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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Y Jul 01. 2021

관광지에서 만나는 동물들의 삶

말레이시아: 더 해비탯(The Habitat)

 말레이시아 피낭에 도착해 그곳에 살고 있는 친구 루이네 부부를 만났다. 루이는 동물원에서 일하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갔던 워크숍에서 만난 아쿠아리스트다. 공항까지 데리러 나오고 저녁도 사주고 숙소로 데려다 주기까지 해서 정말 고마웠다. 첫날에는 조지타운을 돌아다녔다. 세계문화유산인 조지타운에는 성공회 교회 등 영국 식민지 시절 지어진 건물과 절에서 향을 피우고 기도하는 모습들, 사진 찍기 좋은 벽화들이 어우러져 오묘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비가 와서 잠시 몸을 녹이려고 눈에 보이는 카페에 들어갔는데 하필 루왁커피를 파는 곳이었다. 야생 사향고양이가 커피 열매를 먹으면 소화되지 않고 나오는데, 이걸 채집해서 커피를 만드는 것이다. 희소성 때문에 가격이 상당하다. 그런데 돈에 눈이 먼 사람들이 사향고양이를 아주 좁은 곳에 가두고 커피 열매를 먹여 루왁커피를 더 많이 얻으려는 욕심을 부린다. 푸아그라 때문에 거위를 가둬놓고 목구멍에 사료를 억지로 쑤셔 넣는 상황과 비슷하다. 사람들의 기호식품을 위해 이런 동물 들은 극심한 스트레스와 고통 속에 산다. 그런 카페에 제 발로 걸어 들어가다니... 당장 자리를 박차고 나와버리려 했으나 소심하게 다른 걸 시켰다. 


둘째 날에는 조지타운에서 버스를 타고 피낭 힐(Peneng Hill)로 갔다. 피낭에서 가장 높은 이곳은 영국인들의 휴양지였다. 케이블카 같은 전차를 타고 위로 올라가야 하는데 사람이 많아 30분을 기다렸다. 높은 곳에서 보는 경치는 좋았다. 하지만 여전히 더웠고 어디서든 볼 수 있는 관광지의 모습은 그다지 흥미롭지 않았다. 앵무새나 뱀과 사진을 찍는 곳은 가보고 싶은 마음이 털끝만큼도 없었다. 이를 위해 끌려다니는 동물들의 삶은 생각만 해도 끔찍했다. '왜 사람들은 노예처럼 이용당하는 동물과 사진을 찍고 돈을 내는 걸까? 동물을 단편적 이용가치로 여기게 만드는 관광상품아 없어져라...'




이런 생각을 하니 어릴 때 제주도에서 말에 올라타 사진 찍었던 장면이 떠올랐다. 때는 90년대였다. 한 아저씨가 갑자기 우리에게 말에 올라타라고 한 후 사진을 찍어주었다. 나는 뜬금없이 말에 타기 싫었지만 어쩔 수 없이 탔다. 후에 그 불편함은 고스란히 사진에 찍혀 나왔다. 말에서 내리자 그 아저씨가 어머니께 돈을 내라고 했다. 관광사기가 만연하던 때였다. 당시 어머니는 미리 이야기하지 않았으니 돈을 낼 수 없다고 하셨던 것 같다. 동물과 사진을 찍고 돈을 낸다는 발상은 누가 했을까? 1800년대 중반 물개를 보여주며 돈을 받은 독일의 칼 하겐베크의 아버지가 처음이라면, 이것이 어떻게 제주도와 피낭까지 퍼져왔는지 정말 모를 일이다. 


분주함을 피해 안 쪽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그곳에 원숭이가 그려진 표지판이 떡하니 서 있었다. 그리고 거기에 쓰인 단어는 '더 해비탯(The habitat)', 즉 서식지를 뜻했다. '이런 곳에 웬 서식지가?' 피낭에 이런 곳이 있다는 말을 들어본 적 없었다. 홀린 듯 입구로 들어갔다. 그곳은 이름 그대로 열대우림 '서식지'를 보여주는 곳이었다. 1.6km의 트레일을 따라 걸어가면 곳곳에 동물을 볼 수 있는 지점이 있다고 했다. 30분마다 가이드가 안내를 해준다기에 따라나서기로 했다. 



가이드는 대학에서 동물 생태를 연구하는 학생이었다. 운 좋게도 입구를 나서자마자 야생 검은 잎 원숭이(Dusky Langur)를 만났다. 표지판에 그려진 그 원숭이였다. 어미가 새끼를 안고 높은 나무 위에 앉아 있었다. 그런데 둘의 색이 달랐다. 어미는 검은색과 회색인데 새끼는 밝은 노란색이었다. 생후 6개월이 지나면 털색이 점점 부모처럼 바뀐다고 했다. 어미의 눈 주변에는 털이 없고 색이 밝아서 마치 안경을 쓴 것처럼 보였다. 그래서 안경 잎 원숭이(Spectacled Langur)라고도 불린다. 



길을 걸으며 토종 식물에 대한 설명도 듣고 타란툴라의 집도 관찰했다. 나무 사이를 분주히 움직이는 검은 날다람쥐도 있었다. 새들과 나비들도 가끔 모습을 드러내 주었다. 이런 곳에 있으니 나를 포함한 모든 생명이 연결돼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원래는 관광지에서 나온 쓰레기로 가득한 곳이었다. 설립자는 거액의 돈을 들여 쓰레기를 처리하고 이곳을 자연친화적 공간으로 재조성 했다. 게다가 매년 입장료의 일부를 말레이시아 자연 생태를 연구하는 대학에 기부한다고 한다. 



굉장히 영리하고 바람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들의 인식이 변한 세상이다. 구시대적인 동물 착취 관광은 설자리를 잃고 있다. 우리는 스스로의 선택이 이 세상에 더 좋은 영향을 끼치길 바란다. 그래서 루왁커피나 푸아그라를 먹지 않고 목줄을 건 슬로로리스와 사진을 찍지 않는다. 갇혀 있는 동물을 보기보다는 자연 속에서 만나길 원한다. 앞으로 관광의 흐름이 자연 안에서 주체적으로 살아가는 생명을 발견하도록 돕는 방향으로 나아갈 것이라는 증거가 바로 '더 해비탯'이었다. 그곳을 나서며 마음에 시원한 바람이 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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