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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상 애 May 22. 2023

06 결과판정

D-day

 <결과판정날>


 3주가 지나고 월요일 아침이 밝았다. 여느 아침처럼 먼저, 두 아이를 등원시켰다. 어린이집을 오가는 발걸음이 무척이나 무거웠다. 그나마 괜찮았던 호흡이, 조금씩 벅차기 시작했다. 심장은 점점 빨리지기 시작했다. 태어날 때 받은 청력검사 결과가 재검사 요망이 나와, 병원에 도착한 아내와 나, 그리고 아이는 병원에 도착해 청력검사를 먼저 받았다. 검사는 아이만 들어갈 수 있었고, 아내와 나는 밖에서 대기하고 있었다. 예정 시간이 지났는데도 호명되지 않았다. 무슨 문제가 있는건 아닐까.. 노심초사하며 기다렸다. 시간이 조금 더 흐르고, 호명이 되고 나왔다. 그리고, 바로 소아과로 내려갔다. 엘리베이터 안에서 한참을 생각했다. 왜 청력검사 시간이 오래걸린걸까... 설마.. 아니겠지?


 검사결과를 듣기 위해 소아과 앞에서 대기하고 있었다. 진료실 앞에 작은 문구가 눈에 들어왔다.


 '코로나19로 인해 보호자 중 한명만 들어올 수 있습니다'


 진료실에는 한명만 들어갈 수 있었다. 그 문구를 보고 대기하고 있던 아내는 내게 들어갈거냐고 물었다. 아내가 직접 듣기보다, 그래도 내가 뭐라도 먼저 듣는게 낫겠다 싶었다. 그 순간 만큼 아내에게 결과에 대한 무거운 짐을 지게 하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호명이 되고, 난 진료실 안으로 아이를 안고 들어갔다. 아이침대에 눕히곤 의자에 앉았는데, 선생님 책상위에 결과지로 보이는 화일 하나가 있었고, 거기엔 포스트잇 하나가 붙어있었다.


'양성O'


 아니나 다를까 선생님은 그 화일을 내게 주며 조심스럽게 말씀하셨다.


 "어느 정도.. 예상은 하셨겠지만, 다운증후군 검사 결과 양성으로 나왔습니다"


 순간 숨이 막혀오며 멍해졌다. 그리고 절대 예상하지 않았고, 그렇게 받아드리지도 않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화를 낼수도 아니라고 할 수도 없었다. 그저 멍하니 들을 수 밖에 없었다.


 "그외에 다른 유전자 검사는 정상으로 나왔습니다"


 선생님은 화일을 건네주시고 나서, 아이를 자세히 살펴보셨다.

 화일의 내용에는 각 유전자 검사에 대한 간단한 결과 판정만 나와 있었다. 모든게 정상 이었는데, 가장 뒷면 다운증후군에 양성이 표기되어 있었다.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머릿속은 복잡해지기 시작했다. 밖에서 대기중인 아내에게 어떻게 이 이야기를 전달해야 할까. 뭐라 말해야 할까. 앞으로 우리 아이는 어떻게 되는걸까, 우리 가족은 어떻게 살아야 하나. 기도중인 사람들에겐 어떻게 전해야할까. 도망가야 할까. 수 많은 생각들이 오가고 있었다.


 선생님께서 아이의 상태를 꼼꼼히 살펴보시곤 말씀하셨다.

 "다운증후군 특징이 있는 아이들의 경우 심장쪽이 약해서 관련 질병이 발생될 가능성이 높은데, 숨소리를 들어보니까 다행히 큰 문제는 없는것 같아요. 그러나 청력검사도 다시 추가 검사를 해봐야 하고, 또 여러가지 질병에 취약해서 종합검진을 받아봐야 합니다. 희망하시는 대학병원을 말씀해주시면 의뢰서를 써드릴게요. 어디가 편하세요?"


 선생님의 말에 쉽게 답할 수 없었다. 보통 의료 관련해서 아내가 전적으로 담당하고 있는 부분도 있었지만, 먼저 아내에게 이 이야기를 어떻게 전해야 하는 생각만 가득했다.


 -"아.. 지금 당장 결정해야 하는거 아니면, 아내와 상의하고 말씀드려도 될까요?"

 "네.. 상의하시고 접수쪽에 말씀해주시면, 써 드릴께요"


 인사를 하고, 아이를 안고 진료실 문밖을 나섰다. 문 밖을 나서자 밖에서 기다리던 아내가 나를 쳐다봤다. 어떻게 이야기 해야할지 결정하지 못했었다. 결국 난, 순간 너무 어두우면 안될것 같다는 생각에 아내를 보고 그저 부자연스러웠지만, 살짝 미소를 짓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아내애게 검사 결과지를 전했다. 아내는 결과지를 훑어봤다.


 이내 곧 아내는 한쪽에서 눈물을 떨궜다. 소리내서 울지도 못하고, 눈물만 흘렸다.


 병원에서 빨리 벗어나고 싶었다. 유독 그 날따라 병원 천장이 낮아 보이고, 좁아 보였고, 답답했다.

 예방접종을 해야 했고, 협력병원도 전달해야 해서, 대기 시간이 있었는데, 너무나 그 시간이 길게 느껴졌다.


 예방접종을 마치고, 대학병원도 전달하고, 수납하고 빠른 걸음으로 병원밖을 나왔다. 그리고 차가 주차되어 있는 곳 까지 걸어갔다. 밖에 나와서 였을까, 아니면 검사 결과를 막상 들어서 그런걸까... 순간 호흡이 안정되기 시작했다. 그렇게도 터질 것 같던 심장이, 긴장감으로 잔뜩 예민해진 온몸과, 말도 할 수 없정도로의 감정으로 휘몰치던 내 상태가, 오히려 안정 상태가 찾아오기 시작했다. 침착해지기 시작했다. 


 차에 타고, 기도중이신 목사님께 전달드리고, 집까지 거의 아무런 대화하지 않고 조용히 왔다. 우리부부는 차에서 굉장히 많은 대화를 하는 편이다. 일상적인 대화도 많이 하고, 시답지 않은 농담도 많이 했는데, 여느때와는 달리 조용했다.


  집에 도착하고, 난 아내를 안고 미안하다고 말했다. 아내도 내게 미안하다 말했다. 뭐가 미안한걸까. 우리는 서로가 그리 뭐가 미안했던걸까... 다시 참았던 눈물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한참을 안고 울다 정리를 하고, 아내는 피곤에 지친 아이를 데리고 작은 방에 들어가 누웠다. 그리고 난 거실에 멍하니 앉아 있었다. 수 많은 생각이 오가다가, 그 마저도 시간이 흐르고, 먹먹해지고 멍해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불과 몇시간 전까지 그렇게도 요동치던 심장은 침착했다. 

 그렇다고 모든 것들을 받아드린 건 아니었다. 이해할 수 없었다. 왜... 도대체 왜.

 그리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나...


 달라질 건 하나도 없었다. 그저 하나씩 하나씩 받아드려야 했다. 내가 할 수 있는건 여전히 아무것도 없었다. 가장으로써 아빠로써 해야할 일들을 하나씩 하는 것 외엔 아무것도 없었다. 그날 오후 아내와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어떻게 앞으로 해야할지. 어떤 것부터 해야 하는것인지 이야기 했다. 큰 아이에겐 막내가 다른 아이와는 달라 조금 느릴 것 같다는 이야기만 했다. 여느 형제들처럼 지내길 바랄 뿐이었다. 막내의 아픔이 이 아이들의 아픔이나 상처가 되지 않길, 짐이 되지 않길 바랄 뿐이었다.


 그날 두 아이와 함께 생활하는 것도 순간 너무 자연스러워졌다. 얼굴조차, 아니 그들의 그림자조차 보는 것이 힘들었던 내가 두 아이와 함께 익숙하게 함께 하고 있었다. 이제야 조금씩 다섯명이 한 공간에 있음이 느껴졌고, 함께 살아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시작했다. 그날 저녁 힘들었지만, 모든 것들을 받아드릴 수 없었지만, 가정예배로 비로소 다섯식구로써의 모습으로 첫 걸음을 내딛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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