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여니 May 02. 2020

여자는 여자의 적이 아니란걸- 최은영이 말하는 여성연대

최은영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 2020 제 11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

나는 최은영 작가의 작품만 읽으면 말이 많아진다. 전부터 그랬다.


1.

작품에 나오는 수업과 비슷한 수업을 들은 적이 있다. 전공 수업은 아니었고, 순전히 글쓰기를 배우고 싶어 수강한 교양 수업이었다.

그 때 들어온 교수님도 젊은 여자분이었다. 아무 생각 없이 마냥 해맑았던 나는 그저 다른 수업에 비해 젊고 실험적인 강의 분위기에 낯설어하면서도 열심히 따라갔던 것 같다.


그 수업도 매 주마다 정해진 주제에 따라 글쓰기 과제가 부여되는 수업이었다. 나는 글쓰기의 법칙이나 관습 같은 건 일절 모른채, ‘창의적 글쓰기’라는 수업명에 기대어 내 머릿속에 떠오르는 세계를 세상 밖으로 표현했다.


대학생 때 나는 주로 바빴고(몸만 아니라 마음까지), 가끔 스펙에도 도움이 안되는 이 수업과 과제들을 보며 부담과 후회가 들었지만 머릿 속의 막연한 것을 실재한 것으로 만들어낸다는 기쁨에 빠져 꽤나 즐겁게 수업을 마쳤다.

교수님은 매 수업 때마다 모든 학생들의 과제를 읽어보고 일일이 코멘트를 하셨는데 그 태도와 말씨에서 한 마디도 허투루 하지 않음을 알 수 있었다. 혹시나 글쓴이가 상처를 입을까, 자신의 오역이 창작물에 해를 입힐까 무척이나 세심하고 조심하는 듯했다. 그런 말씨로 나의 과제를 코멘트 해주는 말들이 좋았다.

매 수업이 열심히 과제를 해서, 그 분의 코멘트를 듣는 기쁨으로 채워져갔다. 선생님께 칭찬받기 위해 착한 일을 하고 자랑하는 유치원생의 기분으로.


교수님은 학기 말에 모든 학생들의 과제를 모아 직접 사비로 제본을 떠서 우리에게 한 권씩 나누어 주셨다. 그러니까, 이게 나의 첫 책인 셈이다. 얼마전에 책장을 정리하면서 그 때 엮은 책을 발견했다. 다시 글을 쓰기 전이었다. '이렇게 글을 잘썼나. 이런 생각을 하다니.' 지금은 못 할 것 같은 생각에 기특함과 자괴감을 동시에 느끼며 책을 덮었다. 과거의 나를 질투하는 것 만큼 불행한 게 또 있을까.


지금 생각하면 그렇게 세심하고 사려깊은 스승을, 아니 그런 사람을 사회에서(혹은 인생에서) 만나는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모르고 지나쳤던 것 같다. 등단을 준비하며 힘들었던 시기를 말씀하시던 모습이 어렴풋이 기억난다. 그분의 세심함도 어두움을 경험해보았기에 나오는 것일까. 나는 사회에 나와서 나를 아프게 하는 사람들을 향해 함께 화를 내고, 더 우악스러워지는 법만 배웠었다. 그렇게 변해가는 내 모습이 싫었다. 나는 아픔을 겪을 수록 거칠어져갔는데, 그 분은 지금쯤 어떻게 살아가고 계실지 궁금하다.


2.

나는, 최은영 작가의 작품에서 여성 간의 연대가 꼭 연인으로서의 사랑으로만 존재하는게 아니라는 메세지를 받고싶었다.


여자의 적은 여자라는 말을 싫어한다. 실제로 내가 보고, 듣고, 경험한 삶에서는 -모든 삶을 일반화 할 수는 없을지라도- 여자는 나의 적이 아니었고, 이성보다 동질감이 드는 존재였기 때문에 더 지속가능한 관계였다.


최은영 작가 역시 비슷한 인터뷰를 한 것을 본 적이 있다. ‘여자들의 관계를 평가절하하는 세상에서 여자들의 연대를 보란 듯이 보여주고 싶다’는(출처: 채널예스).


첫 단편집 <쇼코의 미소>에서 그녀가 내게 보여준 관계는 ‘실패한’ 관계들이었고, 다음 단편집 <내게 무해한 사람>에서 내가 보았던 관계들은 연인 간의 것이었다(물론 최은영 작가가 여성들의 관계만 다루는 것도 아니고, <내게 무해한 사람>에서 여성 커플의 이야기만 있는 건 아니다).


나의 인생에도 <쇼코의 미소>에서 그려지던 실패가 있었다. 이제는 되돌리려고 해도 닿을 수 없는, 정말 완벽한 ‘과거’가 되어버린 관계 같은 것들. 그런 관계로 인한 후회와 자책으로 잠을 못 이루던 밤들이 있었다. ‘어떤 연애는 우정 같고, 어떤 우정은 연애 같다’. 작가는 그것이 여자의 적은 여자이기 때문이 아니라, 지나간 연애처럼, 그저 우리가 미숙해서 일어난 것이라고 말해주었다. 그 목소리에 기대고 싶었던 나는 다른 작품들에 비해 유난히 그 세계관에 나를 온전히 이입했다. 누군가에게 나는 어떤 사람이냐고 묻는다면 이 책을 선물해 주고 싶을 정도였다.


나는 이제 그녀가 그리는 여성 간의 연대가 보고싶었다. 내 인생의 관계는 어떻게 나아가야 할까, 하나의 답을 듣고싶었다. 그런데 <내게 무해한 사람>에서 내가 발견한 것은 연인으로서의 연대였다. 문학이 소수의 목소리를 내고 약자의 입장에 서는 것에 지지하지만, 이성애자로서 공감하며 읽을 수 있는 것과는 별개였다. <쇼코의 미소>에 완벽하게 이입하며 작품 세계와 나를 동일시하던 나는, <내게 무해한 사람>을 읽고 나서는 최은영의 세계에서 한 발짝 빠져나와야 했다.


이번 단편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를 읽으면서도 처음에는 연인 간의 것을 그리는 것인줄 알았으나, 그가 아님을 알았을 때 작품은 순식간에 나의 삶으로 들어왔다. ‘사실 나도 저런 경험이 있었는데’, ‘나는 그 때 어땠지’, ‘그 교수님도 그랬을까’.

나는 그녀의 세계가 좋다. 실제의 나는 내가 보는 최은영의 세계와는 다를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 안에는 분명, 최은영 작가가 풀어가는 세계와 같은 시선으로 나를 보는 면이 있다.


그래서 그녀가 이번 작품에서 연인이 아닌 다른 형태의 여성 연대를 그린 것에 감사한다. 내 삶에 피어날 수많은 관계들 속에서 ‘그래, 어딘가에선 이런 관계도 있었지’하고 위로를 얻을 수 있음을.


3.

사실 이 글을 쓰면서 글쓰기 교수님이 아직도 모교에 출강하고 계시다는 사실을 알았다. 한 번 연락을 드려볼까 고민이 된다. 당연히 나를 기억 못하시겠지.

‘교수님, 7년 전에 교수님의 수업을 들었던 학생이에요. 저는 이제 졸업을 해서 이런 사람이 되었어요. 저 사실 그 때 교수님이 계셔서 지금도 조금이나마 글을 쓸 수 있게 된 것 같아요’

라고 소개를 해야하나.


소설의 세계에서는 끝내 강사의 소식을 알 수 없는 것으로 끝나버렸는데. 나의 세계에서 교수님은 그 자리에 여전히 계시며, 내가 스쳐가는 제자였을 뿐이다. 나의 세계를 나는 어떻게 써 내려가야할까.

작가의 이전글 이렇게까지 치열해야만 취업할 자격이 있나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