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용과 원칙 사이

저녁식사를 끝내고 나와 남편은 산책을 나가고 아들은 영어학원에 갔다.

딸은 혼자 집에 있다가 전화를 걸어왔다.


"엄마 나 라면먹어도 돼?"

한창 먹을 때이니 식사량이 모자랐나 싶어 냉장고 안의 과일 먹기를 권했지만 아이는 딱 라면이 먹고 싶단다.

집에 하나 남은 투움바 라면이 생각나서 그걸 다 먹고 나야 더 이상 라면~ 라면~ 노래를 안부를거 같아서 그러라고 했다.


"근데 난 투움바 말고 불닭볶음면이 먹고 싶어. 엄마가 산책하면서 사가지고 오면 안돼?"

다른 부탁은 들어 줄 수 있지만 건강한 선택을 하지 않는 아이의 필요이상의 욕구를 수용하는게 싫었다.

부모가 원치 않는데 본인이 원하면 스스로 해야 한다고 말해왔지만 아이는 번번히 나를 시험한다.


"응 안돼. 그건 네가 직접 사와야 할거 같아. 집 앞 편의점에서 사면 멀지 않아."

딸은 샤워도 했고 옷도 갈아 입었다며 돈을 더 주겠다고 했다.

돈으로 설득하려는 짧은 생각이 나로썬 황당했다.


"좋아 그럼 10만원 줘."

이내 딸은 내가 협상의 여지가 없음을 깨닫고 전화를 끊었다.

어차피 마트에 들러서 집에 갈 계획이었으므로 딸의 부탁을 거절한 것은 매우 찜찜하고 불편했다.

너그러움과 원칙의 경계가 혼란스러운 지점이다.


남편과 “원칙을 지키자!”고 다짐하며 불닭볶음면 앞까지 갔다가 마트를 나섰다.

도어락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는지, 우리가 현관문을 여는 순간 혹시나 하는 마음에 나온것 같은 딸이 문 앞에 서 있었다. 하지만 끝내 불닭볶음면을 들고 오지 않은 부모를 본 딸의 표정엔 작은 실망이 스쳐 지나갔다.


아 정말 이런 순간은 나를 나약하게 만든다.

"딸 미안. 담엔 사다 줄게."

원칙을 지켰지만 너그러움에 진 순간이다.


오히려 아이는 덤덤하게 받아들였다.

"괜찮아. 투움바도 사 놓은거 다 먹어야지 뭐."


연약함은 부모의 몫인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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