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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경애 Jan 04. 2024

어른답게

주차장에서 미끄러져 팔꿈치에 금이 갔다. 한 달 동안 반깁스를 하고 불편하게 살았다. 깁스를 푼 다음에도 오른팔은 영 힘을 못 쓰고 조금이라도 오른팔을 쓰게 되면 금새 통증이 느껴지기도 했다. 그동안 사용하지 않아서 근육이 굳어서 그러니 물리치료를 받아야 한단다. 치료를 받고 나면 팔이 부드러워지기에 시간이 날 때마다 물리치료를 받으러 갔다. 담당 물리치료사는 매번 바뀌었지만 치료방법은 동일했다. 다들 친절하여 기분 좋게 치료를 받았고, 치료받으며 누워 있는 동안 밖에서 들려오는 그들의 이야기도 재미있었다.      

그날은 유난히 앳된 물리치료사가 나를 맞았다. 그녀가 전에는 마지막에 하던 빨간 불빛 열치료를 먼저 하기에 좀 달라졌나 생각하고 있는데 10분이 지나도록 열치료를 하고 있다. 뭔가 미심쩍은 생각이 들어서 치료사를 불렀다.

“오늘은 치료 방법이 바뀌었나 봐요. 예전에는 하얀빛을 쬐는 심부열치료를 먼저 했는데요.”

“아, 순서는 상관없어요.”

내 말을 듣고 그녀 옆에 있던 다른 물리치료사가 대신 대답하기에 나도 그런가 보다 하며 쉽게 수긍하였다. 그런데 잠시 후 밖에서 다른 물리치료사가 내 담당 물리치료사에게 치료 순서를 차근차근 설명하는 소리가 들렸다. 아픈 부분에는 이 순서가 더 효과적일 수 있다는 말을 덧붙이며. 아무래도 오늘 내 담당 물리치료사는 경력이 짧은 새내기인 듯하다. 그래도 뭐 한 번쯤 어떻게 받아도 문제될 것은 없지 생각하며 열치료를 받고 있는데 20분이 넘도록 타이머가 울리지 않는다. 열치료는 전기치료와 함께 받을 때를 제외하곤 10분 이상을 넘긴 적이 없었다. 아무래도 타이머 설정을 안 한 것 같았다. 그러나 또다시 말하면 내 담당 물리치료사가 무안해 할 것 같아서 고민만 하였다. 

‘그래 이 정도는 참아줄 수 있어야지, 그래야 어른이지.’  

그러면서도 신경은 온통 시계로만 향했다. 지금쯤은 말해도 되지 않을까, 이건 명백히 잘못된 것 같은데.... 갈등이 심해지는 그 때 문득 작은아이가 떠올랐다. 작은아이는 필라테스 새내기 강사이다. 처음이라 그런가, 수업을 하고 오면 상기된 표정으로 그날의 수업에 대해서 이야기하곤 한다. 오늘 수업은 좀 헤맨 것 같아서 고객들에게 많이 미안했다고. 그럼에도 순둥순둥한 눈빛으로 자신의 수업을 받아주는 고객들이 마냥 고맙다고. 그런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고객들이 참아준다고 그대로 있으면 안 된다고, 더 열심히 노력해야 한다고 조언하면서도 작은아이를 배려해주는 고객들이 참으로 고마웠다. 그들 덕분에 작은아이는 자신감을 잃지 않고 성장하고 있다. 

그러니 나도 여기서 말을 아껴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 꾹 참았다. 결국 타이머는 울리지 않았고 25분쯤 지나자 다른 물리치료사가 와서 열치료기를 거두어 가고 심부열치료를 시행하였다. 그 순간, 나도 모르게 말이 툭 튀어나왔다.

“오늘은 좀 오래 걸리네요?”

“네, 오늘 치료사 선생님이 처음 와서....”

“네, 괜찮아요.”

말하는 순간부터 아차 싶었다. 괜찮으면 말을 하지 말았어야지. 어린 물리치료사를 배려하겠다고 생각했으면 끝까지 지켰어야 했는데 이렇게 나는 결국 그녀의 잘못을 꼬집어 말하고 말았다. 배려심 많은 어른이고자 했으나 결국은 그렇지 못한 나의 모습에 한숨이 났다.

 다음 단계인 전기치료를 나의 담당 치료사 대신 다른 치료사가 진행하는 것을 보며 미안한 마음이 더 커졌다.

‘결국 나는 어린 치료사를 힘들게 했구나. 우리 작은아이에게 시간을 주었던 고객들에게 고마워하면서도 나는 내 자리에서 그들처럼 기다리지 못했구나, 나의 치료만 생각하며 처음 세상에 나서는 그녀의 처지는 헤아리지 못했구나.....’ 

그때 밖에서 또 이것저것 상냥하게 일러주는 선배 치료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좋은 선배들을 만난 것 같아 다행이다 싶었다. 거기에 고객들이 좀 더 배려해서 그녀에게 시간을 준다면 곧 익숙해지겠지. 다음번에는 정말 어른답게 행동해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미안한 마음으로 치료실을 나오는데 그녀의 표정이 생각보다 밝아서 안심이 되었다.     

“팔 안쪽이 불편하신 거죠? 염증을 치료하는 심부열치료부터 시작하겠습니다. 치료받으면서 불편한 점 있으면 말씀해 주세요.”

오늘 병원에서 다시 만난 그녀는 며칠 새 한껏 능숙하게 치료를 시행하고 있다. 그 모습이마냥 흐뭇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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