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영국(12)

테스코에서 자동차를?(3, 끝)- 닛산 프리메라

by 애니

남편은 홀린 듯 할아버지를 따라나섰다. 그렇게 따라나서는 게 맞나 싶었지만 적은 돈으로 차를 가질 수 있는 기회일 수도 있다는 생각에 말리지 않았다. 하지만 남편은 시간이 꽤 지나도록 돌아오지 않았다. 급하게 나서느라 핸드폰도 놓고 나갔다는 걸 뒤늦게 알았다. 연락할 방법이 없었다.

갈수록 초조해졌다. 아이들이 학교에서 돌아온 뒤에도 남편은 오지 않았다.

‘혹시 납치된 거 아냐?’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자 피가 마르는 것 같았다. 거실 창문 앞을 끝없이 왔다 갔다 했다. 그때였다. 아까 그 차가 마당 안으로 들어와 서더니 남편이 내렸다.

“여보! 어떻게 된 거야?”

여기가 영국이라는 사실도 깜박하고 큰소리로 남편을 불렀다. 할아버지가 내 소리에 돌아보더니 손을 흔들어 보이곤 차를 몰고 그대로 가버렸다. 남편이 씩 웃으며 말했다.

“이제 우리 차야!”

뭐라고? 우리 차라니! 머릿속에서 온갖 생각이 스치고 지나갔다. 현관문이 열리고 남편이 들어왔다.

“차가 괜찮은 거 같아서 샀어. 닛산 차를 이렇게 싸게 살 줄 누가 알았겠어? 당신 큰 일 했다!”

내 걱정은 까맣게 모른 채 남편은 신이 나서 말했다.

“돈도 안 갖고 갔잖아? 그런데 샀다고? 안 와서 얼마나 걱정했는지 알아? 진짜 차는 괜찮은 거야?”

난 숨도 쉬지 않고 물었다.

“차로 1시간 가까이 다녀봤는데 괜찮더라고. 엔진 소리도 그렇고. 할아버지가 새 차를 사서 쭉 관리했대. 사겠냐고 하길래 바로 은행에 가서 돈을 찾아서 줬어. 오토 중고차 찾기 어렵잖아? 고민하다 놓칠까 봐. 그리고 필요한 서류도 작성했어.”

꼼꼼한 남편이 이렇게 차를 샀다는 게 믿어지지 않았다.

“차에 문제 있어서 떠넘긴 거 아냐? 덜컥 돈부터 주면 어떡해? 차도 가져갔잖아? “

“마나님이 왜 이렇게 의심이 많아졌을까? 좋은 분 같아. 내일 10시쯤 차를 이전 등록하고 가져와서 주유소에서 기름 넣는 것도 알려 주겠다고 했어. 걱정 마.”

”내일 안 오면 어떡해? 그냥 돈만 잃은 거 아냐? 모르는 사람을 어떻게 믿어? 내일 차 안 가져오는 거 아냐?”

꼬리를 무는 걱정에 한숨이 절로 나왔다. 하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다음날 10시가 지났다. 5분이 지나고 10분이 지났다. 시계가 10시 20분을 가리켰다. 아무도 오지 않았다.

‘역시 내 촉이 맞았어. 그냥 사기 친 거야. 바보같이 그것도 모르고…‘

전화라도 해보라고 할 참이었다. 나와 달리 남편은 태평했다. 그때 밖에서 차 들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후닥닥 거실 창문으로 갔다. 어제 그 차가 서더니 할아버지가 내렸다. 할아버지는 길이 밀려 늦었다고 했다. 남편이 ‘그것 봐’라는 눈길로 나를 쳐다보는 것 같았다. 너무 의심한 것 같아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차 한 잔 마신 할아버지는 남편과 나를 태우고 동네 이곳저곳을 다녔다. 제법 떨어진 곳에 있는 대형 테스코며 저렴한 주유소, 정직해서 오랫동안 다니고 있다는 카센터까지 우리가 미처 생각도 못한 부분도 세심하게 알려 줬다. 꽤 오랜 시간을 안내해 준 할아버지가 차를 우리 집에 놓고 본인은 걸어서 집에 갔다. 운전석과 도로 방향이 우리나라와 달라 아직 서툴 테니 조심하라는 당부를 남긴 채. 영국이라는 낯선 나라가 퍽 따스하게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그 차는 1년 넘게 고장 한 번 나지 않았고 영국을 떠날 때 친구에게 넘기기까지 했다.

10년 뒤, 우리가 다시 같은 동네에서 영국 생활을 하게 되었을 때 가장 만나고 싶었던 사람이 그 할아버지였다. 미스터 로라지! 그런데 정말 거짓말같이 동네 슈퍼를 가다가 우연히 마주쳤다. 지나쳐 가는 할아버지를 내가 불러 세웠다.

“미스터 로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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