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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경애 Jan 30. 2024

여행의 이유

구례 쌍산재의 푸른 대나무숲에서였다. 대나무의 푸른 그늘이 싱그러웠다. 순간 불어오는 바람과 함께 밀려오는 댓바람 소리가 나의 발길을 잡았다.

쏴아.... 쏴... 아... 아...

대숲에 부는 바람에 대나무 기둥이 부딪히고 있었다.

다그닥... 다... 그... 닥...

익숙하지 않은 풍경이 마냥 좋아서 걸음을 멈추었다.

“어렸을 때 잠자기 전 늘 듣던 소리네.”

함께 걸어가던 친구가 말했다. 담양에서 자란 친구에게 대나무는 익숙한 풍경이고 익숙한 소리란다.

참 신기하다. 내게는 여행지에서나 볼 수 있는 새로운 풍경인데 누군가에게는 늘 옆에 있는 일상이었다니.....

여행으로 만난 새로운 공간에서 이루어지는 새로운 대화는 사람을 새로이 알게 한다.


“하동의 재첩국이 가장 맛있었어요.”

여행 중 다시 한번 먹고 싶은 음식을 이야기하며 내가 뽑은 음식이었다.

어렸을 적에 봄가을이면 마을 앞 개울에서 재첩을 잡았다. 엄마는 재첩으로 육개장처럼 얼큰한 재첩국을 끓여 주셨다. 하동의 재첩국은 그와 달리 뽀얗고 순한 맛이지만 익숙하게 느껴지는 진하고 구수한 국물에서 옛맛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런데 친구는 다슬기 요리가 가장 맛있었단다. 어렸을 때 어머니가 커다란 확에 다슬기를 넣고 갈아서 만들어 주었던 다슬기탕이 익숙한 음심이란다. 역시 먹어본 맛에 끌리는 것이다.

새로움을 찾아간 여행에서 익숙함에 끌린다는 것이 아이러니하지만 우연히 만난 익숙함 또한 특별한 즐거움이었다. 그와 더불어 소환되는 추억에 마음도 훈훈했다.


하동 최참판댁을 찾아갔다. 그곳에서는 아래에 있는 옷가게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냈다. 화창한 날에 어울리는 화사한 원피스에 끌려 이것저것 입어보는 재미가 쏠쏠했다. 새 옷으로 갈아입고 최참판댁을 거닐며 어린아이처럼 신이 났다. 발길 가는 대로 향하는 일탈은 여행의 또 다른 재미이다. 최참판댁에서 찍은 사진이 유난히 밝은 것은 그 일탈이 준 선물이었다.


벚꽃이 진 쌍계사 십리벚꽃길은 신록이 대신했다. 섬진강을 옆에 두고 달려가는 길에 푸른 터널이 생겼다. 벚꽃이 지면서 사람들도 물러가서인가, 차도 드물고 사람도 없어서 한없이 한가로웠다. 그 한가로움에 내 마음도 탁 풀어졌다. 일상에서 벗어났다는 생각이 물씬 일었다.

저녁예불의 북소리와 종소리가 울려 퍼지는 쌍계사에 사람 소리 대신 새소리가 청량했다. 사성암 법당에 앉아 산들바람맞으며 마애불상을 바라보는 시간은 한없이 평화로웠다.

아침 산책길에 만난 차밭에 막 비쳐오는 햇살이 부서지는 모습이 아름다웠다. 찻잎향 가득 풍기는 차밭을 거니는 시간이 특별했다.

구례 대나무숲길을 바람과 함께 걸었다. 푸르른 그늘을 벗어나 펼쳐진 노란 갓꽃길이 고요했다. 불어오는 강바람에 흔들리는 갓꽃 숲에 또다시 평화가 스며들었다.

일상에서 벗어나 여유롭게 특별한 풍경 속을 걸으며 마음을 탁 풀어놓을 수 있는 경험은 여행의 또 다른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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