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과 식물의 천국 보르네오섬이 변해간다.
비행기를 타고 쿠알라룸푸르를 거쳐 보르네오 섬에 있는 코타키나발루 공항에 내렸다. 그곳에서 예전에 동물원에서 함께 일했던 지인 분들을 만나 함께 여행하기로 했다. 그런데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안타까운 소식을 들었다. 인도네시아에서 팜오일 농장을 만들기 위해 숲을 태우는데 그 연기가 같은 보르네오 섬에 있는 말레이시아까지 넘어와 앞을 보기도 힘들다는 것이었다.
팜오일의 영향을 현지에서 목도하니 정말 심각했다. 먼 나라 사람들은 직접 피해를 받지 않으니 팜오일이 어떤 해악을 끼치는지 알기 어려운 게 당연했다. 그래서 보르네오섬 오랑우탄 개체수가 팜오일과 밀렵으로 15만 마리나 감소했다는 소식도 그저 나와는 상관없는 이야기로 여기는 것이다.
해가 질 때쯤에는 반딧불이 투어를 갔다. 우리가 탄 배는 조용히 강을 따라 흘렀다. 주위가 어둑해지자 선수에서 한 사람이 능숙하게 손전등을 움직였다. 반딧불이가 그 빛에 홀린 듯 하나 둘 따라왔다. 짝짓기를 하기 위해서 오는 거라고 했다. 손전등으로 반딧불이를 속인다니 놀랐다. 유혹의 불빛을 따라 힘들게 왔는데 손전등뿐이라면 얼마나 당혹스러울까.
반딧불이의 또 다른 이름이 개똥벌레라 자연스레 어릴 때 불렀던 노래가 생각났다. '마음을 다 주어도 친구가 없네. 사랑하고 싶지만 마음뿐인걸' 게다가 너무 오래 손전등 빛을 비추면 따라온 반딧불이가 힘이 빠져 죽기도 한다니. 너무 가혹하지 않은가. 옆으로 밝은 전구들을 매단 배가 시끄럽게 지나갔다. 무분별한 반딧불이 관광 때문에 개체수가 많이 줄었다는데 이를 지금 막는다 해도 너무 늦지 않았을까 걱정이 됐다. 자연은 빠르게 회복할 수 있지만 사람들은 그 마지막 기회마저도 빼앗아버리곤 하니까.
여행 중간에는 지인분을 따라 타와우에 위치한 카카오 농장에도 갈 기회가 있었다. 초콜릿의 원료인 카카오를 본 것은 처음이었다. 럭비공 같은 열매 안에 수십 개의 씨앗이 있고 그 씨앗에서 초콜릿이 만들어지는 것이었다. 열매의 씨앗을 사용하는 커피와 같았다. 카카오는 남미가 원산지인데 아프리카에서 많이 생산되고 커피는 아프리카가 원산지이고 남미에서 많이 생산된다는 점을 보면 둘 사이에는 묘한 관계가 있다.
그곳에 살고 계신 분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카카오는 팜오일과도 관련이 있었다. 1980년대에 급격한 성장률을 보이던 카카오 농업은 1990년대 초반 최고점을 찍고 그 기세가 꺾였다. 수익성이 떨어지자 자본은 팜오일 농업으로 이동했다. 기형적으로 커져 거대 산업이 되었다. 어떤 산업이 몰락하면 다른 산업으로 불이 옮겨 붙고, 거기에 자본이 점점 모여들면 걷잡을 수 없이 강력해지는 구조였다. 아보카도 또한 같은 맥락이다. 이는 멕시코 마약 카르텔이나 다국적 기업의 배만 불리는 결과를 낳는다.
이에 소규모 영세 농민, 서식지를 인간이 심은 작물에 빼앗긴 야생동물이 가장 직접적인 피해를 입는다. 그리고 이런 산업과 관련 없이 사는 듯하지만 우리의 선택과 삶 모두 이 굴레 속에 얽혀 있기에 어떤 방식으로든 우리도 피해자다. 하지만 해결의 열쇠도 쥐고 있다.
사람들이 먹는 음식, 쓰는 물건, 즐기는 것들이 어떤 방식으로 만들어져 앞으로 왔는지 알아보고 올바른 선택을 해야 한다. 가려진 정보를 찾아 드러내고, 정부가 환경을 보호하는 법을 만들도록 의견을 내고 압박해야한다.
카카오 농장에서 나와 숲이 사라지고 양쪽으로 팜나무만 빼곡하게 심어진 길을 가로질렀다. 다시 보르네오섬에 오게 된다면 그 때는 오랑우탄도 없고 반딧불이도 없는 섬이 되어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부디 눈을 뜨길, 깨어있길, 보르네오섬에 더이상 연기가 자욱하지 않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