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 그냥 예쁘잖아
제가 백화점에 근무하면서 신기했던 점 중에 하나가 바로 결혼식 하객룩이었습니다. 왜 다들 저렇게 비슷 비슷한 가방만들고 오는거지? 마치 누가 지시한 듯 똑같은 브랜드의 비슷한 컬러. 심지어 저는 이제 회사 사람들 결혼식에 가면 바로 알 수 있습니다. 샤넬 가방을 들은 여성 그룹이 있는 테이블은 백퍼 백화점 동료직원들. 와이프도 누가 백화점에서 근무하는 여자가 아니랄까봐 웬만한 결혼식에는 반드시 샤넬 가방을 들고가요.
그런데 GS를 다니는 제 친한 친구들도 비슷한 이야길 하더라고요. 자기 회사도 그런 문화가 있다고. 그래서 결혼 시즌에는 항상 샤넬, 루이뷔통 매장 앞에는 설과 추석과 비슷하게 긴 대기 행렬이 늘어섭니다. 맞아요, 소위 말하는 예물, 예단이지요. 정말 한국적인 문화이기는 하지만 주변에 대다수가 명품 가방을 들고있는 상황이라 이제 저는 명품 브랜드가 아닌 가방으로 스타일링을 잘 하는 사람이 훨씬 멋져 보이더라고요. 뭐 다들 그렇게 이야기합니다. 남에게 보여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예뻐서 구입한거라고. 하지만 잘 알고 있다구요. "나 이 정도 가방 사주는 남자에게 시집갔어', 내지는 '나 이 정도 가방 구입할 정도로 성공했어.'라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바로 샤넬 가방이지 않습니까. 물론 이런 이야길 하면 소위 '된장녀' 드립을 하며 남자들을 혀를 차지요.
하지만 이러한 비판을 하는 남자도 사실 마찬가지에요. BMW, 메스세데스 타고다니는 것이 사실 시트가 편해서겠어요? 페라리는 시끄러운데다가 시트도 얼마나 불편한데요. 포르쉐 운전하다가 엔진 나가면 5천만원입니다. 그래서 저는 결국 과시욕으로 지출할 거라면 명품백 쪽이 훨씬 안전자산에 투자하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차량은 감가가 엄청 심하거든요. 맥라렌 같은 경우는 구입과 동시에 1/3이 날아간다고 합니다. 이에 비해 샤넬 2.55 캐비어는 매년 가격이 오르는데다가 상품권이나 5% 에누리적용도 안되어 가지고만 있어도 물가 상승률 이상의 중고가격 상승이 있기 때문에 훌륭한 투자상품이라는 말이 있어요. 뭐 그렇다고 제가 샤넬을 사야한다고 주장하는건 아닙니다만.
그런데 저는 -사고가 꽤 순수한 편이라서- 이런 문화가 곳 사라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혼수.예단 문화가 저는 과거 남성이 부동산을 준비하는 문화에서 기인하였고, 또 가부장적 사회에서 여성이 출가하는 의미에 대한 보상이었다는 생각을 해요, 하지만 요즘 밀레니얼들은 그런 사고로 결혼하지 않는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조만간 결혼식장에서 샤넬을 들고 오는 행위 자체가 약간 올드해 보일 수도 있겠단 생각을 합니다. 스몰 웨딩도 많고, 아예 결혼식 없이 유럽처럼 동거하는 분들도 많아졌대요. 이런 분들이 결혼한다고 와이프를 위해 샤넬을 구입하겠어요? 유행은 돌고 돈다는 얘기가 있듯 조만간 젊은 세대들에겐 샤넬의 과도하게 흔한 모습들에 질려 오히려 가방 없이 출근하는 룩이 유행할지 모르죠.
지난해 칼 라거펠트의 서거 소식이 제게는 불현듯 '샤넬 가방'이라는 기호를 해석하는 한국의 문화를 떠올리게 했었습니다. 그는 한국에서 샤넬이 페미니즘이나 트위트 보다는 결혼식 예단과 하객룩으로서 소비되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고는 있었을지 궁금했거든요, 굿바이 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