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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Y Sep 08. 2023

벌거벗은 뇌

새벽 두세 시에 잠에서 깨는 일이란

내 나체를 누군가에게 보이는 일은 주로 목욕탕이라는 허용된 공간에서 뿐이었다. 길바닥에서 나체로 있어본 적은 없었다 그런데 한밤 중에 잠에서 깨면 내 뇌가 '노출되어 한없이 당황스러운' 느낌이 든다. 그게 바로 새벽에 깨는 느낌이다.


어찌해야 할 바를 모르겠다. 남편은 그냥 다시 잠에 들려고 애쓰면 된다 말하지만 밀려오는 수많은 상념들은 두꺼운 서류가 되어 '이걸 먼저 빨리 작성해 달라' 아우성이다. 인생에 중요한 순서대로 몰려오지도 않는다. 때로는 대학 시절에 바람에 A라인 치마가 뒤집혀 뒤에 있던 동기들이 내 팬티를 목격했던 '수치심 (그러나 아무렇지 않은 척했던) 폴더'가 떠오르고, 때로는 앞으로 뭘 해서 먹고 살 거냐 너는 그 나이가 되도록 아직도 그러고 있냐 같은 '잔소리성 폴더'가 열린다. 수만 번 이불킥을 해도 이런 폴더들을 뻥 차버릴 키커의 자질은 없고, 차곡차곡 모아 변태처럼 다시 뇌에 구겨 넣는다.


이런 당혹감을 꽤 오래 느꼈다. 기간으로 치면 아마도 일 년은 넘었던 것 같다. 어찌할 바를 몰라 유튜브를 보기도 하고, 다른 방에 가서 자보기도 하고, 뭔가를 해보려 했지만 대부분은 그냥 누워서 뇌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하릴없이 받아들이며 고통스러워했다. 그러던 중 이런 생각이 들었다. '뭔가 이유가 있을 거 아니야. 이렇게 속수무책으로 발가벗고 있을 게 아니라 옷을 주워 입어보자.'



"미국 수면학회 Li J 박사는 반복적으로 같은 시간에 깨는 원인에 대해 크게 불면증, 스트레스, 노화, 호르몬, 다른 수면장애 등을 꼽았다."

출처 : 메디팜스투데이(http://www.pharmstoday.com) 2022.04.01


기사를 읽어보니 너무 당연한 말 같아서 실소가 나왔지만 엄근진 하게 받아들여 그동안의 내 생활을 돌아보기로 했다.


불면증. 어쨌든 잠에 들기는 하니 불면증까지는 아니다.

스트레스. 없다고 할 순 없지. 하지만 무엇으로부터?

노화. 일어나는 시간이 빨라졌는데 노화로 인해 호르몬이 부족해서라는 기사를 봤다. 맞지 이거.

호르몬. 중복. 그런데 햇볕을 많이 쐬지 않아서 그런 것 같기도 해.

다른 수면장애. 나 설마 코골이인가? 아닌 것 같아


아마도 여러 가지 원인이

겹친 듯한데 간단히 이렇게 부르기로 했다

‘우울증’


가벼운 불면과 막막한 스트레스, 마흔 넘은 이로서 인정해야 할 노화의 시작, 더불어 시작된 호르몬 부족과 그 어떤 수면 장애가 뒤얽혀 나는 우울증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우울증이 아니면 설명이 되지 않았다 그래서 햇빛을 보러 나가지 않았고 걷지 않았고 멜라토닌 분비에 영향을 받았을 테고…


‘그렇지 않고서야 이렇게 우주에 내던져진 느낌에 들리 없어’


진공의 우주에 나체로 버려진 사람처럼 숨을 쉴 수 없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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