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딸을 진짜 사랑하고 있구나.

밤에 샤워를 하려고 보니 먼저 샤워한 딸의 옷가지들이 화장실 앞에 널부러져 있었다.

딸에게 치워 줄것을 요구했지만 "잠깐만" 하고 돌아온 대답뒤에 아무런 행동이 없었다.

씻고 나온 뒤에도 여전히 지저분한 상태여서 다시 요청했다.

또 다시 돌아온 건 굳게 닫힌 딸의 방문 안에서 들려오는 알았다는 대답 뿐이었다.


11시가 넘어서야 딸이 방을 나오면서 말했다.

"엄마 클래스룸 앱 시간 좀 풀어줘. 숙제 제출해야 해. 빨리 빨리"

"알았어 잠깐만"

그러고 나는 아무일도 하지 않았다.

"엄마 클래스룸 앱 좀 풀어달라니까"

"그래~~"

나는 읽던 책을 마저 읽고 있었다.


딸은 내가 평소와는 다르다는 낌새를 알아채고 안방 화장실 앞을 정리해가고 있었다.

"딸~~ 네 덕분에 인내심을 배웠어. 너도 나를 통해 인내심을 배우면 좋겠다."


"엄마 정리했어. 앱 시간 좀.. 아니다 됐다 내가 알아서 해볼게"

하더니 숙제를 제출하러 방으로 들어가버렸다. (어떤 방법으로 했는지는 모르겠다.)

잠시 뒤 나오면서 자신이 왜 그랬는지와 속상한 감정들을 마구 쏟아 냈다.


"너무 급해서 그랬어. 숙제가 있다는걸 깜빡했다니까. 씻고 나서 친구랑 통화하다가 역사 수행이 있었다는걸 들었고 11시까지 제출이었는데 3분전에 제출하게 된거야. 그래서 10초도 아까웠고. 엄마가 화난건 알겠는데 그렇게 비꼬면서 말하지 말았으면 좋겠고. 엄마도 수행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잖아. 시험 30% 수행20% 어쩌고 저쩌고"


사실 나는 듣기도 전에 저것은 변명이다 라고 단정지었던거 같다.

인내심을 키우긴 커녕 인내했던 시간 동안 차곡차곡 화가 쌓여 너도 당해봐라 했던 점을 인정한다.

나때문에 화가 난 사람에게 "일단 심호흡좀 하자" 라며 그 감정이 불합리한 것처럼 느끼게 한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그때는 몰랐다.


"치우는데 얼마 걸리지도 않아. 나가면서 가지고 나가면 되는 거잖아. 변기를 썼으면 물을 내리는 것이 하나의 세트이듯 나눠서 생각할 게 아니라고!"


시간이 늦어지고 있었기에 안방에 들어가서 이야기 하자고 했지만 딸은 할 게 더 남았다며 방으로 들어가버렸다. 잠자리에 누운 나는 '참 내 말을 안들어주네. 내 말이 안들리나 보네. 답답하네' 라고 생각하며 속상한 기분이 좀처럼 풀리지 않았다. 그럼에도 이대로 서로 속상한채 하루를 마무리 하는 건 싫어서 전화를 걸었다.


"자? 왜 방에서 얘기하자는데 그냥 가버렸어?"

"무서웠어. 혼나게 되는 상황이. 어차피 잘 풀리지도 않을거고 난 화가 나면 다른 사람 말이 전혀 안들린다고.."


다음날이 되었지만 나는 어제의 상황을 비디오 재생하듯 돌려보고 또 돌려보았다.

딸을 그저 말 앋듣는 사춘기 아이라고 단정 지어버리는 것도 싫고 감정 조절이 어려운 불쌍한 아이로 만들어버리는 것도 싫었다. 그 판단을 뚫고 딸의 입장에 가닿으라고 더 노력하라고 내 마음은 자꾸 나를 떠 밀었다.


그리고 딸의 한마디 한마디가 재생될 때마다 이해받고 싶은 욕구때문에 이해해주지 못한 내가 보였다.

그 순간 내가 옳다고 믿었던 생각들이 흔들리면서 미성숙했던 내 모습을 견디고 있었을 딸 때문에 가슴이 먹먹해졌다.

나는 사랑하는 사람에게 상처를 준 나와 마주했다.

그것은 불편하고 아프지만 나를 나아가게 했다.


그렇게 받아들이고 이해하는 마음의 소화과정이 끝나고 딸에게 사과의 카톡을 남겼다.


"말을 안들어 준건 나였어.

그와중에도 너의 기분과 상황을 얘기해줘서 너를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어.

나도 너를 통해 성장하고 배우고 있어. 고맙고 사랑해"


딸은 여전히 너무나 관대하게 나를 용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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