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들레이드에서 케언즈로
애들레이드 도심에서 시골로 넘어갔다. 한동안 농장일을 하기 위해서였다. 독립된 숙소가 있고 주인 분들이 먹을 것을 푸짐하게 주어 정말 마음에 들었다. 하는 일은 고수 심기나 토마토 따기, 당근 포장 등 비교적 쉬웠다. 아침에 4시간을 일하고 나머지 시간에는 미드 '왕좌의 게임'을 정주행 하며 놀았다. 달리기만 했던 내 인생에 이런 시간이 생길 줄이야.
어느 날 청소를 하고 침대에 누웠는데 벡에게서 연락이 와 있었다. 벡은 내가 석사 과정 중 호주 타운즈빌 대학에 머물렀을 때 친해진 친구다. 당시 나는 릭 스피어 교수님 댁에 머물며 조교인 벡과 함께 3개월간 몇 가지 연구를 수행했다. 벡이 보낸 내용은 릭 스피어 교수님이 어젯밤에 차 사고로 돌아가셨다는 것이었다. 나는 믿을 수 없어 몇 번이고 메시지를 읽다가 눈물을 흘렸다. 고작 일주일 전에 이메일로 곧 가겠노라고 연락한 터였다. 호주에 도착하고 아내분과는 통화를 했었는데... 나는 릭 교수님에게 전화하지 않은 것을 후회했다. 이제 그 목소리를 들을 수 없는 줄도 모르고...
2008년에 타운즈빌에서 릭 교수님의 가족과 보낸 시간은 나의 인생관을 바꾸었다. 열린 마음으로 사람을 대하고 베풀며, 삶 속에 유머가 있고 사랑이 있고 존중이 있었다. 연구가 잘 안되어 '제 스스로가 싫어요'라고 말했을 때 '그건 절대 허락할 수 없단다.'라고 말씀하셨던 분이었다.
병아리 연구자에게 많은 조언을 해주시고 진심을 다해 가르쳐주셨다. 떠나는 날에는 나를 위해 사람들을 모아 파티를 열어주셨다. 한국으로 돌아가는 공항에서도 비행기 안에서도 벌써 그 시간이 그리워 많이 울었다. 그 이후로도 교수님 내외가 한국을 방문하시기도 하고 내가 다시 호주 학회에 가기도 하며 자주 왕래했다. 이번에도 찾아뵙고 댁에서 며칠을 머무르기로 했었는데...
교수님의 아들 벤에게도 연락이 왔다. '장례식에 꼭 와야해. 아버지가 너를 참 아꼈어...'는 말을 들으니 또 눈물이 났다. 며칠 후 비행기를 타고 케언즈로 갔다. 차를 빌렸는데 오랜만에 호주에서 운전을 하고 마음도 무거워 많이 긴장됐다. 장례식에는 많은 사람들이 모여있었다. 벤이 추도사를 읽었다. 아버지가 동물을 사랑하기 때문에, 전염병 연구와 예방을 위해 오지를 돌아다녔기 때문에 겪었던 일화들을 나누었다. 웃음과 그리움, 슬픔이 뒤섞인 시간이었다. 나중에 아내분께 자초지종을 들으니, 다른 차가 사고를 냈지만 오히려 그 운전자는 하나도 다치지 않았다고 했다. 언덕 위에 새로운 집을 지어 편안한 은퇴 생활을 기다리던 두 분께 이런 일이 생기다니 마음이 아렸다. 교수님을 만나 내가 더 좋은 사람이 되었다고 자신한다. 나도 교수님처럼 좋은 영향을 주는 사람이고 싶다.
... 수의사이자 양서류 질병 전문가, 열대 지방의 소외된 사람들을 위해 노력한 공중보건 의사, 직접 구충을 먹고 내시경 카메라를 삼켜 연구한 열정적인 기생충 학자였으며 좋은 아버지, 많은 이들의 스승, 아름다운 사람이었던 교수님을 기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