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샐리 Jul 03. 2017

비가 퍼붓습니다

내 마음에도


일 년에 한 번쯤 제 맘이 유난히 말랑말랑해질 때가 있습니다. 3년째 사 보는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을 읽을 때입니다. 등단한 지 10년 이내의 젊은 작가들이 치열하게 써낸 중단편 소설들을 읽다 보면 그 해에 겪어야 할 감정의 많은 부분을 경험하게 됩니다.


당신과의 만남이 잦아지던 시기 즈음, 저는 당신을 기다리다 주변 서점에서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을 샀습니다. 한 편씩 읽어갈 때마다 당신에게 조잘조잘 어떤 이야기였노라고 이야기하는 것이 즐거웠습니다. 당신 또한 재밌다며 연신 제 이야기에 반응해주었죠. 이야기가 정말 재밌었던 건지, 제가 하는 이야기라 재밌게 들어준 건지는 모르겠지만 어느 쪽이든 전 당신이 내 이야기를 정성스레 들어주는 게 좋았습니다.


7편의 소설을 읽어가는 하루하루만큼 우리가 자주 만나기 시작한 것도 이제야 겨우 일주일 정도가 지났다는 사실이 새삼 신기합니다.

오랜 가뭄 끝에 드디어 억수같이 퍼붓는 비가 온 땅을 해갈하는 지금, 당신은 연락이 닿질 않고 긴 통화 중이라며 먼저 잠들라고 했습니다. 저는 괜시리 걱정이 일기 시작합니다. 당신의 통화 내용이 무엇인지도 궁금하지만 이렇게 비가 억수같이 퍼붓는 오늘 같은 밤이, 또 마지막 장을 덮어버린 책이 어쩌면 다른 복선은 아닐까 하고.


역설적이게도 당신이 겪는 갈등의 해소는 나에게 의지하고 있던 많은 부분을 필요 없게 만들어버리진 않을까 하고. 비가 한 차례 쏟아진 다음, 개운한 마음으로 훌훌 털고 일어나 가버리는 건 아닐까 하고 말입니다. 왠지 평소와 달리 가벼운 듯한, 나를 친구로 대했던 때와 비슷한 당신의 말투가 더욱 그렇게 다가옵니다.


어찌 되든, 나에게 미안함보단 고마움이 크다는 당신의 말처럼 나 또한 원망이나 미움보단 고마움이 더욱 큽니다. 밤새 내리는 비가 내 맘에도 퍼부었으면 합니다. 그래서 내 맘도 어느 정도 당신의 마음과 비슷한 습도를 맞출 수 있길. 너무 가물거나 너무 축축해서 당신이 행여 서운하거나 부담스러워하지 않도록.




매거진의 이전글 길 가다 떨어지는 낙엽처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