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순의 시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쇠약해지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고, 얼마 전에는 중환자실에 들어가신 것을 알기에 오래 사시진 못하겠다는 생각은 했지만, 막상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들으니 한숨이 먼저 나온다.
‘이렇게 또 한 분이 이 세상을 떠나시는구나.’
나이가 들어가면서 자주 겪는 일인데도 죽음은 익숙해지지 않는 쓸쓸한 소식이다.
삼척의료원 장례식장에 있다는 소식과 더불어 코로나 상황인데다 장례식장이 멀리 있으니 오지 말라는 말이 따라왔다. 먼 곳에 찾아올 친구들을 배려한 말이지만 우리에겐 우리의 도리가 있으니 가야지.
‘그럼 차 안에서 노닥노닥 수다 떨면서 여행하듯 다녀가든가.’
굳이 가겠다는 우리의 생각에 덧붙인 영순의 당부가 아니어도 아름다운 4월이기에 조문길은 저절로 여행길이 된다. 노랑연두 빛깔의 새싹과 하얀 꽃, 분홍 꽃이 가득한 봄길을 소소한 이야기를 나누면서 가다 보니 생각보다 쉽게 장례식장에 도착했다.
환하게 웃고 있는 영정사진이 보기 좋다. 가족을 잃은 슬픔이야 어쩔 수 없겠지만 웃고 있는 모습을 보는 가족들의 마음이 조금은 편안해질 것 같다. 오랜만에 보는 영순 남편의 모습은 허룩하니 꺼칠하다. 꽤 오랫동안 성남과 삼척을 오가며 아버님 병간호를 했으니 이제 홀가분함도 있으련만 그보다는 슬픔이 더 큰 모습이다. 자식에게 부모란 존재는 참.... 예전에 나이 지긋하신 지인이 ‘이제 부모님이 다 돌아가셔서 자신은 고아’라고 했던 말이 생각난다. 그 때는 ‘다 큰 어른이 무슨 고아’라며 웃었는데 엄마의 죽음이 주는 상실의 크기를 알게 되고는 그 마음을 이해하게 되었다. 삶의 순간순간에 갑자기 사무쳐오는 그리움에 울컥하는 감정을 여러 번 겪으면서..... 감당해야 할 것인지만 때로는 쉽지 않은 슬픔이다.
조문을 마치고 식사를 하는데 영순과 가족들이 이것저것 살뜰하게 챙긴다. 강원도 장례식에는 문어가 꼭 있어야 한다며, 맛있으니 많이 먹으라며 두 접시나 갖다 놓는다. 맛있다.
“전에는 장례식장에서 밥을 먹는 것이 쉽지 않았는데 우리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큰일을 치르고 나서는 이런 것들이 쉬워졌어.”
은아 언니의 말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나도 어렸을 때는 우울한 분위기에 눌려 조문 가서 음식을 먹는 것이 쉽지 않았다. 그런데 부모님 장례를 치르며 보니 장례식장 역시 또 하나의 삶의 공간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사별로 인한 슬픔과 더불어 오랜만에 만난 사람과의 이야기도 있고, 그 속에서 번져오는 웃음도 있다. 그리고 함께 나누는 식사도 있다. 그렇게 장례를 치르면서 죽음 옆에서도 삶은 이어지고 있음을 느끼곤 한다.
밥을 먹다가 옆에 앉은 정애가 조용하여 바라보니 눈이 빨갛다. 작년에 아버지를 잃었기에 장례식장에 오면 그 슬픔이 되살아 나오는 것임을 안다. 마음 깊이 그 슬픔을 넣어 두기엔 아직 시간이 더 필요한 듯하다. 4월에 어머니와 남동생을 잃은 미숙도 마찬가지인 듯 얼굴이 어둡다. 사랑하는 사람과의 사별, 아는 슬픔이고 아는 힘겨움이다. 그러기에 이렇게 먼 길을 달려온 것이다. 위로가 되기 위해.
조문을 마치고 바로 옆에 있는 죽서루를 둘러본다. 휘돌아드는 강변에 높다랗게 자리한 정자는 참 멋있다. 도심에서 5분 정도 걸어와서 만났는데 깊은 자연 속에 들어온 느낌이다. 고색창연한 누각과 푸른 대나무, 널따란 바위들이 만들어내는 풍경이 참 좋다. 영순은 고향인 이곳에서의 추억을 이야기한다. 그 가운데에는 시아버지도 들어 있다. 그들은 이곳에 오면 돌아가신 분을 추억하겠지. 때로는 슬픔으로, 때로는 그리움으로... 그런데 언제까지일까? 우리 엄마가 돌아가신 지 20년이 넘었지만 나는 아직도 애틋하게 그리워하며 기억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 아이들에게는 할머니의 존재가 희미하다. 내가 사라지면 엄마는 이 세상에서도 사라지겠지? 그런데 생각해 보면 그것이 그렇게 안타깝지는 않다. 엄마와 함께 한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엄마는 충분히 살았다는 생각이 드니까. 그리고 어짜피 유한한 인생이니 기억도 유한한 것은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니까.
바다를 만나러 간다. 커피를 마시고, 해수욕장을 걸으며 약간은 흐릿한 바다를 느낀다. 오늘, 영순의 시아버님이 돌아가셨고, 가족들은 그분과의 영원한 이별할 준비를 하고 있다. 우리는 그 죽음을 위로한 후 삼척을 여행하고 있다. 죽음은 슬프고 안타깝다. 그럼에도 그 슬픔 뒤로 삶은 계속 이어지고 있다.
(2021. 4. 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