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쓰기 위한 준비를 위한 준비
요즘 재미있게 보고 있는 유튜브 '공부왕찐천재홍진경'에는 공부를 하기 위해 준비를 하는 홍진경의 모습이 나온다. 필기구가 적당하지 않다며 문구 쇼핑을 하고, 호두를 사고, 기를 받기 위해 서울대까지 가는 그녀를 보니 도무지 남일 같지 않다.
지금도 내 몸을 도서관에 끌고 오기까지 커피를 준비하고, 바나나를 싸고, 그것도 모자랄까 봐 나를 우쭈쭈 해줄 초콜릿을 두 가지나 사고서야 자리에 앉았다. 자리를 찾으려고 보니 오전 10시 반인 지금, 마땅히 앉을자리가 없어 돌돌 돌았다. 게다가 노트북 충전이 안 되는 자리다. 준비성 없이 온 나는 21%, 아니 지금은 17% 남은 배터리가 다른 사람이 자리를 뜰 때까지 버텨주길 바랄 뿐이다.
그동안 도서관에 오지 않은 이유는 많다. 어느 날은 집에서도 글이 잘 써져서, 코로나 확진자 발생으로 시작한 락다운 때문에, 락다운이 끝나고는 마스크를 쓰기 싫어서, 마스크를 안 써도 됐을 때는 그냥 오늘은 날이 아니어서 집에서 예전에 본 하트 시그널을 보며 괜한 가슴만 두근거렸던 것이다.
16% 남았는데 여전히 자리 주인들은 망부석이다. 나만 공부 안 하고 온 것을 깨달은 시험 직전처럼, 사람들이 이렇게 열심히 뭔가를 하고 싶었나 싶어 아차 싶다. 글을 쓰려면 가장 필요한 덕목이 바로 '지구력'이다. 엉덩이를 얼마나 오래 붙이고 앉아있느냐다. 자판 위에 손가락들이 팝핀이 아니라 부르스, 아니 막춤이라도 추길 바라면서 어쨌든 앉아서 시간을 보내야 한다.
14%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