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에세이 경계에서-
내가 말라간다
꼬챙이처럼 말라간다는 말이 온전하게 이해가 된다.
요즘 내 사유가 꼬챙이처럼 말라간다.
사유가 말라 죽으면서
정신도 말라가는지도 모른다.
알맹이가 빠져나가면
껍데기는 슬픈 장르일 뿐이라는
막연하기만 하던
그 꼴 난 그리움마저 말라버린 것도
애잔해진 몰골과 연관 있을 것이라 믿으면서
나와 연관된 모든 것들이 말라간다는 이야기겠다.
한때의 뜨거웠던 열정을 느끼고 싶었다.
한구석에 꽂아둔
못난 시집 ‘물을 연습 중이다’를 펼친다.
어떻게 된 거지?
물이 다 말랐다.
쩍쩍 갈라진 바닥에는
말라비틀어진 문장들이 나뒹군다.
불량하기 그지없는 내 시집에 기거하던
어머니도 비닐장판처럼 말라붙었다.
미안해하기에는
내가 이미 꼬챙이 장르에 들었으니
살이 날마다 도망치고
뼈는 하염없이 흐느끼고
그믐밤보다 더 어두운 질량의 우울감!
빼빼로 같은 사유가 달빛에 부러진다.
글. 김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