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 하늘의 선명한 구름처럼
집에 가는 버스를 기다리다 정류장 옆에서 뽑기를 만들어 팔고 계시는 할아버지가 눈에 밟힌다. '2개에 500원'이라는 팻말을 붙여놓으시고 밤 10시가 넘은 시간에도 고개를 숙인 채 계속 뽑기를 만드시는 할아버지.
'어차피 사 가봐야 먹지도 않을텐데. 요즘 저런거 먹는 사람이 있나? 하루에 얼마나 팔릴까.'하는 생각들이 스치고, 넉넉하게 남은 버스 도착예상시간에 근처 빵집으로 들어갔다.
고시촌에서 제일 비싸다는 빵집에서 아빠가 좋아하는 호두 파이 한 조각과 마늘바게트를 담고나니 금세 7500원이 된다. 계산하고 나오는 길에 뽑기 할아버지는 이미 만들어놓은 뽑기도 10개는 넘을텐데 계속 뭔가를 만드시느라 분주하시다.
그래도 한 평생을 성실하게 일하신 우리 할아버지와 똑 닮으셨다는 생각에, 지갑에서 500원을 찾고 "저기.. 여기요"하고 동전을 내밀었다.
할아버지는 기대치 못한 손님을 받은 듯, 활짝 웃으시며 뭘 가져가야 할지 묻는 내게
가장 고운 걸로 가져가요
하셨다.
순간, '곱다'라는 말의 뜻이 온전히 이해가 되고, 할아버지의 웃는 모습에 마음이 환해졌다. 이제 막 도착하는 버스를 향해 걸음을 재촉하면서 내 얼굴에도 고운 미소가 피어났다.
그날 밤, 할아버지 생각이 나서 뽑기를 사왔다며 식탁에 조심스레 올려놓는 나에게 엄마 아빠는 각자 어린 시절의 추억들을 하나씩 꺼내놓으신다.
"이걸 이렇게 모양대로 자르면 하나씩 더 주는데, 여기가 고난도라고!"
"우리 시골엔 모양 없이 그냥 찍어줬는데"
7500원 어치의 빵에선 달짝지근한 버터 향이 났지만 추억이 없었고, 500원 짜리 뽑기 두개는 밤새 우리 집을 추억으로 물들여주었다.
집에 오면서 본, 밤 하늘에 뜬 선명한 구름처럼 이 밤도 그렇게나 또렷이 흘러가는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