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조로운 일상의 5월 1주차
요즘엔 예전 일기를 컴퓨터로 옮겨적는 작업을 하고 있다.
처음에는 방 한켠에 먼지만 쌓여가는 어린시절 일기장들을 정리해야겠다 하는 마음으로 시작한거였는데, 생각보다 그림그리기를 좋아했던 어린 시절 덕에 일기를 다 옮기더라도 원본을 버리지는 못할 것 같다.
(친구가 듣더니 그냥 스캔 뜨면 안되냐고 하지만, 너무 늦었어…이미 고등학교 1학년이란 말이야…)
예전 일기를 다시 펼치고, 정리하려는 결심을 하기까지는 꽤 오랜시간이 걸렸다. 어렴풋하긴하지만 과거에 내가 어떤 생각을 하고 살았는지 잔상이 남아있으므로. 그것은 나에게 별로 들추고싶지 않은 모습들이었다. 소심하고, 때로는 찌질하고, 또래 아이들에 대한 열등감으로 가득 차있지만 인정하지 않으려고 발버둥치는. 내가 기억하는 나의 청소년기는 그랬다.
어쨌든 나도 언젠간 본가에서 완전히 독립을 해야하니 거의 20년치 일기가 쌓인 무거운 상자를 정리해야하긴하는데(심지어 나는 다이어리 욕심이 많아서 대부분 앞장만 쓰다가 새로 사곤했기 때문에 보관하고 있는 상자들의 부피가 어마어마하다), 만약에 결혼이라도 하면 이 흑역사 덩어리를 들고 신혼집에 들어갈 수도 없으므로 나는 서른 살 기념 신년 프로젝트로 과거 일기를 후딱 정리해버리기로 했다.
하지만 역시나, 옛날 일기를 보는 건 괴롭다. 그걸 한 자 한 자 선명하게 옮겨내는 건 더더욱. 자기 혐오를 억눌러야하며 엄청난 관용의 마음이 요구되기 때문이다.
예전 일기를 보면, 나는 항상 상상력이 넘쳤고 감정도 주체할 수 없었으며 여전히 끈기는 부족하고 의식의 흐름은 종잡을 수 없다. 다만 무언가를 꾸미고 창작하는 것에는 재능이 있었음을, 이를 꾸준히 발전시켰다면 분명 빛을 발했을 것임을 부정할 수 없다.
나에 대해 새로이 발견한 것은, 내 자신에게 굉장히 금욕적(?)이었다는 것이다. 당시 나는 외모에 대한 열등감이 상당히 심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외모를 꾸미는 것에 죄책감을 가지고 있었다. 물론 지금과는 다르게 당시에는 학생이 화장을 하는 것에 대해 더 보수적인 분위기였음을 감안하더라도, 나는 또래에 비해서도 꾸미는데 소극적이었다. 그것이 학생으로서 바람직하다고 여기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일기를 보면서 지금의 나는, 인터스텔라 장면처럼 ‘그렇게 고민할 시간에 비비크림 한 번 바르고 맘 편하게 공부하는게 더 효율적이겠다구!!’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차오른다. ‘지금 그렇게 억누를 필요 없어. 어차피 너 수능망쳐서 재수하고 재수하면서 연애한다?’라고 덧붙이면 너무 말넘심인가.
결과론적인 시선으로 열심을 다하는 이를 보면 안쓰럽기 그지없다. ‘어차피 그렇게 될거였는데’, ‘보나마나 안 될 텐데’ 하는 말들은 최선을 다해 현재를 살아내는 이에게 얼마나 잔인한가.
지금의 나를 아는 상태에서 다시 과거로 돌아간다면 더 잘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곤한다.
그렇다면, 지금의 내가 10년 후의 나를 보게 된다면 나는 지금 변할 수 있을까.
‘너 이렇게 계속 이직만 하면 경력이 엉망이 될거야. 그리고 주식도 남의 말만 듣고 뇌동매매했다간 돈 못 벌어. 부동산, 청약도 귀찮다고 미루기만하면 진짜로 벼락거지가 되고 말거야’
10년 후의 내가 지금의 나에게 이렇게 이야기한다고 내가 갑자기 각성해서 한 회사만 존버하고, 매일 기업 분석과 부동산 시장을 공부하게끔 변할까. 그런데 이런 말들은 굳이 미래를 보지 않아도 현재의 나를 보고 충분히 “예측”할 수 있는 수순 아닌가. (여러분 괜찮습니다. 저 원래 순살이에요)
사실 10여년 전이라고 모르던 건 아니었다. ‘지금처럼 지내다간 그저그런 대학에 가서, 그저그런 회사에 가고, 한 달에 한 번 나오는 월급에 소소한 즐거움을 느끼며, 친구들을 만나며 그렇게 일상을 지내는 나 하나에 그치는 삶을 살 것 같다’라는 일기를 썼었으니까.
그러니까 나는, 몰랐기 때문에 미숙하게 굴었던 것이 아니었다. 충분히 어떤 미래가 닥칠지, 당시 선택의 결과가 어떨지 예측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당장 보기에 더 중요한 것들이 있었던 것 뿐이다. 그러니까 나는 아마 다시 돌아가더라도 비슷한 선택을 하겠지. 지금와서야 당시의 일상보다는 지금을 바꾸고싶다는 생각만하지만, 그 때로 돌아가면 그 때의 삶이 너무나 소중해질테니.(아니 근데 나 인생 30년 짬바로 그 때의 일상도 더 잘해낼 자신있긴 한데ㅎ 아직 정신 못차린건가요?)
인생 2회차, 3회차를 살고싶다는 이야기를 종종 하곤한다.
윤회를 믿지 않으니(그리고 윤회에서도 전생의 기억을 가지고 인간의 삶을 살 수 있는건 불가능하지 않나?), 대신 인생 1막, 2막은 스스로 설정할 수 있지 않을까.
당시의 내가 미래를 뻔히 예측하면서도 ‘그’ 선택을 했더니 ‘그’ 미래에 지금 다소 후회하고 있는 것처럼 지금 뻔히 보이는 미래가 만약 후회될 것 같다면, 10년 후의 내가 지금의 나에게 인터스텔라하고 있는거라 생각하고 조금씩 고쳐야지.
40살의 나님, 그래도 그때는 디지털로 쓴 일기도 많으니 작업하기 꽤 수월하지 않나요? 네? 여기저기 계정 비밀번호 찾느라 죽는줄 알았다구요?
21년 4월 26일 - 5월 2일의 기록
브런치에 올리기엔 잡스럽지만 블로그에 올리기엔 쓸데없이 진지한 것들의 모음집.
탈업계는 인생의 진리
전 거래처 사람들과 술을 마셨다.(이제 섣불리 멀어졌다, 어쨌다 하지 않으리^^;) 같은 업계일 때는 요즘 트렌드는 어떻고, 다른 업체 소식은 어떻고 하는 얘기로 대화를 이어갔던 터라, 가서 할 얘기가 있을까 걱정했는데. 막상 그런 이야기를 할 필요가 없어지니 오히려 더 개인적인 얘기-그러니까 친구들과의 대화와 별반 다르지 않은 이야기-를 할 수 있었다. 이 사람은 이런 생각을 하면서 회사를 다니는구나, 이 사람은 요즘 이런 일이 있었구나, 하는 면모들을 볼 수 있어서 오히려 좋았다. 역시 탈업계 짱!
족원결의
진짜 최종의 최종.jpg으로 3개월간 회사에 주4일로 출근하기로 하고(광화문 사무실은 또 안녕..) 이후에는 다시 5일 근무로 돌아가기로 협의했다. 회사도, 나도 조금씩 양해해서 도달한 지점인 듯하다. 어쨌든 사정 봐준 회사가 고맙고, 나도 정말 잘해야겠다는 생각이든다. 우리는 족발집에서 잘해보자며 도원, 아아니 족원(?)결의를 외쳤다.
꿀 발라 놓은 곳
족원결의 후 얻은 일주일 휴무의 시작으로 달려간 곳은 안국역. 정말 소금집 잠봉뵈르에 마약이라도 들어가는거냐구요..왜 이렇게 자꾸 생각나는거죠?
매번 저녁에 소금집 갈 때마다 닫혀있던 건너편 카페가 그 날은 열려있길래(초저녁이었음) 웨이팅하는 동안 기다릴 겸 들어가봤는데 너무 좋잖아ㅠㅠ
인스타그래머블한 감성은 아니지만, 그냥 노트북 하나 가지고 가서 하루종일 창 밖을 바라보고 싶은(??저기요?) 편안한 분위기에 너무나 맛있는 라떼를 제공해주는 곳이었다.
금주의 웹툰
(좌)네이버웹툰 까마중 작가님의 찬란하지 않아도 괜찮아, 새벽 - '진짜' 어른은 머리로 이해가 안가는 것도 '그럴 수도 있지'라고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 아닐까.
(우)네이버웹툰 맷집왕 작가님의 여기 악마가 있어 - 최근 겪었던 일들과 관련해서, 스타트업의 투자와 관련해서 너무 공감하는 말이다. 모든 훌륭한 기업들이 다 투자를 받는건 아니니까(아닌가?). 투자가 없다면 우리는 '그' 문제들을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
어쩌죠? 서울에 살고 싶은 곳이 한 군데 더 늘어버렸어요.
는 남산 위에 초가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