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레이시아 바투 동굴: 이름 많은 '게잡이원숭이'
말레이시아의 힌두교 성지 바투 동굴에 갔다. 쿠알라룸푸르 도심에서 전철로 30분을 달려 역으로 나오자 많은 사람들이 동굴 쪽으로 향했다. 함께 흘러 나가 입구에서 처음으로 만난 것은 힌두교 원숭이 신 '하누만' 입상이었다. 두 발로 우뚝 선 모습은 사람 같았지만 원숭이 얼굴에 꼬리도 보였다. 그 주위를 진짜 원숭이들이 호위하듯 둘러싸고 있었다. 바닥에 있는 음식물을 집어 먹고 있는 녀석들은 '게잡이원숭이'였다.
이 원숭이의 이름은 다양하다. 필리핀에 살기 때문에 필리핀 원숭이, 꼬리가 길어서 긴 꼬리 원숭이, 실험에 쓸 때는 사이노몰거스 원숭이라고도 불린다. 농작물을 먹는 유해동물, 원 서식지가 아닌 홍콩에서는 외래침입종이지만 동남아시아 여러 나라에서는 멸종위기종이다. 우리나라에서는 불법 애완동물로 키워졌던 '삼순이'로 유명하다. 이름이 이렇게 많다니 사연도 많아 보였다. 원숭이들을 뒤로하고 동굴 쪽으로 걸어갔다.
동굴 앞에는 전쟁과 승리의 신 '무루간' 입상이 보였다. 42미터의 거대한 사람의 모습에 머리부터 발끝까지 황금색으로 뒤덮여 있었다. 뒤로는 동굴로 올라가는 272개의 계단이 있고 그 주변에는 더 많은 사람들과 게잡이원숭이, 비둘기가 뒤섞여 혼란스러웠다. 계단에는 관광객들의 과자나 음료수 등을 먹기 위해서 원숭이들이 눈을 부릅떴다. 경쟁이 치열했기에 실제로는 주는 것을 받아먹기보다는 빼앗을 틈을 노렸다. 신이 아닌 거지나 도둑의 모습이었다.
야생동물을 그렇게 만든 원인은 원숭이들이 원래 살던 자연을 파괴하고 도시로 밀려난 그들에게 먹을 것을 준 사람들이다. 하지만 그런 원숭이들은 피해자가 아니라 '욕심 많은', '미친', '공격적인' 존재로 묘사되곤 한다. 관광지뿐 아니라 거주지나 농장에서도 미움을 받는다. 쓰레기통을 뒤져 주변을 더럽히고 애써 키운 바나나와 망고 등을 가져가기 때문이다. 말레이시아 정부는 이들이 유해동물이라는 이유로 2012년에 약 십만 마리를 죽였다. '인간의 안전을 도모하고 경제적 손실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라고 했다. 사람들은 때로 이 지구가 오직 사람만을 위해 존재한다는 착각에 빠지는 듯하다.
다른 한 편에서는 이런 방식으로는 문제를 해결하기 어렵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완충지대를 조성하고 먹이를 공급해 사람과의 마찰을 줄이고, 지역민과 관광객들이 야생동물을 대할 때 지켜야 할 수칙을 적극적으로 알릴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동굴 내부는 비현실적으로 거대했다. 누구나 갈 수 있는 사원이 있는 곳과 제한적으로 입장객을 받는 보전구역으로 나뉘어 있었다. 가이드를 따라 손전등을 들고 보전 구역 안으로 안으로 들어갔다. 10종의 박쥐, 그리고 거미, 뱀 등 눈에는 잘 보이지 않던 황홀한 생태계가 존재했다.
사원이 있는 곳에는 원숭이, 비둘기 그리고 왠 닭 한마리까지 들어와 있었다. 4억년에 걸쳐 만들어진 동굴을 배경으로 앉아 있는 원숭이들은 사뭇 달라보였다. 물론 그곳에서도 한 아이가 원숭이에게 아이스크림을 빼앗긴 모양이었다. 콘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나를 짠히 쳐다보는 원숭이의 모습을 보고 히말라야를 옮겼다는 하누만을 떠올리기란 어려웠다.
만약 지금 신이 원숭이의 모습을 하고 우리 앞에 나타난다면 어떨지 상상해봤다.
'아니, 제발, 지금은 안돼요. 사람들이 당신을 알아보고 존중할 때까지 조금만 더 기다려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