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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마 Jun 10. 2019

얼마나 열심히 해야 정규직 될 수 있나요?

하. 과장님의 한숨 소리가 깊었다. 과장님은 사무실 문 앞을 여러 번 서성거렸다. 직원과 일대일 면담을 하기 전 과장님이 보이는 태도였다. "봉이씨, 잠깐 회의실에서 봐요" 오늘은 그 면담 대상이 나였다.


과장님과 마주한 조용한 회의실. 가뜩이나 회사에선 늘 쫄보 모드지만 이런 분위기 속 개인 면담은 더 나를 불안하게 했다. 어색한 침묵이 이어지고 과장님이 어렵게 입을 여셨다.


“봉이씨는 아까 대표님이 하신 말이 무슨 뜻인 것 같아요?” 

"네?"

"나는 봉이씨가 정직원이 안될 거란 생각을 한번도 해본 적이 없어요. 근데 아까 대표님 말씀하시는 걸 보고 대표님 생각은 조금 다르다고 느꼈어요. 이대로는 그 끝을 알 수가 없겠어요. 우리 같이 전략을 짜봅시다"


뭐요?(털썩) 같이 전략적으로 열심히 해보자가 아닌 대표님은 나를 정직원으로 들일 생각이 없다는 것에 나의 방점이 찍혔다. 온몸에 힘이 다 빠졌다. 몇개월 동안 불철주야 불평 없이 굳은 일 자처하며 혼신의 힘을 다하는데 대표님 성에 차기까진 아직 부족하니 더 열심히 해보자는 소리세요? 과장님의 의도야 어찌 됐든 나는 깊은 분노, 그리고 깊은 무력함을 느껴버렸다.





우리 회사는 몇 개월간의 인턴십을 통해 정직원 전환과 퇴사로 갈린다. 그 관문이 어렵기로 소문난 회사다. 그렇게 5개월 차에 접어들었고 그 고지가 바로 코앞에 온 시점이다. 심지어 나는 잘한다는 칭찬도 곧잘 들었고 내가 속한 프로젝트가 대대적인 성공을 맛보고 있는 시점이었다. 차라리 평가 기준이 명확하면 덜 억울하기라도 하지! 아무리 열심히 했어도 대표님 성에 안 차면 그만이란다. 칭찬과 성과에도 그 끝이 명확하지 않아 목메게 했던 그 골인 지점. 이제 겨우 윤곽이 드러나나 싶었는데 그게 결국 탈락일 지도 모른다는 말을 들었을 때 하, 그 허탈감이란.       



얼마나 더ㅠ_ㅠ..




이런 결과를 전혀 예상 못 한 것은 아니다. 입사 전부터 수습 기간 후 결정한다는 것은 서로가 합의했으니까. 온 직원이 입을 모아 YES를 외쳐도 결국 대표님이 NO를 외쳐 나간 수많은 인턴에 대해 익히 들어왔던 터다. 그래서 언제 팽당할지 모른다는 압박감을 잊은 적 역시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제 그게 내 일이 되는 것은 또 다른 이야기였다.




더 열심히 해서 유종의 미를 거둬보자는 과장님의 의도를, 동기부여 차원에서 했을지도 모르는 과장님의 의도를 내가 왜곡했는 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시점에' 그 말은 나에게 동기부여가 아닌 이 악물고 지금까지 견뎌왔던 내 의지를 꺾는 말이었다. 왜냐하면 나는 지금도 내 한계치를 넘어서는 최선을 보이며 내 건강도 소중한 사람과의 시간도 만사를 제치고 힘든 것을 꾸역꾸역 눌러놓았으니까. 한 방울만 더해도 금방이라도 터질 것 같은 상태니까. 그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내가 성에 안 찬다면 내가 회사에 내보일게 더는 없었다. 그래서 무력함을 느껴버렸다.


얼마나 더 잘해야 정직원이 될 수 있는 걸까


열정페이, 밤낮 없는 업무, 수시로 바뀌는 스케줄. 그래, 다 괜찮았다. 배움과 성장이 그에 대한 모든 보상을 해주고 있었다. 여기서 배우는 기쁨이 컸기에 나는 할 수 있는 모든 최선과 의욕을 120% 매일 같이 쏟았다. 하지만 나를 돌보지 않은 시간은 청춘의 열정으로도 감당하기 어려울 만큼 이미 턱 끝까지 차오른 상태였다. 더 이상 '배움과 성장'이라는 보상도 내게 힘을 못 쓸 만큼.



나에겐 2가지 선택이 남았다.


1. 과연 내가 합격일지 불합격일지 이 악물고 끝까지 끝까지 버텨보는 것

2. 어차피 합격해도 힘든 회사, 지금이라도 그만두고 새로운 일을 준비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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