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슬픔

-시와 에세이 경계에서-

by 김휴

책의 슬픔

-시와 에세이 경계에서-


새가 시집을 물고 왔다.


분명 수신인에 내 이름 두 자가 또렷한데도

책이 나를 보자마자 울먹인다.

이건 아니라는 생각이지만

그냥 책의 심정을 받아들이면서 펼칠 수가 없었다.


사실 펼친다 해도

어느 한 페이지도 소화할 수 없는 불능상태,

사유의 부작용으로 가시를 두른 선인장이 되어버렸다

그래서 이젠 바람도 느끼지 못 하고

설사 바람이 분다 해도 이런 상황이면 바람이 다칠 수밖에 없다.

내 가시는 불안정을 말하는 것이었다.


마침내 심한 궁금증으로 책을 펼친다.

시들이 이방인들처럼 두리번거리며 나를 거부하려 한다.


아파 신음 중인 시에서 눈이 멈추고

이내 시에 빠져들고 만다.

시가 나를 데리고 싯푸른 바다로 나간다.


바람은 거세고 파도는 거칠고

나는 하얀 부표처럼 떠다녀야 했고


어제의 잘못을 고백해야겠지만

누구보다 정직해야 하는 대목에서

시보다 더 솔직했다며 연기를 하다가 결국 울고 말았다.


이럴 것 같아서

내 정신에 꽃무늬 벽지를 발랐다.


꽃무늬 벽지가 주인의 고민을 숨기려

더 화사해지려 한다.


글. 김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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