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장동물 보호소: 팜애니멀레스큐에서 보낸 한 달
돼지들은 자기들끼리 먹을 걸로 아웅다웅하지만 사람들에겐 친절했다. 봉사자들이 배를 문질러주면 돌아 누워 한껏 스킨십을 즐겼다. 진흙탕에서도 한껏 뒹굴었다. 닭은 어디서든 가장 아늑한 곳을 찾아 알을 낳고 흙에 몸을 비벼 몸에 붙은 벌레를 떼어냈다. 누구에게도 피해를 주지 않는 삶이었다. 좁은 배터리 케이지에 갇힌 스트레스로 서로를 물어뜯는 행동은 없었다. 그래서 공장식 축산 시스템에서 '생산성 향상'을 위해 하듯이 이빨을, 꼬리를, 부리를 잘라낼 필요가 없었다.
이곳에 있으면서 호주의 축산업에 관한 이야기도 들을 수 있었다. 호주하면 드넓은 초원에서 마음껏 풀을 뜯으며 행복하게 사는 소들을 상상한다. 나 또한 그랬다. 하지만 깊숙이 들여다본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물론 소나 양들은 상대적으로 넓은 공간에 방목해 키우지만 도살장으로 가는 과정에 물과 먹이 없이 며칠을 버텨야 한다. 2018년에는 호주에서 중동으로 수출한 살아있는 양들이 운송과정에서 고통받고 죽는 모습이 동물보호단체에 의해 드러나 큰 이슈가 되기도 했다.
돼지와 닭은 열악한 환경에서 키우는 경우가 많다. 닭을 방사해 상대적으로 자유롭게 키워서 얻은 프리 래인지(Free range) 계란도 시중에서 쉽게 구입할 수 있지만 좁은 케이지만 벗어났을 뿐 여전히 많은 닭들이 충분한 공간을 얻지 못한 채 살아가고 있었다.
이 보호소에 있는 동물들은 모두 이런 열악한 환경에서 빠져나와 더 나은 삶을 살 기회를 얻었다. 송아지 '케일'과 '알피'는 농장에서 필요 없는 수컷이었다. 우유를 만들지 못하기 때문이다. 소는 임신을 해야 우유가 나온다. 사시사철 우유가 나오는 젖소가 따로 있는 게 아니다.
하지만 우유가 많이 필요한 사람들은 암소를 임신시키고 새끼를 떼어 놓는다. 그렇게 하면 빨리 다음 임신을 시켜 우유를 뽑을 수 있다. 수컷이 태어나면 죽여서 송아지 고기용으로 팔지만, 케일은 만성 폐렴에 걸리고 알피는 온몸이 진드기로 덮여 있어 아무도 원하지 않았다.
첫날 먹이를 먹으려고 울타리를 넘었던 소의 이름은 '샘'이었다. 어미 '프레셔스'가 도살장으로 끌려갈 때 임신 중이었다. 이런 경우 어미를 죽이고 뱃속의 새끼는 가죽으로 쓴다고 한다. 그런데 트럭에 너무 많은 소들을 쑤셔 넣어 자리가 없었다. 이동비용을 들이는 것보다 파는 게 이득이었기에 프레셔스와 샘은 팔려서 살아남았다.
염소 '조슈아'는 유기농 방사 목장에서 태어났다. 동물복지상도 받은 곳이었다. 염소 우유를 생산하는 이 곳에서도 수컷은 필요 없기 때문에 태어난 지 며칠 안에 죽을 운명이었다. 다행히 죽기 전에 형제와 함께 구조되었을 때, 조슈아의 몸은 진드기와 벼룩으로 뒤덮여 있었다. 같이 온 형제는 스트레스로 얼마 지나지 않아 죽었다.
한 달을 동물들과 함께 지내면서 단지 소, 염소, 돼지, 양, 닭이었던 동물들은 저마다 이름과 성격을 가진 특별하고 의미 있는 존재로 다가왔다.
함께 지낸 봉사자들과도 많이 친해졌다. 숙소에는 동물성 식품이나 물건을 가지고 들어올 수 없다는 원칙이 있어서 친구들과 매일 다양한 재료로 맛있는 비건 음식을 만들어 먹었다. 나는 어묵이 안 들어간 떡볶이, 고기 없는 잡채, 계란 없는 비빔밥 등 한식을 대접했다. 액젓 없는 김치전이 가장 뜨거운 반응을 얻었다. 밤에는 모여 채식, 동물복지, 환경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보았다.
이제까지 어떤 동물을 '먹고 싶다'는 욕망이 오로지 나만의 취향으로 한 선택이었는지 아니면 주어진 환경에 의해 무의식,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인 것인지 생각해봤다. 축산업과 자본주의의 장막을 걷으며 보다 주체적인 선택을 하고 싶었다. 더 이상 동물들이 먹거리로 보이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