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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Y Aug 05. 2021

야생동물과 거리두기(2)

미국 옐로우스톤 국립공원에서 만난동물 이야기

 

 방문자센터에는 아침마다 야생동물 설명회가 열렸다. 레인저마다 특색 있고 재미있게 이야기를 풀었다. 그중 한 레인저가 새끼 곰을 우연히 마주친 일화를 들려주었다. 깜짝 놀란 새끼 곰이 먼저 도망갔는데, 그곳엔 어미 곰이 있었다. 죽을 수 있는 상황이었다. 그때 다행히 어미가 새끼곰을 한 대 퍽 치고는 멀리 가버렸다고 한다. 그의 머릿속에는 어미곰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그러게 내 옆에 찰싹 붙어 있으랬지!' 레인저는 3-4명이 함께 다니고 소리가 날만한 물건과 곰 스프레이를 준비하라는 말을 덧붙였다. 


주로 박제나 뼈를 가지고 나와 설명해준다.


그랜트 빌리지 방문자센터 뒤에는 호수가 있었는데, 옐로우스톤 호수 서쪽에 엄지처럼 튀어나온 부분이었다. 15만 년 전 화산 폭발이 만든 지대였다. 따뜻한 물이 나와 겨울에도 얼지 않고, 그래서 주변에 엘크 사슴을 비롯한 야생동물들이 많았다. 엘크들은 사람들에 익숙해져서 그런지 경계를 덜했다. 한가로이 풀을 뜯고 물을 마시는 모습이 평온해 보였다. 하지만 완전히 마음을 놓은 건 아니었다. 너무 가까이 있거나 계속 쳐다보면 자리를 옮겼다. 


물을 마시는 새끼 엘크 
멋진 뿔을 가진 수컷 엘크

사람들은 환경 손상을 막기 위해 보드워크(데크) 위로만 걸어 다녀야 했다. 그런데 이 보드워크가 엘크에게 장애물이 되기도 했다. 뿔이 멋진 수컷 엘크 한 마리가 보드워크를 건너가려고 망설이고 있었다. 사람들은 가지 않고 기다려주었는데, 엘크는 모두가 쳐다보고 있어서 그런지 쉽게 건너지 못했다. 주저주저하다 급히 뛰었는데 하마터면 넘어질 뻔했다. 


(국내 국립공원에는 우후죽순으로 데크가 뻗어있다. 보다 안전하게 정해진 경로로 다니게 하는 이점이 있지만 필요 없는 곳까지 과도하게 설치해 오히려 미관을 해치고 무엇보다 야생동물의 행동권에 영향을 준다.)


데크 위로 걸어다니는 사람들 


바이슨은 처음엔 아주 멀리서 한 무리를 봤다. 이 무리가 옐로우스톤에 돌아오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1800년대 유럽에서 미국에 온 사람들은 원주민의 식량인 바이슨을 말살했다. 옐로우스톤에서는 1883년까지 사냥이 합법이었다고 한다. 바이슨 수백만 마리가 죽었다. 그 결과 1901년, 옐로우스톤 펠리컨 계곡에 이십여 마리만이 살아남았다.  


바이슨 가죽 1874년


1902년에는 개인 소유주로부터 바이슨을 사들여 푸는 등 개체수 회복을 위해 노력한 덕에 50여 년이 지나자 1300여 마리로 늘었다. 그런데 무리가 늘어나 행동권이 넓어질수록 사람과 마찰이 생겼다. 가축에게 먹일 풀을 바이슨이 먹고, 가축에 브루셀라병을 전파할 위험이 있어 목장주들의 원성이 컸다. 


브루셀라병은 인수공통 세균성 질병이다. 유산을 일으켜 번식률이 떨어진다. 즉, 경제적 타격을 준다. 바이슨이 가축에게 옮긴 경우는 기록된 바 없지만 엘크가 가축에게 전파시킨 사례가 있어 사람들은 예민했다. 결국 바이슨은 사람이 허용하는 범위 내에서만 자유를 얻었다. 이 땅의 모든 야생동물들이 그렇듯. 애초에 그 질병이 옐로우스톤에 들어온 것은 1900년대 초 사람들이 데리고 온 가축 때문이었다는 사실이 좀 씁쓸하다. 


그 후로 바이슨 무리를 여러 곳에서 마주쳤다. 마지막에는 도로에 차를 세우고 서있는데 한 마리가 바로 내 옆으로 지나갔다.  숨소리가 훅-하고 들렸다. 덩치만큼 큰 호흡이었다. 눈이 마주치면 차 유리창에 머리를 박아댈 것 같아 괜스레 눈을 내리깔았다. 어찌 됐든 동물의 세계에서 눈을 똑바로 마주치는 것은 예의가 아니니까. 


바이슨 무리...멀어서 다행이다 
거친 숨소리를 내며 걸어가는 바이슨...차 안에 있어 다행이었다


어느새 옐로우스톤에서 비와 눈까지 맞으며 보낸 시간이 지나고 떠나야 할 때가 왔다. 곰을 보지 못해 아쉬웠다. 방문자센터에 가면 일지가 있어 사람들이 어디서 언제 어떤 동물을 봤는지 적는데, 그중 곰을 본 사람이 있었다. 


바이슨, 엘크, 여우, 마못, 그리즐리를 봤다고 기록한 사람들...부럽..


하지만 그렇다고 곰을 찾아다닐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아쉽게 떠나던 그때, 사람들이 차를 세우고 나와 산 중턱 어딘가를 가리키고 있었다. 이럴 땐 대부분 그곳에 동물이 있기 마련이라 일단 따라 내렸다. 


곰이 있다고 했다! 옆 사람들의 이야기를 엿들으며 쌍안경으로 열심히 찾았다. 자세히 보니 아메리카흑곰이 쓰러진 나무 위에 웅크리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도대체 어디 있다는거...
결국 찾았다 사진 중앙에 위치한 검은 곰팡이 같은 생명체가 곰이다

야생 그대로 살아가는 모습을 멀리서 보니 더 기뻤다. 대다수의 사람들이 약속을 지켜야 동물들이 태어난 그대로 삶을 영위할 수 있다. 


그런데 일부 사람들은 지켜야 할 거리를 지키지 않아 동물은 스트레스를 받고 사람은 위험에 처한다. 이 글을 쓰는 와중에도 옐로우스톤에서 한 사람이 야생동물보호법 위반 혐의로 기소됐다. 곰 가족에게 너무 가까이 있다가 어미 곰의 위협을 받는 모습이 고스란히 찍혔다. 곰이 되돌아가 천만다행이었다. 


저 발로 한대 맞으면 끝.


야생 곰을 도대체 뭘로 보는 건가? 그리고 옐로우스톤은 동물원이 아니다. 동물원이 사람들에게 야생동물에 대한 두려움을 없애도록 도와준 것인가 아니면 곰돌이 인형이 나오는 영화를 너무 많이 봤나? 영화 레버넌트에서 곰에게 몸이 찢겨 죽다 살아난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를 보며 테디베어의 환상을 버리길 바란다. 


https://www.youtube.com/watch?v=-vJJKPT4ESk


옐로우스톤을 나오며, 우리나라에서 야생 적응에 실패한 반달가슴곰들이 떠올랐다. 올무나 교통사고도 있었지만 정해진 등산로를 벗어나 곰이 먹을 도토리 등을 채취하고, 곰에게 먹이를 준 사람들에게도 책임이 있었다. 곰은 야생성을 잃고 다시 자유도 잃었다. 거리두기가 이렇게 중요하다.



참고 https://www.nps.gov/articles/bison-history-yellowstone.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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