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쪼가리소설. 휴 콩트-
돌아온 데미안
-쪼가리소설. 휴 콩트-
헌책방을 꾸리고 있는 인철은 늘 헌책처럼 정신의 각이 없다.
팍팍한 직장 생활도 그를 힘들게 만들었고
조금은 여유있는 생업을 만들고 싶어서 헌책방을 인수했었다.
스물에 접어들었을 때 사랑을 시작했지만
그게 나의 일방적인 생각이었다는 것을 나중에 알았다.
그녀를 만나고 첫 선물로 책 한권을 주었는데 그 책은 데미안이었다.
인철은 데미안을 고등학교 때 한 번 읽었던 기억뿐이었고
솔직히 읽긴 했지만 난해하다는 생각뿐이었다.
정말 멋진 선물이라며 그렇게 좋아하던 그녀는
데미안에 깊이 빠져들면서
인철이 아는 범위 내에서만 여러 번 탐독했다는 것은 알고 있다.
그렇게 데미안에 빠져버린 그녀는 언제부턴가 밖을 나오지 않았고
인철에게 그만 만나자는 말까지 던졌다.
영문도 모른 채 인철은 그녀를 잊기로 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녀의 자살을 전해 들었고
데미안을 펼쳐놓고 죽었다는 것이었다.
살아오면서 어쩌다 서점을 만나면 그녀와 데미안을 동시에 떠올리곤 했다.
그런 이유로 한동안 그는 서점이 있는 길을 피해다녔다.
그런데 지금 그는 헌책방 거리에서 작은 서점을 꾸려나가고 있으니
삶이 드라마 같다는 말은 공감이 가는 진실 같았다.
그냥 헌책 냄새가 좋고 누추한 분위기도 좋아서 그런다고 이야기하곤 한다.
어느 날, 중학생 정도 되보이는 친구가 책 몇권을 들고왔다.
두 권은 중학생 교과서였고 한 권은 동화책, 그리고 한 권은 데미안이었다.
만원짜리 한 장을 받아든 학생은 좋아라 가버렸다.
다른 책들은 제 칸에 꽂아놓고
데미안을 들고 인철은 책상으로 가 앉는다.
그리곤 데미안을 내려놓고는 한참 내려다 보고 있다.
데미안 때문에 책방을 멀리 했던 그 시간들이 스쳐 지나간다.
첫 장을 펼치자마자 인철은 속지에 두 줄 문장에 숨이 멎는다
“스물한 번째 생일을 축하해~
인철이가 현숙에게, 1998년 10월 15일”
왜? 왜?
이 책이 내게로 돌아왔을까?
순간, 세상이 급브레이크를 밟는 것 같았고
생각이 과거로 쏠리면서 뭔가가 머리를 강타하는듯 했다.
인철은 출근해 시간만 나면 데미안을 읽고 있다.
읽고 싶어서 읽는다기보다는 그녀의 심리을 알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듯 했다.
거의 정독을 하다시피 하고 있다. 독서라기보다는 탐색처럼 보인다.
어느 페이지에서 밑줄을 친 문장이 보인다.
/내 속에서 솟아 나오려는 것, 바로 그것을 나는 살아보려 했다.
왜 그것이 그토록 어려웠을까?/
여기서 헛바퀴 돌 듯 속도가 나가지 않았다.
여러 날 걸려 마지막 장을 읽고나서 인철은 눈을 감는다.
책을 덮어려는데
뒷 속지에 몇 줄 문장이 보인다.
“너는 너무 현실적이었고,
그날 이후 나는 나의 데미안을 기다렸어. 그런데 결국 오지 않네.
신 아브락사스에게 날아가야 하는데 길을 모르겠어. 철아 미안해!”
정신마저 아득해지는 일이었다.
왜 이 책이 나를 찾아왔을까?
뭐 때문에 돌아왔을까?
글. 김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