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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Y Aug 02. 2021

야생동물과 거리두기(1)

미국 옐로우스톤 국립공원

 1872년, 미국은 옐로우스톤을 국립공원으로 지정했다. 세계 최초였다. 지금 이곳에는 그리즐리 불곰, 흑곰, 회색늑대, 바이슨(아메리카들소), 엘크(와피티사슴) 등 수많은 야생동물들이 보호받으며 산다. 아름다운 자연을 만나기 위해 매년 4백만 명 이상이 방문한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 속에서 동물들이 야생 그대로 살아갈 수 있을지 궁금했다. 옐로우스톤에서 3박 4일을 보내기로 했는데 짧게만 느껴졌다. 말로만 듣던 그 '옐로우스톤'에 간다니. 미국 여행의 하이라이트가 될 터였다. 


솔트레이크시티에 도착해 튼튼한 차를 빌렸다. 캠프 장비 가게에서 텐트, 침낭, 냄비 등을 사고 마트에 들러 먹을거리도 충전했다. 옐로우스톤에서 시작해 애리조나주 투손까지 내려갔다가 샌디에이고, LA 등을 거쳐 요세미티 국립공원까지 올라가는 여정으로 한 달을 잡은 로드트립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캠핑 경험도, 미국 운전 경험도 없이 참 용감했다. 옐로우스톤으로 가는 길은 엄청 넓고 아무것도 없어 마치 다른 행성 같았다. 군데군데 로드킬로 죽은 동물들만 이곳이 지구라는 사실을 알려주었다. 제한 속도가 130km/h인데 경찰이 없으니 다들 150으로 달렸다. 동물들이 피할 수 없는 게 당연했다. 


옐로우스톤 서쪽 입구에 도착했다


차로 4시간 반 걸려 서쪽 입구에 도착했다. 옐로우스톤 말고도 미국 내 여러 국립공원에 가기로 해서 연간 회원권을 80달러에 샀다. 맘 같아선 1년 내내 국립공원에만 다니며 살고 싶었다. 첫 숙소인 그랜트 빌리지 캠프장으로 가는 길에 사람들이 차를 세우길래 따라 세웠다. 땅에서 물이 솟아올라 수증기를 내뿜었다. 간헐천이었다. 옐로우스톤에서 어떤 장소가 유명한지 많이 알아보지 않았기 때문에 처음 만난 간헐천이 무척이나 신기했다. 이곳을 처음 발견한 사람은 어땠을까. 몸에 닿으면 화상을 입을 수 있는 온도라는 데 아무것도 모르고 누군가 손이라도 담갔을 상상을 하니 자연이 무섭게 느껴졌다. 그래, 원래 자연은 무서운 것이었지. 


처음 만난 간헐천 


도착한 캠프장 시설은 유명한 국립공원이라 그런지 생각보다 좋았다. 따뜻한 물이 나오는 샤워실, 코인 세탁기, 작은 편의점과 주유소까지 있어 그다지 불편함을 못 느낄 것 같았다. 다만, 밥을 먹으려고 준비물을 챙길 때 중대한 실수를 깨달았다. 그것은 바로 버너를 빼먹고 왔다는 사실... 급히 가게에 갔더니 아주 작은 알코올램프 같이 생긴 것뿐이었다. 물을 데우는 데만 한참 걸렸다. 힘들게 허기를 채우니 비가 오기 시작했다. 비를 맞으며 텐트를 쳤다. 그렇게 첫날이 지났다. 


장비의 소중함...나약한 인간이여...그런데 훌륭한 버너없이도 잘 먹고 잘 지내다 왔다 ㅎㅎ


입구에 들어설 때 받은 지도를 보니 옐로우스톤에는 큰 8자 모양의 도로가 있었다. 길은 계절이나 날씨에 따라 폐쇄되기도 했다. 때는 9월, 노리스부터 매머드 핫 스프링까지의 구간이 막혔다. 방문하기 좋은 계절은 역시 여름이었다. 지금은 곰들이 겨울잠을 자기 위해 고도가 높은 곳으로 이동 중이라 보기 힘들다는 말을 들었다. 눈앞에서 곰과 마주치고 싶은 마음은 없었지만 그래도 볼 수 있을지 기대됐다. 


캠핑장에 갈색 철제 상자가 있었는데, 곰이 음식 냄새를 맡고 사람들 가까이 오는 것을 막기 위해 준비한 음식 저장고였다. 모든 캠핑장에서는 식사 후 모든 것을 치우고 텐트 안에도 음식을 남겨 놓으면 안 됐다. 쓰레기는 봉지에 넣어 쓰레기통에 버려야 했다. 당연히 모든 야생동물들에게 먹이를 주는 것도, 야생동물의 먹이를 야생에서 채취해서도 안 됐다. 금지 투성이었지만 당연했다. 


옐로우스톤 국립공원 방문자 센터에 걸려있던 그림 

예전에는 곰에게 먹이를 주는 것을 허용했기에 곰들이 사람들 가까이 왔고, 먹이를 가진 이들을 공격하는 일도 생겼다. 1890년대에는 곰들이 호텔 쓰레기통을 뒤지기 시작했는데, 1910년 즈음에는 길에서 구걸을 하기에 이르렀다. 그 뒤로 수백명의 사람이 다치고 수백마리의 곰을 죽여야 했다. 1970년이 되어서야 곰들이 공원 쓰레기통에 근하지 못하도록 조치를 취했다. 

지금은 먹이를 주면 벌금이 500달러다. 지속적인 교육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1년에 한 마리 정도가 야생성을 잃고 자꾸 사람들 근처로 온다고 한다. 방문했던 전 주에도 먹이를 찾으러 캠핑장에 접근했던 흑곰 한 마리를 죽여야 했다는 슬픈 소식을 들었다. 2016년에는 관람객 2명이 '얼어 죽을 것 같아 보이는' 송아지를 차에 태웠다. 딴에는 선의였지만 무지하고 어리석은 행동이었을 뿐이다. 그 송아지는 무리가 다시 받아들이지 않아 안락사되고 말았다. 


서쪽 입구 방문자센터에서...아무리 이런 설명이 있다한들 사람들을 통제하기란 힘든가보다..
교육 중 거리를 강조하는 래인저


이런 일을 사전에 방지하기 위해 옐로우스톤에서는 야생동물과의 거리를 가장 강조했다. 곰과 늑대는 100야드(91미터), 다른 야생동물은 25야드(23미터) 떨어져 관찰해야 한다는 규정이 있었다. 100야드가 멀게 느껴지겠지만 곰이 마음만 먹으면 불과 5-6초 만에 올 수 있는 거리라고 했다. 하지만 사고는 끊임없다. 2018년에는 바이슨이 5m 이내로 접근한 군중들을 공격해 한 사람이 다쳤고 이듬해에는 더 가까이 있던 9살 소녀를 공중에 날려버렸다는 기사를 읽었다. 


https://www.youtube.com/watch?v=X7aghlmp2y0


거리두기를 지키지 않으면 동물과 사람 모두 위험한 게 자명한데, 이를 안 지키고 먼저 선을 넘어 접근하는 쪽은 그 '똑똑'하다는 사람이다. 예전에 본 영화 쥐라기 공원 2에서 주인공이 한 행동들이 떠올랐다. 야생에서 만난 공룡에 손을 대고, 다친 티렉스 새끼를 치료하다 따라온 부모의 공격을 받고 결국 이들을 도와주려던 사람이(반으로 찢겨) 죽고 만다. 영화에 꼭 그런 캐릭터가 있어야 하는지 분통 터지며 봤던 기억이 있는데, 지금 보니 적절한 현실 반영이 아닌가! 


출처 https://www.vulture.com/2020/08/the-lost-world-is-spielbergs-nastiest-film-and-i-love-it.html

추신. 야생동물 연구한다는 사람이라면 야생동물의 똥이나 흔적에는 가까이 갈지 몰라도 야생동물에게 이렇게 가까이 가서 만지고 그러지 말아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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