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애 첫 외근
내일 뭐 입지? 아침에 빨리 일어나서 화장도 좀 해야겠다
야근하고 피곤만근했지만 내일 중요한 미팅이 있으므로 의상을 미리 머릿속에 구상했다. 내일로 말할 것 같으면 인생 첫 외근이자 연예인을 만나러 가는 날이다.
현재 진행하고 있는 프로젝트 중 연예인 A군과 콜라보 작업이 있다. 그 미팅에 내가 함께 간다는 것!(룰루) 이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대한민국 탑 여배우라는 전지현을 실물로 영접하는 영광도 누렸다. 사족이지만, 그녀의 실물은 얼굴에서 광이 났고 이 세상 사람이 아닌 듯 매우 스키니했다. 비록 그녀를 먼 발치에서 지켜보는 것이 전부였으나 이번 미팅은 달랐다. 진행되는 프로젝트 내용을 직접 A군에게 설명하고 협의를 구하는 자리다. 고로 가까이서 마주할 수 있다는 것!
D-DAY. 그의 일정에 맞춰 우리는 늦은 저녁 강남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먼저 도착한 우리는 음료를 시키고 긴장되는 마음에서 인지 가벼운 침묵을 지키고 있었다. 얼마 지나 찰랑 하는 문소리와 함께 마주친 A군! '오! TV보다 잘생기셨군!' 싶은 찰나의 순간도 잠시! 나는 어떻게 인사를 해야 될지 우왕좌왕 엉덩이를 들썩들썩 엉거주춤거리기 시작했다. 나와 달리 함께 갔던 과장님과 선배님은 긴장한듯했지만 이내 명함을 내밀며 차분히 자신을 소개했다. 나 역시 명함을 챙겨갔으나 인턴인데 감히 명함을 내밀어도 될까 싶은 내적 갈등으로 어버버 하는 사이 타이밍을 놓쳐 결국 내 소개를 못했다.
하지만 이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이때부터 나는 꿔다 놓은 보릿자루처럼 그 미팅에서 한마디 입도 떼지 못했다. 상대방에게 우리 프로젝트를 설명하고 설득하는 자리였으므로 행여 실수할까 한마디 조차 조심스러웠다. 로보트 같은 미소를 띄며 그 자리에 박제 된 듯 얼어있었다. 설상가상 그는 우리가 생각했던 방향과 전혀 다른 의견을 제시하는 게 아닌가. 무리한 요구에 아마추어처럼 표정 관리가 안돼 표정으로 당혹감을 그대로 드러냈고, 여전히 말 한마디도 못한 채 과장님이 이 난감한 상황을 빨리 정리해주길 기다렸다.
2시간 같은 1시간이 흐른 뒤 '추후 다시 연락드릴게요'로 급히 그 미팅은 마무리가 됐다. A군과 매니저가 먼저 자리를 떴고 '휴' 그제서야 숨이 쉬어지는 기분이었다. 나 혼자 그 1시간 동안 침묵 속에 발단-전개- 위기-절정-결말을 내며 진을 빼고 있었다. 심적 스트레스는 엄청났지만 정해진 내용은 하나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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퓨슉퓨슉. 바람 빠진 풍선처럼 늦은 퇴근길 버스에 올랐다.
잔뜩 들떠있던 오늘 하루였지만 미팅 때 내 모습은 너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오고 가는 내용을 따라 가지 못해 어설픈 리액션만 남발하고, 쟤는 왜 따라온거야 싶을 만큼 애매한 포지션으로 그 자리에 불편히 존재하다 왔다. 연예인을 본다는 설렘으로 내 본분을 망각했나보다. 난 너무 준비없이 그 자리를 따라 나섰단 부끄러움이 뒤늦게 선명히 올라왔다.
한편으론 분위기가 안 좋았던 미팅임에도 당황하지 않고 준비했던 이야기를 찬찬히 해내던 팀원들을 보며 경외심이 느껴졌다. 그래, 이게 프로와 아마추어의 차이구나.
"역시나.. 아마추어 시군요?"
네네, 맞습니다. 하지만 두고 보십시오! 다음 미팅 땐 어떤 아우라가 뿜뿜하는 상대 앞에서도 평온한 미소를 유지하며 제 의견을 펼치는 프로가 될 겁니다. 아, 바로 다음 미팅 때 말고 그래도 가까운 미래에요..
오늘의 미팅으로 배운 점
1. 첫 인사 미리 생각하기
“올 때 차가 막히진 않으셨어요?”
“(명함을 받으면)아, 사무실이 여의도시네요”
2. 명함은 자신을 소개하며 전달
- 상대방에게 내 이름이 잘 보이도록
3. 미팅의 목적 바로 알고 체크리스트 숙지
4. 당황&긴장한 티를 너무 나지 않도록 표정에도 유의
5. 펜, 노트 등 문구용품도 미팅용 따로 준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