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애니 Sep 12. 2023

어쩌다 영국 3

너무나 비싼 교복, 하지만…..

  학교 준비물이 빼곡히 적힌 안내장에 교복과 런치박스에 대한 내용이 포함되어 있었다. 한국에서는 사립학교를 다녀야만 입는 초등학교 교복이 여기서는 모든 학생에게 필수였다. 영국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아 아는 것도 없는데 교복을 입혀야 한다니 난감했다. 한국에서는 중고등학교 주변에 가면 볼 수 있는 교복 판매점이 여기에서는 도무지 눈에 띄지 않았다. 개학이 1주일도 남지 않아 마음이 더 급해졌다. 남편이 학교에 다시 가 교복 파는 곳을 알아 왔다. 받아 온 약도를 보니 제법 걸어가야 하는 거리였다. 버스를 타기에는 돈이 아까운(그 당시 버스비는 1파운드였는데 환율이 거의 2,000원에 육박하던 때였다), 하지만 두 아이를 데리고 걸어가기엔 먼 그런 거리였다. 아이들을 살살 꼬셔서 걸어갔다. 입으면 불편할 게 뻔한 것이 교복인데 아이들은 약간의 환상을 갖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교복을 입으면 의젓한 형이나 누나가 된다는….


 손에 든 안내장에는 이런 것들이 적혀 있었다.

 “푸른 셔츠, 회색 바지나 회색 치마, 검정 구두, 넥타이, 흰색 양말, 여름용 하늘색 체크무늬 원피스, 검정 머리끈, 자주색 카디건이나 점퍼(이건 학교에서 구입), 체육복(이것도 학교에서 구입)“

 바지랑 치마도 한 벌로는 안될 거고, 셔츠는 매일 갈아입어야 하니 이것도 한 녀석당 서너 벌은 필요할 것 같았다. 머리끈에 양말, 구두 색까지 정해져 있다니 시간을 거슬러 온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환율도 비싸고 영국물가도 비싼데 두 녀석 교복은 얼마나 할까 지레 겁이 났다.  마트에서 파는 식료품은 오히려 한국보다 저렴했는데 사람 손이 거쳐 간 물건이나 서비스 가격은 혀를 내두를 정도였기 때문이다 .              

 역시나 교복도 비쌌다. 일단 급한 대로 한 벌씩만 사기로 결심했다. 셔츠나 양말은 밤마다 빨 각오를 했다. 그렇게 했는데도 100파운드가 넘었다. 그 당시 환율로 거의 20만 원 정도였다(20년 전의 20만 원이다). 하지만 내 손에 든 건 두 아이당 각 셔츠 한 장, 치마랑 바지 한 벌, 양말 한 켤레, 구두 한 켤레, 넥타이 한 개가 다였다. 특히나 구두가 비쌌다. 왜 불편한 구두를 아이들에게 신게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가난한 유학생 부인인 엄마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아이들은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신이 나서 떠들어댔다. 저렇게만 사서는 분명히 모자랄 텐데…

 저녁을 먹으며 얘기를 듣던 남편은 필요한 건데 다른 데서 아끼고 그 돈으로 더 사라고 했다. 하지만 당장 월세만 매달 850파운드였으니 더 아낄 생활비도 없을 정도로 빡빡한 살림이었다. 저절로 한숨이 새 나왔다.


8월이 끝나갈 무렵 버스를 타고 테스코라는 대형 마트에 갔다. 집 근처에 있던 테스코는 동네 슈퍼로 느껴질 만큼 거기는 컸고 가격도 훨씬 쌌다. 판매 품목이 다양해서 장 보는 것도 잊고 구경하기에 바빴다. 마트 구석구석을 보는데 ”Back to the school”이라는 코너가 보였다. 마침 런치박스를 못 사고 있던 터라 혹시나 싶어 그리로 갔다. 역시 거기에는 학교생활과 관련된 물건들이 구비되어 있었다. 감자와 콩알이에게 런치박스를 고르라고 했다. 감자는 스파이더맨이 그려진 파란색, 콩알이는 키티가 그려진 분홍색 런치박스를 골랐다. 그때였다. 감자가 “어, 엄마!” 하며 손가락으로 한 구석을 가리켰다. 거기엔 다양한 종류와 색깔의 교복이 걸려 있었다. 얼른 가서 가격표부터 살폈다.

 “이 가격에 판다는 건가?”

 거기엔 sale이라는 붉은 글씨와 함께 말도 안 되는 가격이 적혀 있었다. 셔츠 한 장에 2~3파운드, 양말 한 묶음에 1파운드 하는 식이었다. 난 허겁지겁 옷들을 집어 들었다. 이미 다 팔렸는지 남아 있는 사이즈가 많지 않았다. 하지만 못 입을 사이즈만 아니면 상관없었다(나중에 알고 보니 교복은 일반 마트나 M&S 같은 곳에서 얼마든지 저렴하게 살 수 있었다).

 필요한 것들을 다 사고 버스를 탔다. 사람 사는 건 다 똑같다지만 전혀 낯선 곳에서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하는 건 결코 쉽지 않았다. 하지만 양손에 든 쇼핑 봉투를 보니 왠지 잘 지낼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어쩌다 영국 2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