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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Y Sep 23. 2021

보노보를 보노라면

미국 샌디에이고 동물원

 샌디에이고 동물원에 보노보를 보러 갔다. 유리창을 사이에 두고 한 방문객이 보노보와 눈을 지긋이 마주치고 있었다. 그 사람은 손으로 보노보의 이마를 문지르듯 유리창을 문질렀다. 보노보는 고개를 끄덕였다. 서로가 유리창에 머리를 대고 눈썹을 씰룩 이기도 했다. 반가운 친구를 만난 듯했다. 


로레타 


다가가 인사를 하고 이야기를 나눴다. 그녀는 아프리카에서 개코원숭이를 연구했고 한 때 이 동물원에서 일한 적 있는, 이 보노보 무리와 30년 넘게 알고 지내온 사람이었다. 그래서인지 보노보들과 소통하는 데 익숙해 보였다. 그녀가 보노보들과 인사를 하고 불빛이 나오는 장난감과 휴대폰을 보여주며 오랜 시간을 보내는 장면을 보니 떠날 수가 없었다. 그들 사이의 친밀감을 조금이라도 느끼고 싶었던 모양이다.  


보노보가 얼마나 똑똑한지(좌)도 인간의 관점일 뿐이다. 보노보가 멸종위기인 이유(우)



보노보 두 마리가 유리창 앞에 딱 붙어 앉아 휴대폰 화면을 뚫어지게 쳐다봤다. 예전에 여기에서 찍어둔 보노보들 영상이라고 했다. 그들의 표정은 뭐라 표현하기 어려웠다. 다만, 분명 호기심과 놀라움으로 가득해 보였다. 눈을 크게 뜨고 눈썹은 올라갔다. 집중해서 영상을 보는 모습이 유튜브를 보는 나와 다를 바 없었다. 


https://www.youtube.com/watch?v=_8-S9dih45w&t=50s


앞서 인사한 보노보의 이름은 '로레타'로 이 무리에서 나이가 가장 많은 암컷이었다. 로레타는 수컷 카코웻과 암컷 린다 사이에서 1974년에 태어났다. 카코웻은 콩고에서 어릴 때 잡혀 1960년에 샌디에이고 동물원으로, 린다도 콩고에서 벨기에 안트워프 동물원을 거쳐 같은 곳으로 왔다. 이 부모는 그 후로 18년동안 새끼를 10마리나 낳았다. 


야생에서는 4-5년마다 1마리씩 태어나니 따져보면 훨씬 많은 수다. 원래 4년 정도 새끼를 돌본 후 다음 새끼를 임신하는데 동물원은 새끼를 린다로부터 떼어내 임신을 빨리하도록 했다. 이 둘이 어디로 갔나 찾아봤다. 카코웻은 샌디에이고 동물원에서 1980년에 심부전으로 죽었다. 샌디에이고 동물원은 그의 정자를 채취해 냉동 상태로 보관했다고 한다. 린다는 2010년에 밀워키 동물원에서 안락사됐다. 


샌디에이고 동물원의 보노보들 


보노보들이 거쳐 온 콩고와 벨기에, 그리고 미국의 관계는 식민지 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벨기에 국왕 레오폴드 2세는 19세기 말부터 20년이 넘게 콩고를 사유화하고 끔찍한 착취와 학대를 저질렀다. 고무 채취 할당량을 채우지 못하면 손발을 자르고 죽였다. 콩고 사람들을 벨기에로 데려와 '인간 동물원'에 전시하기도 했다. 


https://www.theguardian.com/world/2018/apr/16/belgium-comes-to-terms-with-human-zoos-of-its-colonial-past


콩고는 1960년 독립했지만 러시아, 프랑스, 미국 등 강대국의 지원에 따라 분열돼 내전이 끊이지 않았다. 안타깝게도 보노보는 콩고에만 산다. 내전으로 서식지는 파괴되고 사람들은 보노보를 잡아 먹었다. 그 결과 야생에 남은 보노보는 10,000마리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비교적 넓은 지역에 걸쳐 사는 침팬지보다 멸종에 취약한 상황이다. 


가운데 초록색이 보노보, 나머지는 아종별 침팬지 분포 출처 https://www.britannica.com/animal/bonobo 


보노보는 한 때 침팬지의 한 종류로 여기고 침팬지보다 작아 피그미침팬지라고 불리기도 했지만 다른 종이다. 이전부터 연구된 다른 유인원들에 비해 보노보는 워낙 잘 알려져 있지 않았었다. 대략적으로 침팬지는 수컷이 우위에 있고 공격적인 성향이 보노보보다 크다. 보노보는 암컷이 우위에 있고 싸우기보다는 성적 행위로 문제를 해결하는 평화주의자로 여겨졌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나는 인간의 잣대로 보노보를 보고 그 안에서 인간의 선한 면을 찾으려 했었다. 사람과 DNA가 98.7%나 같은 보노보에게 의지하려 했다. 98.8%가 동일한 침팬지처럼 인간도 그래서 자꾸 전쟁을 일으키고 싸우는 거라고 단정 지었다. 그런데 야생의 무리를 오랫동안 관찰해보니, 보노보가 새끼를 공격하거나 죽이고 먹기까지 하는 사례가 발견되었다. 또다른 한 편에서는 다른 무리에게까지 먹이를 나눠주는 경우도 있었다. 


인간으로서의 욕망을 정당화시키려는 마음과 고정관념이 동물을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하게 만든다는 생각이 들었다. 침팬지가 못되고 보노보가 착하다는 식의 이분법으로 동물을 판단해서는 안 되는 거였다. 동물원이라는 제한된 환경에서 본 행동이 전부가 아니듯, 야생에서도 먹이 등 그때의 상황에 따라, 그리고 인간의 개입에 따라 많은 것이 영향을 받는다. 우리는 아직도 동물에 대해 모른다. 동물을 안다고 자부하는 인간이 동물을 대상화시킬 때 또는 거기에 자신을 어떻게 투영하느냐에 따라 우리와 다르거나, 또는 같은 존재를 대하는 법이 크게 달라질 수 있다는 점이 섬뜩하게 느껴졌다. 






https://animals.sandiegozoo.org/animals/bonob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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