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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다의 씁쓸한 귀여움

호주 애들레이드 동물원 방문기

by YY

애들레이드 동물원은 1883년 문을 연 호주에서 두 번째로 오래된 동물원이다(가장 오래된 동물원은 멜버른 동물원). 2009년부터 호주에서 유일하게 자이언트 판다 두 마리를 '모시고' 있다. 기사를 보니 2006년에 호주가 중국에 우라늄을 공급하기로 한 후 이루어진 판다 외교(좋은 관계를 맺기 위해 중국이 타국에 판다를 임대하는 것)의 결과였다(https://www.abc.net.au/news/2019-04-07/giant-pandas-wang-wang-and-fu-ni-to-remain-at-adelaide-zoo/10979268). 판다만큼 '정치적인 동물'이 또 있을까 싶다. 친 중국 성향의 서구 정치인을 부르는 '판다 허거(Panda hugger)'라는 단어도 있을 정도다.


IMG_5058.JPG 2016년 6월 애들레이드 동물원 자이언트 판다(학명 Ailuropoda melanoleuca)


가장 인기 많은 판다 전시관은 동물원 입구 바로 앞에 위치해 있었다. 대나무로 둘러싸인 길을 따라 들어가니 큰 야외 방사장과 번드르르한 건물이 보였다. 들어가니 중국 음악이 들렸다. 많은 방문객을 예상한 듯 사람의 공간이 판다가 쓰는 실내 공간보다 커 보였다. 마침 판다 한 마리가 대나무를 먹는 중이었다. 가짜 돌을 등지고, 타일 바닥에 앉아, 유리창 앞에서. 다른 한 마리는 내실을 비추는 카메라로 확인할 수 있었다. 작은 내실에는 선반, 해먹, 통나무가 있었다. 판다는 해먹을 가지고 놀다가 대나무를 가지고 오는 사육사를 지켜봤다. 언뜻 보면 속된 말로 '팔자 조~오타!'라는 말이 나올법한 모습이었다. 미국 애틀란타 동물원의 연구 결과, 장거리 이동 시 스트레스는 있을 수 있지만 개체별로 차이가 있으며 장기간 사육 시 복지 저하는 확인되지 않았다*. 판다 인생이 내 인생보다 나은가? 하는 의문이 들 법도 했다.


IMG_5064.JPG 돌 바닥에 태양열로 데워지는 열선이 깔려있다고 한다.


이 한 쌍은 아직 새끼를 낳지 못했다. 인공수정은 모두 실패였다. 연구 결과에 따르면 서로 좋아하는 배우자를 직접 선택할 수 있을 때 번식 확률이 높다는데*, 보전을 위해서라면 이렇게 사람들 짝을 정해 먼 나라에 데려와 엄청난 돈을 들이는 일을 할 필요가 있나 싶었다. 몇몇 동물원에서 판다 새끼가 태어난 경우가 있지만 보전에는 크게 도움되지 않는다. 이제까지 중국이 서식지에 풀어준 판다는 몇 마리 안된다. 중국 정부의 서식지 보호 노력으로 2016년에 판다의 멸종위기는 한 단계 내려갔다. 하지만 이는 단기적이며, 주요 감소 원인인 서식지 파편화 문제는 풀지 못한 채로 남아있다. 또한 판다 위주의 서식지 중심 보호도 문제다. 반달가슴곰 등 다른 야생동물들은 오히려 보호받을 수 없는 지역으로 밀려나고 말았고 그 결과, 개체수가 줄었다*. 만약 중국이 총력을 다해 이 문제를 풀도록 사람들이 압박한다면, 판다뿐 아니라 해당 보호구역에 사는 모든 생물의 다양성과 영속성이 확보될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다른 멸종위기종들은 그다지 귀엽지 않다는 데 있다. 판다는 귀엽다. 생김새 때문에 돈이 판다에게 몰린다. 판다가 그려진 로고를 사용하는 세계 자연 기금(World Wildlife Fund, WWF)도 이를 인식한 듯 '내가 판다라면 더 신경 써주시겠어요?(Would you care more If I was panda?)'라는 멸종위기 참치 보호 포스터를 만들었다. 사람들은 동물원에서 판다의 귀여움을 소비하고 떠난다. 애들레이드 동물원은 판다에 많은 돈을 썼다. 임대에 들어간 돈은 매년 1백만 달러, 전시관을 짓는 데는 8백만 달러가 들었다. 2019년, 판다 임대를 5년 더 연장하는 합의가 이뤄졌고 서호주 정부는 350만 달러를 지출할 예정이라고 한다.

wwf-tunapanda.jpg 참고 https://www.worldwildlife.org/species/bluefin-tuna


현재 코로나 책임 문제로 호주와 중국의 관계는 껄끄럽다. 이미 몇 년 전부터 중국의 자본이 호주 정치를 좌지우지한다는 우려 때문에 사이가 벌어지기 시작했다고 한다. 2024년에 연장이 되지 않는다면 판다는 중국으로 돌아가야 한다. 한편 코로나로 인해 재정적 부담을 느낀 몇몇 동물원들은 판다를 다시 중국으로 돌려보내기 시작했다. 이동 중 판다가 받는 스트레스는 상당할 것이다. 귀여운 얼굴로 대나무를 씹어 먹는 판다를 보니 저 녀석의 인생이 애처롭다. 돈과 정치적 관계에 운명이 달린 판다의 귀여움에 씁쓸함이 느껴진다.


*참고문헌 https://www.researchgate.net/publication/287109055_Free_mate_choice_enhances_conservation_breeding_in_the_endangered_giant_panda


*참고문헌 https://www.researchgate.net/publication/257247863_Giant_Panda_Welfare_in_Captivity

*동물원 동물의 국제 운송과 복지

https://www.izs.it/vet_italiana/2008/44_1/49_57.pdf


* 판다 위주 서식지 보호가 다른 야생동물에 미친 영향

https://www.researchgate.net/publication/346901501_The_hidden_risk_of_using_umbrella_species_as_conservation_surrogates_A_spatio-temporal_approach/link/5fd1e910a6fdcc697bf2f222/downloa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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