이들의 학교 생활이 기대되기 시작했다. 아이들이 영어를 못해 어쩌나 하던 걱정도 저만치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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