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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얏삐 Nov 07. 2023

복불복의 자유로움

자유로운 선택의 결과에서 얻어가는 배움


교환학생으로 영국에 머무는 동안 더 자유롭지 못했던 것이 아쉽다. 내가 지금 말하는 자유로움이란, 공부는 하지 않고 노는 데 시간을 썼어야 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나는 교환대학에서의 공부에 최선을 다했었는데, 그곳에서의 공부는 내가 그토록 원하던 것이고 내게 큰 경험이었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자유로움은 공부든, 여행이든, 유흥이든, 내가 하고 싶다는 마음이 드는 것에 거리낌이 없다는 의미이다. 


한국에 비하면 영국에서의 나는 훨씬 자유로웠다. 내가 잘할지 못할지의 걱정 없이, 듣고 싶은 수업은 청강도 하고, 심지어 열심히 들으면서 새롭게 무언가를 배우는 것에서 쾌감을 느꼈었다. (아, 역시나 나는 새로운 것을 배우는 데서 오는 지식적 자극을 사랑한다) 두려워하면서도 해보고 싶은 활동들에 모두 시도했다. '이곳에서의 경험이 마지막일지 몰라'라며 도전을 계속했다. 


어렸을 적 내 모습 같았다. 나는 원래 이것저것 해보는 걸 좋아했다. 어느 순간부터 그 의욕은 '끈기있게/제대로/성공하지 못할 거면 시작도 하지 말자, 시간낭비 말자'는 식의 굳은 결심이 되어 아무것도 하지 못하게 되었다. 그래서 도전을 멈췄고, 성공할 가능성이 높아 보일 때만 행동했다. 나이가 들면서 마음이 가는 대로 하기에는 충족하고자 하는 기대치, 기준이 많아지고 높아졌다. 스스로에게 요구하는 ‘의무’가 너무 많이 생겨버린 것이다. 그래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한 유튜브 영상에서 ‘~해야 한다’는 의무감에서 벗어나 ‘가능하면 ~한다’는 권고의 정도로만 결심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해야 한다'는 당위의 결심을 하면 실패했을 때 자기 자신을 비판하기 일쑤인데, 이렇게 자기 비판을 하는 것보다 건설적인 성찰을 해야한다는 영상도 보았다. 의무감에서 벗어나, 나 자신을 비난하지 않기로 했다. 하지만 그 정도로는 충분하지 않았다. '건설적인 성찰'조차도, '가능하면 ~ 하겠다'는 결심마저도 버리고 자유롭고 싶었다. 

밑도, 끝도 없이 그냥 나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싶었다. 무언가 화가 너무 나서, 고삐가 풀려버린 말처럼 정말 모든 것을 내 마음 가는 대로만 하고 싶었다. 


그래서 생각했다. '아 다시 영국에 간다면, 정말 해보고 싶은 건 다 해야지' 


그런데 말이 좀 이상하다. 영국에 가야지만 해보고 싶은 걸 다 하겠다는 결심은, 그 기저의 개념부터 이상했다. 나는 한국에서는 하고 싶은 것이 있어도 하지 않을 것인지. 마치 의무라는 규율이 닿지 않는 치외법권이라도 되듯, 영국에 가야지만 봉인해제되어 하고픈 걸 하는 걸까. 한국에서는 그럴 수 없을까. 이렇게 매일 생각하고 글을 이렇게나 많이 쓰면서, 답답해서 사람들을 붙잡고 하소연을 하면서도 왜 나는 변화를 일으키지 못하고 있을까. 무언가 근본적으로 나를 막아세우는 사고방식의 틀이 머리에 단단히 박혀 있는 것이 분명했다. 


한국에서는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하지 않는 게 너무나도 당연했다. 더 나은 미래를 위해 고통은 견디고, 가족을 위해 놀고 싶은 것은 조금 참고,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해서 선택했다. 하고 싶은 대로 하면, 1) 성공할 수 없고 2) 사람들의 미움을 받을 것이고 3) 나중에 후회할 것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세 가지 잔소리꾼이 매번 선택과 판단의 순간마다 머릿속에서 나를 가로막는다. 내 자신을 응원하고 격려하는 자아보다는, 내가 잘 하고 있는 것인지 한 발짝 떨어져 분석하고 비판하고 제지하는 자아가 강하기 때문일 것이다. 자라온 환경의 탓도, 내가 지금껏 살면서 손을 들어 냉정한 자아의 편을 들어준 탓도 있을 것이다.


현재의 욕구를 이기지 못해 미래를 깎아먹는 선택을 내리는 것은 아닐까하는 합리적인 논리에서 고민이 비롯되기도 한다. 마치 불닭볶음면에 떡까지 넣어 먹었다가 살쪄서 후회하고, 귀찮다며 양치를 게을리하면 이를 나중에 치료해야 하는 것처럼, 현재의 욕구를 못 이겨 나에게 장차 해가 되는 선택지의 유혹에 굴복하는 것은 아닐까, 생각한다. 부모님과 학교라는 안전한 울타리가 있던 학창시절이 아니라 사회에 홀로 나와버린 지금 이렇게 내 마음가는 대로 하겠다고 아우성쳐도 되는 걸까. 인생의 중요한 순간에 성공의 열차를 놓쳐버려 후회하지는 않을까, 걱정한다. 


어떤 선택이 나에게 해가 될 것인지, 나에게 이익이 될 것인지는 알 수 없다. 어떤 선택이든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는 아무도 모른다. 내가 놓쳐버린 ‘성공’의 열차가 사실은 내가 원치 않는 목적지로 데려갈지, 낭떠러지를 향해 달려가는 것인지 아무도 모른다. 열차에서 홀로 내려 걸어가도, 그런 나를 보고 남들이 걱정하고, 비웃고, 평가할지라도, 그 길에서 열차 속 사람들과는 다른 무언가를 배울 수도 있다. 물론 내 의도와는 다르게 탄 열차에서도, 그렇게 도착한 곳에서도 무언가를 배울 수는 있겠지만, 내가 선택하는 순간에야 더 큰 깨달음을 얻고, 실패하더라도 내 스스로 책임을 지며 더 단단해질 것이다. 이런 복불복이라면, 내 마음 편하게 내가 하고 싶은 것을 고르는 게 제일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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