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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독한PD May 10. 2020

EBS극한직업 PD는 어떻게 유튜버가 되었을까?

독한PD 에세이

나는 올해 13년 차 프리랜서 방송 프로그램 제작 PD로 일하고 있다. 13년 동안 주로 교양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을 제작해왔다. 가장 기억에 남는 프로그램은 <EBS 극한직업>이다. 2012년~2014년도에 한 달에 한 편씩, 3년 동안 33개의 직업을 취재하고 제작을 했다. 촬영 현장은 프로그램의 제목처럼 극한의 현장이었다. 일주일 동안 갈치 잡이 배에서 먹고 자며 살면서 느꼈을 멀미도 다 느껴봤고, 약초꾼들을 따라다니며 산뱀에게 위협도 당해보고 벌에 쏘이기도 했다. 2주 동안 호스피스 병동을 촬영할 때는 말기암 환자들의 죽음을 매일 지켜봐야 하는 의사와 간호사의 마음도 느낄 수 있었다. 나는 PD라는 직업으로 다른 사람의 삶을 통해 세상을 배워가고 있었다. 그렇게 5년이 흘렀다. 시작은 작년 10월이었다. 유튜브를 시작해보기로 한 것이다.



"방송 프로그램 제작하는 일도 바쁘고 힘든데 유튜브까지 한다고?"


처음 내가 유튜브를 한다고 했을 때 주변 사람들의 반응이었다. '저지름의 미학'이라는 말이 있지 않은가? 일단 저질러봤다. 사실 유튜브를 시작하기 전까지 엄청나게 고민을 했다. 내 얼굴을 불특정 다수에게 공개를 해야 했고 방송 선후배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지 의식도 됐다. 더군다나 PD라는 직업 특성상 항상 카메라 뒤에서 출연자를 촬영만 했지 카메라 앞에 나서는 건 늘 어색했다. 떨리는 마음으로 차가운 카메라의 빨간 녹화 버튼을 눌렀다. 그리고 말없는 렌즈를 바라보며 내가 왜 유튜브를 하게 됐는지에 대해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사람이 아니라 기계를 바라보며 혼자 말하는 상황 자체가 정말 코미디였다. 어찌나 NG가 많이 나던지. 수많은 유튜버들이 존경스러워졌다. 용기 내서 어찌어찌 촬영을 마쳤고 방송 PD 답게 편집도 뚝딱하고 자막까지 넣어 영상을 완성했다. 그리고 내 채널에 첫 영상을 업로드하는 순간 나는 또 하나의 직업이 생겼다. 그 이름은 바로 '유튜버'다.


그렇게 시작된 나의 유튜브 도전기는 작년 10월부터 현재까지 계속되고 있다. 현재 내 채널의 구독자는 577명 약 60여 개의 콘텐츠가 업로드되어 있다. 채널 이름은 EBS극한직업 PD 출신이니 <독한 PD>라고 지었다. 우리 주변에 독하게 성장하는 사람을 인터뷰나 다큐 형식으로 보여주는 채널이다.


그런데 현업 방송 제작 PD가 왜 유튜브에 도전하기로 한 걸까?


그동안 방송일을 해오면서 가장 보람 있었던 것은 내가 만든 방송 프로그램으로 시청자들에게 의미 있는 메시지도 줄 수 있고 작지만 선한 영향력을 끼칠 수 있다는 점이다. 그러다 어느 순간 시대의 흐름이 바뀌고 있다는 것을 감지했다. 일반 사람들도 유튜브 채널을 만들며 영상으로 소통하는 시대가 온 것이었다. 구독자가 백만이 넘는 대형 채널의 영향력은 방송국 이상이었다. 나 또한 10년 동안 방송일을 하며 언젠가 나만의 색깔이 있는 영상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던 찰나였다. 그 생각을 실행에 옮겼을 뿐이다. 이게 정답인지는 나도 모른다. 삶에서 정답은 없지 않은가? 내 선택에 후회하지 않도록 지금 도전에 최선을 다하면 된다고 생각한다. 해보다가 이 길이 아니면 다른 길로 가면 그만이지 않은가? 성공의 반대말은 실패가 아니라 도전하지 않는 것이라고 했다.


솔직히 나도 걱정은 된다. 지금 당장 수익이 나는 것도 아니고 본업을 하면서 시간을 쪼개서 하고 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PD는 일반 직장인들처럼 출퇴근이 일정한 것도 아니다. 제작에 들어가면 프로그램에만 매달려야 할 정도로 바쁘고 치열하다. 미치지 않고서야 유튜브 콘텐츠를 꾸준히 만들어내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었다. 하지만 나는 미쳐보기로 했다.




매주 2개의 영상을 꾸준히 업로드했다. 정말 바쁠 때는 후배 PD에게 편집을 부탁하기도 했다. 방송 스케줄이 없는 쉬는 날에는 내 채널에 출연할 인터뷰이를 만나 촬영을 했고 돌아와서는 편집을 했다. 홀로 새벽에 집에 들어가며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라며 외로움을 느끼기도 했다. 내가 출연한 모습을 보며 몰랐던 '나'를 발견할 때마다 깜짝 놀라기도 했다.


 '내가 걸을 때 이렇게 걷는구나'

 '내가 말할 때 이런 버릇이 있구나'


이런 부분은 안 좋으니 고쳐야겠다고 다짐하기도 했다. 그리고 어떻게 하면 사람들이 내 영상을 볼까 연구도 했다. 밤늦게까지 홀로 사무실에 남아 다른 유튜버들의 영상을 보기도 했고 유튜브 관련 책도 여러 권 읽어보았다. 유튜브 콘텐츠를 만드는 것이 방송 프로그램 만드는 것보다 더 재미가 있었다. 왜냐하면 방송 프로그램을 제작해 TV에 방송이 나가도 시청자들은 누가 저 프로그램을 만들었는지 관심이 없다. 하지만 내 채널에 내 영상을 업로드하면 사람들은 '독한 PD'가 만든 거라는 것을 알아봐 준다. 그리고 '좋아요'와 댓글로 피드백이 오기도 한다. '영상 잘 봤다'는 댓글을 읽으면 힘이 났다. 방송 프로그램 시청자 게시판에서 느끼지 못했던 감정을 유튜브를 통해 느껴가고 있었다. 그래서 바쁘고 피곤해도 내가 콘텐츠를 만드는 이유가 됐다. 어느새 내 영상을 기다리는 구독자가 577명이 생겼다. 작은 숫자지만 나에게는 매우 의미 있는 큰 숫자였다.


2020년 5월. 나는 방송 프로그램 제작 PD와 유튜버 두 개의 직업으로 살아가고 있다. 인생은 '전인미답(어떤 일 또는 수준에 아무도 손대거나 다다라 본 적이 없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의 길이라고 하지 않았는가? 유튜브를 시작하며 아직 가보지 않은 길이 두렵기도 하지만 나는 매일매일 설레는 오늘을 맞이하고 있다. 유튜브의 시작과 도전이 내 인생의 변곡점이 될 것이라고 믿는다. 앞으로 어떤 삶이 펼쳐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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