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이 바닥났네

-시와 에세이 경계에서-

by 김휴

슬픔이 바닥났네

-시와 에세이 경계에서-


사귀던 구름과 헤어진 건 오래전 일인데

몇 날 며칠, 흐린 프레임에 갇혔다.

이런 불투명한 날은,

그 까닭을 모르지만 글쓰기 좋은 날처럼 생각했었다.


뭔가 될 것 같아서 자판을 두들겨 보지만

문장은 없고

삐끼 같은 달콤함만 나열해 놓았다.

은유를 빙자한 관념이라니…


이대로 나가서 새떼를 따라가 버릴까?


날개를 팔아먹은 지도 오래다.

동거하던 구름은 이런 답답한 인간과는 못 산다며

새벽같이 도망쳐버렸고

날개는 내게 장식품에 불과했다.


그렇게 내 사유의 어깨죽지는 겨울처럼 앙상하게 드러났다.


비틀즈는 너무 단정해서 재미없어.

그래 밥말리라도 데려와서

꼬인 생을 레게 회오리로 더 꼬아 버릴까?


친구를 만나면 설렁탕처럼 담백해서 재미가 없어.

영화는 숨겨놓은 심정을 자꾸 건드려서 싫어.


그럼 누굴 불러내지?

뭘 하면 재미있을까?

적당히 불량했던 내 친애하는 것들은 다 도망쳤어.


내일쯤이면 연체된 그것들이 다 날아올 텐데…

내가 도망치기 전에

낌새를 챈 노을이 녹슨 자전거처럼 삐걱대며 달아난다.


지랄 같아

슬픔이 저 먼저 달아나네.


글&사진. 김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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