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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기가 아닌 동물(1)

농장동물 보호소: 팜애니멀레스큐에서 보낸 한 달

by YY

농장동물 보호소인 팜애니멀레스큐(FAR: Farm Animal Rescue)에서 한 달간 자원봉사를 하기로 했다. 브리즈번에서 조금 떨어진 한적한 동네 '대이보로(Dayboro)'로 갔다. 봉사자들끼리 지내는 숙소는 소, 돼지, 닭, 오리, 염소 등 온갖 동물로 둘러싸여 있었다. 도착한 지 얼마 안 되어 한 소가 쌓아놓은 먹이를 먹으려고 울타리를 넘어서 난리였다. 나는 멍하니 서 있다가 한 염소에게 뿔로 허벅지를 받혔다. 첫날 잠깐 사이에 완전 다른 세상이었다. 바로 동물이 주인인 세상이었다.


IMG_6154.JPG 인간을 위해 살지 않는 동물들의 삶


모두 세어보니 소 13마리, 돼지 7마리, 닭 19마리, 오리 1마리, 염소 13마리, 양 8마리였다. 봉사자들은 해 뜨는 시간(당시 5시 45분)에 일을 시작해 해가 질 때까지(당시 6시) 일했다. 각 동물들이 자는 곳을 깨끗하게 청소하고 밥을 주는 일과였다.


IMG_6169.JPG 지혜로운 간달프 같던 올리버. 어린이 동물원에서 왔다. 아이들을 싫어한다.


굉장히 간단해 보이지만 이 한 문장 안에는 인간의 아우성과 곡소리가 숨어있다. 염소 우리를 청소할 때는 오자마자 나의 허벅지에 피멍을 안겨준 녀석의 눈치를 보며 피해 다녀야 했다. 소나 닭 우리를 청소할 때는 장갑을 끼고 손으로 똥을 직접 집어 들었다. 먹이를 향해 달려드는 돼지를 피해 빠른 시간 내에 먹이를 주고, 자기 걸 다 먹고 다른 돼지에게 달려들지 않는지 봐서 모자람 없이 줘야 했다.


엉성한 울타리 구멍 사이로 고개를 들이밀어 다른 소의 먹이를 먹으려는 소를 피해 달리고, 맛있는 사료가 가득한 차로 돌진하는 동물들에게 먹이를 던지고 바로 차로 뛰어들곤 했다. 차는 오래된 지프였는데, 경사가 급하고 포장이 안된 비탈길을 내려갈 때는 시동이 꺼지기도 하므로 정신을 바짝 차려야 했다.


IMG_6310.JPG 돼지 농장에서 구조된 돼지들. 살을 급격히 찌우는 방식으로 키워졌다.


거기에 덧붙여진 일은 동물들이 행여나 너무 멀리 나가 차에 치이거나 길을 잃지 않도록 수를 세는 것이었다. 한 가지 넘어야 할 산은 전체 부지가 63만 제곱미터, 그러니까 19만 평 정도라는 점이었는데 실제로도 거의 산을 누벼야 했기에 허벅지 근육 성장률은 항상 신기록을 경신했다. 다행인지 염소 중 한 마리에게 매일 아침 위치 추적 장치를 걸어주었다. 염소들은 무리를 이루어 다녀서 한 마리만 찾으면 모두를 찾을 수 있었다.


IMG_6862.JPG 갱들...


다만, 그 장치가 가끔, 아니 자주 잘못된 신호를 보내는 게 문제였다. 과거 멀리 나간 양이 차에 치였던 경험을 가진 보호소 대표 브래드는 그때마다 우리에게 문자를 보내 염소를 찾아 놓으라고 했다. 거의 이틀에 한 번은 하던 일을 중단하고 염소들을 찾으러 돌아다녀야 했다. 맛있는 먹이를 준비해 놓고 드럼통을 쳐서 소리를 내면 대부분 돌아왔지만 몇 번 반복되다 보니 염소들의 작당모의에 맞춰 끌려다니는 느낌이 들었다.


IMG_6657.JPG 시동이 꺼지곤 했던 차


매일매일이 어렵고 긴박한 과제의 연속이었지만 넓은 곳을 매일 뭔가를 들쳐매고 뛰고 움직인 덕에 점점 건강해졌다. 언어 문제도 쉽게 해결됐다. 미국 친구는 처음에 나와 만나 일을 하다가 '이 언어 장벽을 어떻게 넘지?'라고 말하며 걱정했는데 하루하루 격정의 날들을 함께 보내며 눈빛만 보고도 손발이 맞았다. 미국, 캐나다, 이탈리아, 프랑스에서 온 봉사자들과 일하다 보니 나의 몸 근육 중 혀까지 훈련이 되어 의사소통을 하고 서로를 지켜주는 데 별 문제가 없었다.


한 달을 동물들과 함께 지내며, 이제까지 살면서 동물들 본연의 모습을 본 적이 없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 곳에서는 동물들 모두가 자신의 삶을 살아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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