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울프 헤븐 인터내셔널
늑대는 한 때 가장 번성했던 포유류다. 북미 대륙은 늑대의 천국이었다. 하지만 유럽인들이 들어오며 천국은 지옥으로 바뀌었다. 농축산업의 확대로 늑대가 살던 곳은 농경지나 목초지로 변했다. 늑대의 먹이인 큰 야생 초식동물은 줄고 사람들이 키우는 가축이 늘었다. 늑대는 당연히 소나 양을 잡아먹었다. 사람과 충돌한 늑대들은 악마의 누명을 쓰고 살해당했다. 사람들은 19세기부터 현상금을 걸고 닥치는 대로 잡아들였다.
그 결과 1920년대에는 극소수의 야생 늑대가 간신히 명맥을 이어갔다. 사람들은 1970년대에 이르러 상황을 인지했지만 본격적인 보호활동은 한참 후에야 시작됐다. 옐로우스톤 국립공원은 1990년대 중반부터 회색늑대를 풀어 성공적으로 정착시켰고 덕분에 전체적인 생태계가 되살아났다. 그런데 늑대 개체수가 늘어나며 또다시 사람과의 갈등이 시작됐다. 많은 돈을 받고 엘크 사냥을 하게 하는 업주들은 늑대가 엘크를 먹어 불만이다. 목축업자들은 늑대를 감시할 인원을 더 고용해야 해 지출이 늘었다며 아우성이다.
이런 늑대들의 안식처 '울프 헤븐 인터내셔널'이 있다는 말을 듣고 시애틀에서 차로 한 시간을 달려갔다. 이곳은 자연으로 돌아갈 수 없는 늑대와 늑대개를 보호할 뿐 아니라, 멕시코 회색늑대와 붉은 늑대를 번식해 자연으로 방사하는 멸종위기종 보전기관이기도 했다. 나중에 보니 야생동물 전체가 아닌 늑대, 곰, 대형 고양잇과 동물, 영장류 등 특정 종류만을 보호하는 보호단체들이 많았다. 보다 전문성 있고 집중적인 활동을 할 수 있어 바람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곳에는 제한적인 입장을 허용해 가이드를 따라 50분가량을 둘러보는 교육 프로그램이 있었다. 입장료, 기부금, 기념품 판매, 입양(실제로 동물을 데려가는 것이 아닌 후원하는 방식), 자원봉사 등으로 꾸려나가는 단체였다. 미리 예약을 하고 제시간에 도착하니 방문객들이 열댓명 정도 모여 있었다. 들어가기 전 간단한 주의사항을 들었다.
이곳은 직원조차도 늑대에게 절대 손을 대지 않고 어울리지도 않는 곳이니 절대 가까이 가거나 신체적인 접촉을 해서는 안된다는 말이었다. 늑대를 못 볼 수도 있으며, 늑대의 복지를 위해서라면 언제든지 프로그램은 중단된다고 했다.
생추어리가 동물원과 다른 점이 바로 이것이었다. 방문객들은 늑대의 쉼터에 온 손님이지 돈을 내고 늑대를 관찰하는 권리를 누리기 위해 온 것이 아니었다. 그러므로 떠들어서도 안되고 간식을 먹어서도 안됐다. 인간이 아닌 동물 중심의 공간이었다.
가이드를 따라 들어가 늑대 한 마리 한 마리의 이야기를 들었다. 그중 늑대개 '런던'이 인상적이었다. 알래스카는 '늑대의 나라'라고 불릴 만큼 늑대로 유명하다. 그래서 늑대와 개를 교배시킨 늑대개도 많다. 런던은 주인이 영화에 출연시키려고 데리고 있다가 훈련이 어렵다고 버렸다고 했다.
TV 프로그램과 영화에 동물이 나오면 사람들의 흥미를 끌고, 이것이 수많은 부작용을 야기하는 경우를 많이 봤다. 미디어에 나오는 '귀엽고 멋진' 동물들은 사람들의 소유 욕구를 자극한다. 그 욕구가 충족되고 현실과 마주쳐 겪는 어려움은 유기나 포기로 이어진다. 고통은 동물의 몫이다.
사람은 늑대나 늑대개를 길들일 수 없다. 늑대개가 개와 섞였다고 늑대의 성질이 사라지지 않는다. 늑대개는 성적으로 성숙하면 있던 곳을 떠나고 싶어 한다. 늑대가 가족과 함께 살다가 2살이 되면 무리를 떠나는 것처럼. 자연환경이 아닌 인간의 환경에서 본능을 충족시키지 못한 늑대개들은 물건들을 파괴하거나 갑자기 공격 성향을 보인다. 그 결과 늑대개의 80%가 안락사된다. 또 다른 늑대개 '주노'도 주인의 차를 박살내고 이곳에 왔다. 미국은 일부 주를 제외하고 늑대개 번식 및 소유가 불법이지만 여전히 많은 이들이 늑대개에 대한 욕심을 놓지 않는다.
늑대개뿐 아니라 야생동물인 늑대를 키우다 버리기도 한다. '셰도우'도 그렇게 버려지고 버려지고 버려지다 이곳에 왔다. '야생동물을 길들인다'는 것에 어떤 환상이 있길래 야생동물을 가축화하지 못해 안달인가. 동물 관련 프로그램이나 유튜브에 버젓이 북극여우나 사막여우, 수달, 원숭이 등을 집에서 키우며 '사고뭉치'정도로 의인화해 묘사하는 장면이 나올 때마다 끔찍하다. 야생동물을 데려다 놓은 동물카페도 마찬가지다.
그런 환경에서 인간과 함께 산다면, 자유롭게 본능을 표출하고 삶에 어떤 의문도 없이 야생동물 그 자체로서 살아갈 수 없다. 그래서 나는 누군가 무심코 던지는 '키우고 싶다'는 말이 무섭다. 누군가 정말 실행에 옮기고 거기에 누군가 박수를 치거나 돈을 줄까 봐.
둘러보던 중 근처에서 기차의 기적 소리가 들렸다. 늑대들이 하울링을 시작했다. 그 가운데서 느낀 기분을 뭐라고 설명할지 아직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