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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니 Apr 14. 2021

친구의 이별에 대처하는 자세

MBTI가 T에 조금 더 가까운 이의 고백

내 나이 n0살. 사랑노래를 들으며 울고 웃던 때가 언제였나(들린다. 그대들이 추청하는 나의 'n'이 올라가는 소리). 이미 내 주변에는 연애 상담을 하기 보다는 결혼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이 더 많다. 아니, 어쩌면 그건 나의 편협함일수도. 유유상종이라고 했으니, 그저 나와 생애주기가 비슷한 친구들이 많을 뿐. 여전히 내 나이에도 사람들은 만나고 헤어진다.


언제부터인가 연애에 무감각해졌다. 연애를 쉬고있는건 아니다. 누군가를 만나고있지만 그 사실이 나의 삶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치지는 않게 되었다는 말이다. 나는 아직도, 그러니까 앞자리가 n이 되도록, 친구들은 슬슬 연애 인생을 끝내고 결혼이라는 다음 단계를 밟을 동안, 여전히 '자아'나 '인생의 목적' 따위의 막연한 것이나 생각하고 있다. 게다가 솔직히 고백하자면 이게 잘못됐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주변에 점점 고민이 통하는 동년배 친구들이 줄어드는게 서글플 뿐.


사실 연애, 사랑이라는 것만큼 막연한 게 또 있을까. 나도 그것에 대한 해답을 찾아서 넋을 놓고 있는 건 아닌데. 내가 무뎌져도 여전히 사람들은 그 막연한 것을 쓰고, 노래하고, 대리만족하고, 소비한다.


얼마 전에 갑자기 한 친구가 연인과 헤어졌다고 연락이 왔다. 나만큼이나 오래 만난 사이. 그래, 이만큼 만나도 헤어지기도 하는구나. 나는 새삼 놀라웠다. 그 때 나는 애인과 함께 있었지만, 그와 나는 이슈가 생기면 쿨하게 찢어지는 사이. 그렇게 나는 친구가 있는 곳으로 갔다.



친구의 이별에 대처하는 자세


(정말 이런 표현 마음에 안들지만)한때는 나도 사랑에 울고 웃던 때가 있었다. 그리고 그것이 전부라고 믿었던 때도. 그래서 헤어질 때마다 그것이 누구 탓이건 나의 세계가 무너진 것 같은 절망감에 빠졌다. 그와 같은 사람은 다시는 못 만날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비슷한 시기에 나처럼 이별을 경험한 친구가 있으면 나의 이별이 떠올라 정작 당사자보다 내가 더 슬퍼하며 엉엉 울곤했다. 지금 생각하면 그래서 그렇게 내 주위에 연애 상담하는 친구들이 많았나보다.


지금은 그렇지 않다. 연인과 헤어지면 너무나 슬프겠지만, 삶은 계속될 거라는 걸 안다. 아니, 사실 헤어질 것 같지도 않다. 그렇다고 결혼이라는 가시적인 종착점이 보이는 것도 아니지만, 그냥 우리 사이는 관성을 따라 계속 흐를 것만 같다. 이것이 권태롭지만은 않다. 아니 사실 권태로울 때도 있지만 역설적으로 이 안에서 안정을 찾기도 한다.


이런 내가 친구를 만나서 무슨 이야기를 해줄 수 있었을까. 나는 더 이상 사랑 노래를 듣지 않는데. 그렇다고 그 상황에서 MBTI가 극단적 T인 사람처럼 '친구야 들어보렴.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야. 지금은 죽을 것처럼 힘들지만 시간이 지나면 잊도록 설계되어있어. 그러니 당분간의 괴로움은 필연적인 것으로 받아들이자.'라고 말할 순 없지 않은가. -라고 ENFP와 ENTP를 왔다갔다하는 나의 두 자아가 속에서 싸우는 동안 나는 친구에게 무슨 말을 건넸는지 기억이 나질 않는다. 게다가 오래된 관계일 수록 어느 누구의 잘못으로, 이러이러한 이유로, 라고 한 문장으로 정의할 수 없는 것이 너무나 많다. 부부의 이혼사유에 적는 '성격차이'가 단지 치약 짜는 방식이 달라서이기만 할까.


그래서 나는 그저 듣기만 하고 왔다. 나는 그저 내 삶에 빗대어, 내 삶 만큼만 공감할 줄 밖에 모르는 나약한 인간이라. 나도 자신에 대해 안정을 좀 찾게 되면 다시 사랑 노래를 듣고, 인간 본연에 대한 고찰을 하게 될까. (현재 인스타그램에는 온통 이직이나 자본주의 한탄으로 도배 중) 다행스럽게도 그 날은 친구가 화제를 바꾸어 진로에 대한 고민을 털어놓자 나는 이때다 싶어 입에 모터를 단 듯 극강의 F와 T의 기질 모두를 발휘할 수 있었다. 역시 나란 인간은 제 삶만큼만 담아낼 수 있는 동물이 맞다는 게 정계의 학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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