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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니 May 19. 2020

[알코올 라이프] 타지의 외로움 보단 해장의 괴로움을

'아무튼, 술'을 읽고 써보는 나의 음주가무 연대기

'아무튼, 술'을 무척 재미있게 봤다.

술을 주제로 여러 편의 글을 써내려간 단행 에세이인데, 아주 웃기기 그지없다.


꽤나 늦게 술을 마시기 시작한 나도, 술로 인한 웃지 못할 에피소드들이 참 많았다.


그러니까, 처음 술을 본격적으로 마셨던 건 2017년 런던으로 어학연수를 갔을 때다.

그 전까지 나는 술을 마시면 술이 사람과 친해지는 거지, 사람이 사람과 친해지는게 아니라며

누군가와 가까워지는 단계에서 술 마시는 것을 꺼려해왔다.

(이를테면, 소개팅에서는 무조건 노 알코올 데이트만 한다던가)

그런데 낯선 외국 땅에서 나는 누군가와 천천히 가까워지기를 기다릴 심적 여유도, 언어적 깊이도 없었고

조급함과 외로움은 날로 커져가기만 했다.


그래서 나는 친구들이 여는 파티는 한동안 매번 참석했다.

함께 데낄라를 원, 투, 쓰리! 하고 원샷하며 조금 더 유대감을 느끼고,

잔뜩 취해 반쯤 정신이 나간 상태로 이 곳에서 익숙해진 음악에 몸을 흔들며 깔깔거리며 그렇게 친해졌다.

수업시간에 백날 열심히 다가가는 것보다 한 번 파티에서 함께 미쳐버리면 너와 내가 친구가 되는 건 한순간이었다.


문제는 알코올을 전혀 해독할 줄 모르는 내 간이었다.

20년 넘게 역할을 할 필요가 없었기에 방법을 잊은건지, 파티에서 광란의 금요일을 보내고 나면 그 주말은 침대 위에서 시체처럼 누워만 있어야했다.


해장의 초보답게 술을 마신 다음날 나는 항상 매운 음식을 먹어야 했는데, 런던에서 구할 수 있는 매운 음식은 매우 한정적이었다.

한 번은 술 마신 다음날 얼큰한 김치찌개가 너무 간절해서 무거운 몸을 일으켜 동네의 한식 레스토랑에 가서 김치찌개를 시켰는데, 요리를 뭐 어떻게 한건지 멀건 물에 돼지고기 기름과 고춧가루만 둥둥 떠있는 음식에 속만 더 메스꺼워져서 레스토랑 화장실에서 또 한 번 게워내고 나온 적도 있었다.

그 후에는 주로 테스코(영국판 이마트)에서 파는 신라면 작은 컵이 내 해장의 단골 메뉴였다. 나중에 하우스메이트가 된 프랑스 친구 제시에게도 신라면을 전파해줬더니 생각보다 매우 시원해하며(?) 먹었다.


그 때 주로 마시던 술은 테스코에서 파는 싸구려 데낄라 + 소금 + 라임의 조합 아니면 럼주나 위스키 같은 양주에 과일주스를 섞어(웩..이건 그 때나 지금이나 정말 못 먹겠다) 마셨다. 도대체 도수 높은 술을 못마시겠으면 평범하게 맥주나 와인을 마실 것이지, 왜 그렇게 괴상하게 먹었을까? 지금 생각하면 다들 알못들이 모여서 파티를 했던 것 같다.


그래도 처음에는-한 때 그렇게 금기시하던-술기운을 빌려 친해진 친구들이었지만, 점점 친해질 수록 술보다는 더 다양한 것들을 하며 보냈던 것 같다. 나와 특히 잘 맞았던 제시는 영화와 책을 좋아해서 서로 추천 작품을 보면서 이야기를 나누었고, 런던에서 가보고 싶은 관광지를 함께 놀러가곤 했다.


그러니까 이 당시 내게 술의 의미는, 술 자체의 즐거움 보다는 친구들과 어울리기 위한 수단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던 것이다.

술을 마시면 나도 저기 거침 없이 노는 외국인 친구들처럼 미친듯이 놀 용기가 생기는 게 신기하고 새로웠지만, 그다지 즐겁거나 중독성 있지는 않았다. 아마 내가 사귀었던 친구들이 술이나 파티를 좋아하지 않고, 밖에 놀러다니거나 공부하는 것에 더 집중하는 친구들이었다면 나는 굳이 술을 궁금해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나의 알코올 라이프(?)의 진짜 시작은 회사에 들어가고부터 시작되었다.

누가 그랬던가, 늦바람이 무섭다고.


To be Continued..



'아무튼, 술'을 읽고 써보는 나의 음주가무 연대기 2편'아무튼, 술'을 읽고 써보는 나의 음주가무 연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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