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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Y Oct 18. 2021

동물 복지를 위한 노력은 어디까지

미국 브룩필드 동물원 

 브룩필드 동물원은 링컨파크 동물원에서 차로 30분 정도 떨어진 거리에 있었다. 다른 동물원을 갈 때보다 긴장되는 한편 기대도 됐다. 지인을 통해 브룩필드 동물원 직원분들을 만나기로 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동물 복지, 보전, 연구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수준 높은 동물원이라는 말을 많이 들었기 때문이다. 시카고 동물학회라는 비영리 기관에서 운영하며 미국동물원수족관협회의 인증을 받았다. 


입구로 들어가니 두 개의 사자상 주변에 호박이 널려 있었다. 핼러윈 즈음이었다. 주위를 둘러보니 푸릇푸릇한 나뭇잎들이 노랗게 변한 곳들이 있었다. 도심에 있는 링컨파크보다 더 넓고 자연에 둘러싸인 느낌이 드는 동물원이었다. 



처음 나를 맞아 준 분은 영장류 팀장님이셨다. 제일 먼저 고릴라 내실로 안내했다. 들어가는 복도 옆에는 생수통, PVC관, 부머볼 등 풍부화에 사용하는 물건들이 가지런히 쌓여 있었다. 사육사실 벽에 붙어있는 큰 화이트보드가 눈에 띄었다. 세로줄에는 고릴라들의 이름이, 가로줄에는 훈련하는 행동 목록이 있었고 칸마다 구석에 알록달록 색이 칠해져 있었다. 한 행동을 한 사육사가 훈련하기 시작해 모든 사육사가 그 행동 훈련을 완료할 때까지 표시를 통해 한눈에 현황을 알 수 있도록 했다. 



고릴라 사육사 분이 오셔서 훈련된 행동 몇 가지를 직접 보여주셨다. 사육사가 앞에 서자 수컷 고릴라가 테이블 위로 올라왔다. 그 아래에는 체중계가 설치되어 몸무게를 알 수 있었다. 검지 손가락을 세워 한 바퀴 돌리자 고릴라가 뒤를 돌아 등을 보이고 사육사가 등을 만졌다. 그리고 가슴, 배, 발 등을 차례로 내밀게 했다. 그렇게 몸을 만지거나 초음파를 사용해 건강검진을 위한 훈련을 했다. 고릴라 내실 한쪽에는 소변을 받는 통이 있어 그곳에 소변을 싸는 훈련도 한다고 했다. 그렇게 받은 샘플로 혈당, 호르몬 등을 분석한다. 고릴라가 올바른 행동을 할 때마다 휘슬을 불고 땅콩을 줬다. 고릴라는 모든 것을 편안하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다. 


오랑우탄 쪽에도 갔다. 고릴라처럼 배를 밀고 뒤를 도는 등 기본적인 건강 관리 훈련을 보여줬다. 나이 든 오랑우탄은 운동을 시켜야 해서 자리 옮기기와 그네 타기를 훈련했다. 보상으로는 무가당 주스를 줬다. 스프레이를 사용해 입 안에 뿌려주니 맛있게 삼켰다. 팔에서 채혈하는 훈련도 했다. 이런 훈련은 간단한 행동에서 시작해 점차적으로 목표 행동에 가까운 행동에 보상하는 방법을 사용하는데, 이를 셰이핑(Shaping, 또는 행동 형성)이라 한다. 팔을 PVC로 만든 관에 넣고, 알코올 솜으로 소독하고, 주사기를 팔에 대고, 바늘을 찌르고 피를 뽑는 과정을 동물이 받아들이는 만큼 순서대로 훈련하는 것이다.  


긍정 강화 훈련은 학대가 아닌 신뢰를 기반으로 한 훈련법으로, 훈련자가 원하는 행동을 동물이 했을 때 동물이 좋아하거나 원하는 것을 보상으로 주어 그 행동이 일어날 가능성을 높이는 방법이다. 앞선 훈련에서 사육사가 등을 보여달라고 했을 때 고릴라가 등을 보여주면 땅콩을 보상으로 주는 것처럼 말이다. 고릴라 내실 한쪽에는 소변을 받는 통이 있어 그곳에 소변을 싸면 보상을 주고 이를 가지고 혈당, 호르몬 등을 분석하기도 한다. 이 동물원의 모든 동물들은 이런 긍정 강화 훈련을 기반으로 관리되고 있었다. 훈련을 통해 동물들의 건강 관리는 훨씬 수월해졌고 동물들도 스트레스 없이 일련의 과정들을 받아들인다. 


훈련과 풍부화를 담당하고 있는 팀장님을 만나 훈련을 정착하기까지의 이야기도 들었다. 1997년, 브룩필드 동물원은 샌디에이고 동물원에 이어 미국에서 두 번째로 코끼리에 긍정 강화 훈련을 도입했다(2010년에 코끼리 전시를 포기해 현재는 코끼리가 없다). 그 전에는 돌고래 등 해양 포유류에만 적용하던 훈련 방식이었다. 훈련은 점차 전 동물원으로 퍼지고 체계화됐다. 고릴라의 경우, 아침에 사육사들이 모이면 제일 먼저 회의를 하고 훈련을 한 후에야 청소를 시작한다. 그만큼 훈련이 우선순위다. 동물이 훈련에 흥미를 느껴야 하기 때문에 한 번 할 때 오래 훈련하지 않고, 일과 중에 틈틈이 훈련한다. 


그 전에는 동물을 이동시키거나 내실에 들어가게 하려면 소리를 지르거나 호스로 물을 뿌려댔다. 동물은 사육사를 두려워했고 믿지 않았다. 야생동물은 아픔을 잘 드러내지 않기 때문에 죽기 직전에서야 동물의 건강이 악화됐음을 알았다. 알았다 해도 치료가 힘들었다. 동물을 잡아서 마취하는 과정에서도 동물은 큰 스트레스를 받고 다치기도 했다. 여전히 원래 방법을 고수하고 긍정 강화 훈련을 불신하는 사육사들도 있었다. 그런데 훈련을 통해 아주 작은 성과를 내는 것부터 시작해 동물이 달라지고 관리가 수월해지는 걸 느끼기 시작하니 많은 사육사들이 이를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브룩필드 동물원에서 훈련팀장이 됐을 때만 해도 훈련팀장이 있는 동물원은 미국 전역에 2개였지만 지금은 40개로 늘었다. 


팀장님과 함께 풍부화 도구를 만드는 곳에도 가보았다. 아티스트의 작업실 같았다. 두 사람이 한창 작업 중이었다. 벽에는 가짜 나뭇잎, 덩굴, 나뭇가지 등이 걸려 있었지만 모두 진짜처럼 보였다. PVC 관에 열을 가하고 색을 칠한 통나무 먹이통은 보기에도 자연스러워 보였다. 혀를 쓰는 기린에게는 나무껍질처럼 보이는 판 뒤에 장난감을 매달고 오랑우탄에게는 도구를 사용해서 먹이를 빼먹을 수 있는 인공 개미집을 만들었다. 모두 방문객 쪽에서는 자연의 일부처럼 보였다. 



예전에는 풍부화를 할 때 장난감 같은 인공적인 물건을 그대로 동물에게 주었는데, 이 모습을 본 사람들의 시선이 동물이 아닌 물건에 집중됐다. 브룩필드 동물원은 방문객들이 보다 자연스러운 동물들의 모습을 보길 원했다. 그래서 벽화와 회전목마를 위해 고용했던 미술가들로 풍부화 팀을 만들었다. 사육사들은 이제까지 사용하던 종이 상자나 애완용 장난감을 쓰지 못해 불만이었지만 차차 동물과 방문객 모두를 만족시키는 아이디어를 내기 시작했다. 풍부화 미술가 팀과 함께 동물이 예상하지 못하는 시간에 먹이가 나오는 먹이통을 고안하거나 움직이는 돌을 만드는 등 동물들에게 자극을 주는 물건을 발명했다. 


어떤 동물원은 자연스럽지 않은 물건이 동물을 존중하지 않게 만든다고 하고 어떤 동물원은 동물에게 좋다면 인공적인 물건이라도 사용해야 한다고 말한다. 브룩필드 동물원은 자연스러운 모습을 보여주고자 하는 의지가 있었고 거기에 적절한 인력을 배치할 수 있어 행운이었다. 나 또한 가능한 자연스럽게 보이는 것이 좋다고 생각하지만, 그렇지 못할 경우에는 인공적이더라도 조달 가능한 물건을 풍부화에 사용하되 방문객에게 충분한 설명이 필요하다고 본다. 풍부화가 브룩필드 동물원만큼 충분히 정착할 때까지는 다양한 시도를 계속해봐야 하고 무엇보다 동물들이 지루하지 않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 


동물들에게 풍부화를 해주면 생각지도 못한 동물들의 반응을 보게 된다. 알을 깨 몸에 문지르는 하이에나, 칡으로 엮어 만든 먹이통을 물고 흔드는 테이퍼, 쌓아준 흙에 이리저리 몸을 굴리는 코끼리, 숨겨진 벌레를 찾아 바삐 움직이는 미어캣, 혀를 이리저리 움직여 먹이를 빼먹는 기린을 만난다. 훈련을 처음 시작할 때 동물이 무언가를 깨닫는 순간, 스스로가 어떤 행동을 했을 때 평소와는 다른 결과가 따라온다는 것을 알게 되는 순간이 만들어내는 움직임을 본다. 생각하고 움직일 기회를 주지 않아 몸뿐만 아니라 정신마저 갇혀있던 동물들이 호기심을 가지고 시도하고 성과를 얻는 모습을 볼 때, 나는 기쁨과 슬픔을 동시에 느낀다. 



국내 동물원에 동물행동풍부화가 도입된 지 오랜 시간이 흘렀지만 아직도 여러 가지 이유를 들어 동물에게 기회를 주지 않는 곳이 많다. 치우기 싫어서, 동물에게 위험할까 봐, 시간이 없어서, 돈이 없어서, 동료의 협조가 없어서 등 안 되는 이유를 귀가 아프게 들었다. 이미 검증되고 쉬운 풍부화조차 하지 않는다. 풍부화를 너무 어렵게 생각하거나 어쩌다 해주는 일로 생각한다. 동물에게 탐색의 기회와 숨을 곳을 주는 것은 널리 알려진 동물 복지의 기본이지만 먹이를 매일 같은 시간에 한 장소에 주고 말거나 동물의 몸이 모두 드러나는 휑한 동물사를 맞닥뜨리곤 한다. 풍부한 환경을 조성해주지 않은 채 공 하나 던져주고 풍부화를 했으니 좋은 동물원이라고 말해서도 안된다. 풍부화는 동물원의 존재 가치를 대변하는 수단이 될 수 없다. 동물사를 청소한다고 자랑하지 않듯이 풍부화를 하는 것도 이제 자랑거리가 아닌 당연한 것이 되는 날을 기다린다. 


동물원은 온갖 안 되는 이유에도 불구하고 동물들을 위해 무엇이라도 더 해주려 노력하는 사육사들을 지원해야 한다. 브룩필드 동물원처럼 풍부화팀을 만들고 훈련팀장을 고용하면 좋겠지만 그 방법이 아니더라도 무슨 이유에서 풍부화가 잘 안되는지 알아보고 부족한 부분을 보충해야 한다. 브룩필드 동물원은 놀랍게도 자원봉사자가 없었다. 노조에서 자원봉사자를 받지 못하게 했는데 대신 충분한 수의 직원을 뽑는 것이 맞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들어보니 정말 맞는 말이었다. 정직원을 뽑아 충분한 교육을 통해 전문가를 길러내는 것이 동물원과 직원, 그리고 동물에게 바람직한 일이다. 동물을 위해서 동물과 함께 일하는 사람이 행복해야 한다는 점을 다시금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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