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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경애 Jan 23. 2024

작은엄마 얄밉지

녁에 또 무엇을 해 먹지 생각하다가 김치냉장고 속에서 참나물을 발견하였다. 형님이 주신 나물 가운데 하나인데 워낙 많은 것을 주셔서 잊고 있었나 보다. 받아온 지 오래되었는데 아직도 푸릇푸릇 싱싱해서 먹을 만하다. 가지런히 정리된 것을 풀어서 씻으려니 하나하나 다듬어 포장하는 형님의 모습이 보이는 듯하다.

시골에서 농사를 지으시는 형님은 봄이면 온갖 나물을 보내 주신다. 두릅, 가죽나물, 참나물, 미나리, 머윗대 등 잔뜩 주시는 나물 덕분에 우리의 봄 식탁은 늘 향긋하다. 많이 주셔서 주변 사람들과 나누어 먹어야 할 정도이다. 그 중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것은 두릅이다. 형님이 아주 여릴 때 따서 주시기에 살짝 데쳐 놓으면 향기는 물론 부드러운 맛이 그만이다. 이번에는 형님이 나물을 주시면서 두릅이 좀 안 좋다며 미안해하셨다. 농협마트에 판로가 생겨서 두릅을 판매하게 되었는데 반응이 좋아서 질이 좋은 것은 다 팔았단다. 나는 그 말이 오히려 반가웠다. 살림이 그리 여유롭지 않은 형님댁이기에 매년 농사지어서 형제, 조카들에게 퍼 주기만 하는 모습이 늘 안타까웠기 때문이다. 그런데 막상 집에서 나물을 풀어 보니 두릅은 여전히 상태가 좋다. 예전과 다를 바가 없다. 그런데 그렇게 미안해하시다니, 그냥 주는 것인데...... 형님의 마음이 마냥 고마우면서도 문득 내가 이러한 마음을 받을 자격이 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렸을 때 친정엄마가 친척들에게 바리바리 싸 주던 것을 지켜보며 속상해했던 기억이 떠올라서이다.


8남매의 맏며느리인 엄마는 시부모님을 모시고 살며 우리 5남매를 길렀다. 식구가 많은데다 농사를 지으시니 엄마는 늘 바빴다. 집안일과 더불어 들일까지 해야 하니 늘 일에 치여 살았다. 친척들이 다 모이는 추석 등의 명절이 되면 그 바쁨은 배가 되었다. 예전에는 무엇이든 직접 만들어서 먹어야 하니 송편, 전, 약과 등 찾아오는 친척들과 함께 먹을 명절 음식을 준비하다 보면 온 식구가 동원되어도 하루가 부족했다. 거기에 양은 또 얼마나 많이 하는지 송편을 빚다 보면 멀미가 날 정도였다. 그 기본적인 것을 미리 마련해야 하니 명절 며칠 전부터 엄마는 엉덩이를 붙일 새도 없이 바쁘게 움직였다. 그런데 그 틈틈이 엄마는 수확한 농작물을 잘 다듬어 창고 한 켠에 정리하였다. 고구마, 콩, 쌀, 참기름, 채소 등을 5개로 나누어 차곡차곡 정리해 쌓아 놓았다. 추석에 내려오는 작은집과 고모들에게 줄 요량이다. 덕분에 명절을 쇠고 각자의 집으로 돌아가는 작은엄마와 고모의 손은 농작물과 명절 음식으로 묵직하였다. 그것을 건네 주는 엄마의 표정이 밝았음에도 나는 속상했다.

‘작은집이나 고모네는 도시에서 우리보다 잘 사는데.... 엄마가 뼈빠지게 농사지은 것을 저렇게 쉽게 주다니, 우리 엄마가 얼마나 고생하는지도 모르고 고맙다는 간단한 인사만 남기고 저렇게 쉽게 받아 가다니....’

나누어 주는 엄마나 받아 가는 친척들이나 다 야속해서 내가 불만을 토로하면 ‘줄 것이 있는 것이 얼마나 좋으냐’며 엄마는 나를 달래곤 하셨다. 그 때 나는 절대로 농사짓는 맏이에게는 시집가지 않으리라, 그래서 이렇게 손해만 보는 삶은 살지 않으리라 다짐했었다.


다행(?)히 나는 직장생활을 하는 막내와 결혼을 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내가 원망했던 작은엄마의 모습으로 살고 있다. 나물은 물론 들기름이나 깨소금, 마늘까지 이것저것 챙기는 제 엄마를 지켜보고 있는 조카를 보고 있자니 저 아이도 내 마음 같지 않을까 하여 괜히 미안한 마음이 든다.

“작은엄마 얄밉지? 엄마가 힘들여 농사지은 것 이렇게 쉽게 가져가니....”

“아뇨, 이것저것 싸 줄 것이 있어서 엄마는 좋다고 하시던 걸요? 엄마 좋아서 하시는 일인데요 뭘.”

순간 가슴이 뭉클해진다.

‘줄 것이 있으니 얼마나 좋으냐.’

형님의 이 말이, 엄마의 이 말이 진심임을 이제는 느껴서이다. 주고받는 계산 없이, 잘 살고 못 사는 계산 없이 그저 가진 것을 주고 싶은 마음을 읽을 수 있어서다. 그 진정한 베풂을 내가 받고 있으니 어렸을 적 나의 원망이 한없이 부끄러워진다.


올해 나는 텃밭을 분양받아 몇 가지 채소를 가꾸고 있다. 농사꾼 딸이라 예전에는 힘겨운 노동으로만 느껴지던 밭농사가 이제 하고 싶으니 나도 나이를 먹어가나 보다. 하루에 한 번씩 밭을 오가며 채소들이 커가는 모습 살펴보는 것도 좋고 지인들에게 밭을 보여 주며 쌈 채소를 나누어주는 것도 좋다. 며칠 전에도 친구들에게 밭에서 쌈 채소를 뜯어 선물하였다.

“엄마, 쌈 채소를 줄 수 있어서 좋았던 거야, 텃밭을 자랑할 수 있어서 좋았던 거야?”

친구들에게 쌈 채소 나눔을 하고 기분이 좋아 이야기하고 있는 나에게 딸아이가 뼈 때리는 말을 한다. 벌써 세 번째 이야기하는 거라며, 아무래도 엄마는 나눔보다는 자랑을 더 좋아하는 것 같다는 것이다. 그건 아니라고 딸아이에게 눈을 흘겨 보지만 마음 한 켠이 찔린다. 나눔을 빙자한 자랑, 곰곰 생각해 보니 나의 베풂에는 ‘나의 과시’가 들어 있는 것 같다. 결국은 베풂이 아니라 나의 만족을 위한 이기적인 행동이었던 것인가? 진정한 베풂은 ‘나’를 빼고 ‘너’만 생각할 때 온전히 실행할 수 있을 것 같은데 그 경지는 나에게는 아직 요원한 것일까?


형님이 준 참나물을 끓는 물에 넣으니 진한 향기가 퍼진다. 그 향기 속에 정성껏 나눌 것을 준비하던 엄마의 모습이, 형님의 모습이 떠오른다. 그 따뜻한 참마음으로 오늘 참나물은 더 맛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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