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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니 May 02. 2021

영화 '최악의 하루'를 보셨다면 남산을

회현역 카페 '모듈러'에서의 시간

남산이라하면 '서울토박이들은 그런 관광지에는 가지 않아'라는 시덥잖은 고집같은 것이 생기는 곳이어서, 그리 자주 가는 곳은 아니었다. 그렇다. 나는 지방사는 친구들이 '서울로 수학여행 왔을 때 63빌딩에 갔어'라고 말하면 귀엽게 보던, 하지만 실상은 서울 변두리에 살고 있는 서울촌놈이었던 것이다.


어쨌든 남산은 정말 정석의 데이트 코스 아니면 잘 가지 않는 곳이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한예리 주연의 영화 '최악의 하루'와 같은 분위기를 내고 싶은 날이면 괜스레 서촌보다는 남산이 떠오른다.

날 좋은 날 나폴거리는 원피스와 하늘하늘 옷만큼이나 가벼운 내 인생처럼, 동네는 부촌이지만, 그런거 다 무시하고 예쁘지만 싸구려인 원피스에 코디가 안어울리는 편한 운동화를 신고, 주변의 외제차 대신 깡총거리며 걷고싶다.


하지만 현실은 가방 한가득 노트북과 노트와 책들을 가득 담고 달팽이마냥 이고다니는 자미직.(자기개발에 미친 직장인이라는 뜻)



회현역 모듈러

서울 용산구 소월로2길
평일 9:00 - 19:00
주말/공휴일 11:00 - 19:00
회현역 모듈러

무거운 짐을 이고지고 도착했더니 너무 더워서 아이스라떼를 시켰다가, 이내 후회하고 다시 따뜻한 라떼를 시켰다.('쪄죽따'인 편) 라떼는 말이야, 따뜻한 게 최고지! (여기 커피 맛있었다.)

채광에 죽고 못사는 나는 통창을 마주보고 앉아, 종종 하던 일을 멈추고 창밖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바로 앞에 나가 광합성을 하곤했다. 아, 좌석 내부까지는 볕이 들지 않는다. 아쉬워요..


요즘엔 다시 옛날 일기를 컴퓨터에 옮기는 작업을 하고있다. 동시에 실무에 대한 공부도. 과거를 반추하며 미래를 대비하자니 생각이 복잡해진다.


그냥, 요즘엔 '진짜 내가 하고싶은 건 뭘까'라는 원론적인 생각을 한다. 한 때는 사업을 하고싶은 거라고 생각했는데, 사실 더 깊숙한 곳에는 사업을 통해 내가 원하는 어떤 모습이 되고 싶었던 것 같다. 그러니까, 나는 돈을 벌고 싶은게 아니라 자아실현을 하고 싶은 것이다. (아 그렇다고 돈 벌기 싫다는 건 아니구요ㅎ) 그렇다면 나는 어떤 식으로 내 자아를 찾고싶은가? 한 분야에서 뛰어나다는 인정을 받으면 되나? 돈을 많이 벌면 되나? 엄청 예쁘거나 재치있어서 인기가 많아지면 되나?


여기까지 사고가 도달하면 미궁에 빠지기 때문에 더이상 생각하고 싶지 않아진다. 비록 학생 때도 여기에서 고민을 멈췄던 것을 지금 후회하고 있지만 말이다.

과거 일기를 정리할 때마다 '이때로 다시 돌아간다면 정말 잘 할 수 있을 것 같은데'하는 안타까움이 들지만, 실상 현재의 나는 그 때와 별반 다를게 없음을 알고있다.


나는 여전히 아침잠 욕심이 많아서 불과 3시간 후에 후회할 걸 알면서도 '그' 선택을 하고 정말로 3시간 후에 나 자신을 원망하고, 운동 계획을 세운 뒤 몇 번 깔짝이다 몇 개월 후에 '그 때 꾸준히 했으면 지금쯤 건강미 넘치는 내가 됐을텐데!' 후회하며 또 다시 계획을 세우고, 다 못할 걸 알면서도 카페에 이것저것 다 챙겨왔다가 역시나 다 하지도 못하고 어깨만 무겁게 귀가한다.


그래도, 어쩌겠나. 이런 나여도 꾸준히 '발발거리며' 무언가를 한다는 것에 기특해하자. 이제는 나이도 삼십줄에 다다랐으니, 그 발발거림을 좀 더 연속성있게 하기로하자.


통창 너머로 눈부시게 비치던 햇빛이 어느덧 옅어지고 있다. 카페도 곧 문 닫을시간이다. (내가 8분만에 이걸 매듭지을 수 있을까)

아직 일교차가 커서 밖은 쌀쌀하겠지만, 머리도 식힐 겸 얇은 캐시미어 혼방 목도리를 둘러매고 남산을 걸어봐야겠다. 비록 한예리처럼 하늘하늘한 원피스 대신 어깨가 빠질듯한 맥북과 함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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