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우드랜드파크 동물원
캐나다 밴쿠버에서 버스를 타고 미국 시애틀로 넘어왔다. 이번 미국 여행에서 가장 보고 싶은 동물원 중 하나가 '우드랜드파크 동물원'이었다. 최초로 '몰입 전시(immersion exhibit)'를 적용한 곳이기 때문이다. 몰입 전시란 동물원을 방문하는 사람들이 마치 자연에서 동물을 만나는 느낌을 가지도록 환경을 조성하는 전시 기법이다. 야생과 비슷하게 식물을 많이 심거나 식물처럼 보이는 구조물들을 만들고 울타리, 건물 벽 등 인공적인 모습은 최대한 가린다.
또한 동물을 가운데 두고 여러 곳에서 관찰하던 방식을 벗어나, 일부 관람 공간만을 노출시키고 동선은 복잡하게 만든다. 그 결과, 방문객들은 구불구불한 길을 따라가다 우연히 동물을 만나 숨어서 보는 듯한 경험을 한다. 동물은 사람들의 시선에 몸을 항상 노출시키지 않아도 되고 사람들은 주변 환경에 몰입되어 동물이 보이지 않는 상황을 받아들이기도 한다.
미국에서는 1960년대부터 생태와 보전을 향한 관심이 커지며 동물원을 바라보는 눈도 달라졌다. 곳곳에서 동물원 환경을 향한 비판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동물원은 스스로의 역할을 자문하며 동물 복지와 보전 중심으로 동물원을 개선할 필요성을 느꼈다. 링컨파크 동물원은 1975년에 고릴라가 사는 환경을 보다 자연스럽게 개선했다. 하지만 여전히 그물이나 밧줄 등이 많아 인위적이었다. 고릴라들이 다양한 행동을 하기에는 좋았지만 야생에 있는 것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이듬해 우드랜드파크 동물원 원장 데이비드 핸콕은 생물학자 데니스 폴슨, 건축가 존 코와 함께 동물원 변화를 위한 장기 계획을 세웠다. 그리고 여기에 몰입 전시 개념을 도입했다. 그 시작은 고릴라 전시관이었다. 우드랜드파크의 고릴라들은 야생에서 사는 것처럼 보였다. 나뭇잎을 먹고, 땅을 헤집고, 낮잠을 자고, 풀을 뒤집어썼다. 자신을 쳐다보는 사람들을 신경 쓰지 않고 스스로의 삶을 사는 모습이었다.
방문객들은 유리창을 통해 고릴라들을 가까이서 볼 수 있었다. 한 고릴라가 유리창 앞에 앉아 있어서, 많은 사람들, 특히 아이들이 그 앞에 많이 몰려 있었다. 그때, 그 고릴라가 자신이 싼 똥을 집어 먹기 시작했다. 똥을 먹는 식분증은 야생에서도 볼 수 있다. 특정 시기에 특정 식물을 먹은 후 나온 똥을 먹어 영양소 흡수율을 높이고 독성을 줄이기 위해서다. 그런데 사육 상태의 고릴라에서 이 식분증이 현저히 많이 나타난다(56개 기관 206마리 고릴라 중 반 이상). 스트레스와 지루함이 원인으로 지목되며 충분한 자극을 제공하면 줄어든다는 보고가 있다.
'으유~ 똥먹고 있어!' 아이들은 소리를 질렀다. 몰입을 무참히 깨는 그 순간은 마치 엔지 장면 같았다. 그런 생각이 들었다. '몰입 전시'란 세련되게 만들어진 연극무대가 아닐까 하는. 물론 철장에 갇힌 동물을 보기보다 더 자연스러운 환경에 있는 동물들의 모습은 사람들의 이해를 돕는다. 방문객은 자신이 야생에 있는 느낌을 받으며 더 집중할 수 있고 사람이 동물보다 우월한 지위에 있다는 인식도 줄어든다. 동물원은 설득력 있는 환경에서 '우리가 동물들을 잘 돌보고 있다'는 메시지를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가 보는 장면이 진짜 야생은 아니다. 우드랜드파크 동물원처럼 진짜 식물과 흙이 있는 곳도 있지만 식물처럼 보이는 콘크리트 구조물이나 자연의 색을 칠한 바닥과 벽으로 어설픈 무대장치를 해 둔 곳도 많다. 그런데 그 어색함을 방문객이 잘 느끼지 못하는 이유는 이미 그런 장면에 많이 무감각해져 있기 때문이다. 어색함은 동물들만이 느낄 뿐이다.
동물들이 제한된 환경에 있다는 사실도 변함없다. 같은 동물원에서 식물들 사이로 정형 행동을 하는 곰과 재규어도 보았다. 가려져 있기 때문에 주의 깊게 보지 않으면 그저 이쪽에서 저쪽으로 걸어가는 것처럼 보였다. 몰입 전시가 사람들의 시선에서 동물을 가려주는 것뿐 아니라 동물원의 기본적인 틀, '동물을 가둔다'는 사실을 가리는 역할도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몰입'의 주체는 동물이 아니라 인간이다.
몰입 전시의 요소 중 하나는 '종물이 제한된 환경에 사는 것처럼 보이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사파리처럼 넓은 공간에 사는 듯한 동물들도 안 보이는 해자와 전 책으로 둘러싸여 있다. 이런 전시 기법은 환상이다. 어쩌면 동물들은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는 시멘트 바닥과 철장 안에 사는 것을 원할 수도 있다.
몰입전시가 동물에게 야생에서 경험하는 복잡성과 변화를 조금이라도 쥐어준 데 의미가 있을지 모른다. 허나 동물원에서 동물을 보는 사람들은 이런 장막을 걷고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우리가 잠깐 보고 떠나는 동물원 무대에서 동물들은 평생을 산다. 영화 트루먼쇼의 주인공처럼 리얼리티 프로그램에 출연했다. 야생동물의 모습을 직접 아주 잠깐 보고싶어하는 누군가에 의해. 죽을 때까지 카메라는 계속 돈다.
https://pubmed.ncbi.nlm.nih.gov/29664132/
https://psycnet.apa.org/record/1986-13877-0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