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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니 Sep 21. 2020

첫 전셋집-낭만은 그 곳에도 있었음을

과거라는 이유로 낭만이 되어버린 곳

전직장에서 근무한지 1년 반정도 됐을 때, 처음으로 퇴사 의사를 밝혔다. 왜 번복했는지 뚜렷이 기억은 안나지만, 갑작스러운 선언에 막막해하던 팀장님의 표정만 떠오르는 걸 보면 죄책감과 책임감이 느껴졌던 것 같다.


퇴사를 번복하고 다시 회사를 다니려니 이번에는 내가 막막해졌다.

이 막막한 마음으로 하루 3시간씩을 통근길에 쓸 엄두가 안나서 전셋집을 구하기로 했다. 솔직히 전세 2년동안 그 회사에 다닐 자신은 없어서, 회사와는 상관없이 정말 내가 살고싶은 동네였던 마포쪽으로 집을 알아봤다. 중기청으로 대출을 받으려니 조건에 맞는 매물이 너무 없어서 마포에서는 망원동에 딱 한 군데만 찾았으나, 침대를 놓으면 끝날 것 같은 5평 남짓의 원룸이었다. 핫플레이스에서의 손바닥만한 단칸방이라니. 낮에는 희락의 삶을, 밤에는 우울의 삶을 살게될 것이었다. 아무리 그래도 이건 아니지. 음.


망원의 부동산을 샅샅이 발품 팔다가 포기하고, 좋아하는 카페에서 당과 카페인을 충전하는 그 순간이 너무 행복해서 더욱 이곳에 살고싶다고 갈망했었다.


찾다찾다 서대문구까지 넘어가서, 연대 서문쪽의 연희동에 있는 신축 오피스텔을 발견하게 되었다.

아직 공사중이었지만, 입주시기가 코앞이었고 사장님도 좋은 사람 같았다(계약금을 내 마음대로 보내줘도 된다는 것이다!). 가장 마음에 들었던 건, 창 밖으로 아카시아 나무가 흔들거리고 햇볕이 잘 들어서 마치 정원같이 눈부시다는 것. 이런 집이라면 회사에서 어떤 답답한 일이 있었든 이 곳에서 다 위로받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딱 두 가지 걸리는 게 있었는데, 화장실이 너무 작아서 샤워를 하면 휴지까지 젖을 기세라는 것과, 근처에 지하철역이 없고 버스정류장까지도 10분 이상 가파른 언덕길을 걸어야했다. 출근길도 그렇고, 주말에 나가더라도 집에서 나서는 매순간 그 언덕길이 너무 괴로울 것 같았다.


하지만 더 이상 윗 동네에는 매물이 없어서 어쩔 수 없이 회사가 있는 영등포를 알아보는데, 하필이면 선유도쪽에 조건이 딱 맞는 매물을 발견해버렸다. 지하철역은 조금 멀었지만 바로 앞에 회사까지 가는 버스정류장이 있었고, 집도 엄청 세련되지는 않았지만 신축 오피스텔로 깔끔했다. 게다가 평수가 작은 오피스텔인데도 화장실에 샤워부스가 따로 설치되어 있었다!(화장실에 진심인편.)


차라리 발견하지 않았으면 좋았을 것을, 그 때부터 엄청난 고민이 시작되었다. 부동산에서 중기청 매물은 금방 나간다며 내 마음을 조급하게 하는 바람에 고심은 더욱 짙어졌다. 나는 중개인 없이 연희동과 선유도 집을 혼자서 몇 번이고 찾아가보며 거리를 가늠해보았다.

연희동 집은 갈 수록 동네는 마음에 들었고, 집 앞의 전경도 바라보면 눈물이 날 만큼 향유하고 싶었다. 그런데 집까지 가는 길, 돌아가는 길은 점점 자신이 없어졌다.


그 곳은 내 낭만이 있는 곳. 낭만이 너무 높은 곳(말그대로 언덕 높은 곳에) 달려있었다.

(너무 좋아서)문제였던 연희동 집 앞 전경

고민은 연희동이냐 선유도냐를 넘어 이상이냐, 현실이냐의 문제로까지 확장되었다. 왠지 지금 내가 연희동을 선택하지 않으면 나는 영영 이상을 추구하지 못하는 사람이 될 것만 같았다. 어쩌면 내가 낭만을 좇을 수 있는 마지막 기회처럼 느껴지기까지 했다.


그래서 나는 어떤 사람이었냐하면, 현실을 직시하는 쪽이었다. 2년이라는 시간이 영겁처럼 느껴져서 도저히 눈에 띄는 단점들을 안고 갈 자신이 없었고, 대신 눈에 띄는 장점들을 포기했다. 잘못된 선택을 한 내 자신을 원망하게 될까봐 무서워서 후회가 덜 할 것 같은 선유도를 선택했는데 막상 선유도에 살면서는 꽤나 자주 연희동 집을 떠올리곤 했다.


-

결론적으로 나는 선유도 집에서 6개월 정도 밖에 살지 않았다.

결국 반년 만에 또 다시 퇴사 선언을 하면서 진짜 회사를 나왔기 때문이다. 

선유도에 사는 내내 태생적으로 마음에 들지 않는 이 곳에 최대한 애정을 붙여보려고 온갖 시도를 다 했다. 열정적으로 가구도 들여놓고, 인테리어도 하고, 근처의 맛있는 카페들도 열심히 알아보고. 하지만 그런 노력은 이미 불행한 곳에 몸을 담고 있으면서 최대한 상쇄하려는 노력일 뿐이었다. 회사에서의 삶이 공허해질 수록 영등포가 싫어졌고, 내가 사는 동네가 싫어졌다. 그렇게 결국 반년만에 전셋집이고 커리어고 뭐고 이 곳을 탈출해버렸다.



얼마 전 선유도 집을 완전히 정리하고 왔다. 친구도 다시 통근을 하게 됐고, 계약을 이어갈 이유가 없어졌기 때문이다. 오랜만에 선유도 집에 들어서니 익숙한 냄새가 났다.

내가 꾸미고, 채워놓은 냄새.

아무리 노력해도 성에 차지 않았는데. 이제와서보니 내 취향으로 가득 채워져있었다. 그래, 이만하면 잘해놓고 살았지. 또 하나의 낯선 곳에서 적응하기 위해 애정을 쏟으려고 노력하던 내가 대견하게 느껴졌다.


전세계약을 종료함으로써 영등포와 나는 이제 어떠한 연관도 없게 되었다. 오랜만에 전직장이 이사하기 전에 내가 자주 가던(그곳도 영등포다) 카페에 가고싶었지만, 시간상 그러지는 못했다. 영등포에 가고 싶은 카페라니. 이 곳에도 나의 애정이 깃들긴했구나. 마치 내가 전직장에서의 일들을 이따금씩 좋았던 기억들로 떠올리는 것처럼 말이다.


그러니까 내 말은, 여기도 나름의 낭만이 깃든 곳이라는 것이다. 비록 내가 생각했던 방식은 아닐지라도. 모든 순간이 지금과 이어지지 않는 온전한 과거가 되고나면 어떤 식으로든 나의 한 부분이 된다. 좋은 부분만 떠올려보면, 모든 과거는 낭만적이다. 비록 그 때로 돌아가고 싶은지와는 별개의 감정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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