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이 갔지 꿈을 보낸 건 아니다.

by 김윤철


모처럼 맑은, 해가 보이는 가을다운 하늘. 그것도 일요일. 집 앞 탄천은 활기가 넘친다. 그 모진 바이러스도 계절을 이기지는 못 하는 모습이다. 공스장에서 체력 단련하는 젊은이들. 레깅스 차림의 조깅족. 나도 그 한 자리 차지하고 철봉과 평행봉. 저 쪽에서 마스크로도 가릴 수 없는 주름진 얼굴로 굽은 허리 힘주며 자전거 페달을 밟으시는 어르신이 보인다. 스타킹 차림의 젊고 멋진 라이더들과는 차이나는 모습이지만 나름 노년의 멋이 풀풀. 물론 일흔 나이인 내 눈이지만. 관형적 표현을 빌리자면 남녀노소 모두 긴 장마 뒤의 가을을 즐기고 있다.

지루한 시간을 보내려 채널을 돌리던 중 찾은 텔레비전의 한 프로. 개그에 가까운 난센스 퀴즈 놀이. “옥탑방의 문제아들” 내가 즐겨 보는 방송 중 하나다. 그 문제 하나. 나이 든 분들의 공통 관심사인 장수에 관한 문제. “목적을 가진 분들이 장수한다.”는 말.

친절하게도 행복한 사람들이 장수하는 것과 같은 논리란 자막까지.

몇 년 전 신문 가십난에서 암 진단을 받으신 소설가께서 집필을 위해 항암 치료를 거부하고 산속 생활을 택하셨단 기사를 읽은 기억이 있다. 치료를 하지 않으면 육 개월이란 시한부 선고를 받으셨지만 3년에 걸쳐 세 편의 단편을 탈고하시고 지금도 새로운 소설을 집필 중이란 친절한 근황 소개까지. 아니 지금 생각하면 내가 병원 신세를 지기 전이니 몇 년이 아닌 십 년도 훨씬 전의 이야기다.

나이 탓 인지 할 일 없는 사람의 특권인지 시간 개념에서 해방이다. 그 뒤의 소식은 모른다.

다른 분들은 모르겠지만 나는 거의 평생을 착각 속에서 살아왔다는 생각을 하는 사람이다. 남들 목표를 위해 열심히 살 동안 이상한 사람 소리까지 들으며 남들 눈에는 위험하게만 보이는 암벽과 빙벽 등반을 하고 산악 동계 트레이닝을 하며 그것이 진취적인 삶이라 만족해하며 살아왔다. 지금 생각하면 정말 어리석은 생각이 아닐까? 그렇다고 후회하는 것은 아니고 지금도 그렇게 살고 있다.


오늘은 아침 운동 후 거의 1 년 만에 노인 복지관으로. 출입이 공항 출국 수속만큼이나 까다롭다. 안내판에 붙은 전화번호로 굳게 닫힌 출입문을 열고 안내에 따라 손 소독을 하고 체온 측정을 하고서야 겨우 용무가 있는 복지사님과 상담.


환경지킴이 자원봉사자 지원. 좀 더 보람찬 노년을 보내야겠다는 생각에 큰마음을 먹었지만 이 또한 나의 착각이 아닌지 확신은 서지 않는다. 브런치 활동, 기타와 사진 배우기 등 나름 부지런히 산다고 생각하지만 장수의 비결인 목적 있는 삶인지는 모르겠다.




글로별 시대의 특권! 손자 녀석과 화상통화 한 토막!


‘할아버지! 토네 해봐. “

“토매.”

“토네.”

“토매”

“이도우.”

“이도우.”

“토네이 도우!”

“토매 이도우!”

“토네이 도우!”

“토매 이도우”

“할아버지 먹는 것 아니야.”

“바람? 윈드?”

“아빠! 토네이 도우 맞다.”

“아가 토네이도를 우예 아노?”

“어제 유튜브에서 봤다.”


손자는 내년에 유아원에 등록하는 네 번째 생일을 앞둔 아직 어린애다. 영어 토네이 도우는 알지만 태풍이란 우리말을 모르니 발음으로 설명한 것이다.

영어 정말 어렵다. 특히 어린이들과의 대화는 무슨 벽보고 하는 것 같다. 어른들과의 대화는 바디 랭귀지를 섞으면 어느 정도는 통하지만 초등학교 저학년 또래의 애들과는 대화가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면 된다. LA에는 멕시칸이라 불려지는 히스패닉 계열의 사람들이 많다. 이들의 스페인식 발음은 알아듣는 애들이 내 영어는 하나도 모르겠단다. 딸의 말. 나만 그런 게 아니라 한국 이민자들 대부분의 문제란다. 중학교 입학 때부터 고둥학교 졸업 때까지 가장 많이 하는 공부가 영어, 수학인데 초등학생들과도 대화가 안 되다니 그 참!



딸이 멀리 있으니 쓸데없는 걱정도 생긴다. 기우란 걸 너무나 잘 알지만 시간이 부유하니 한 번씩. 유치원에 입학한 손녀는 온라인 수업을 하니 우리와 통화를 자주 한다. 친구들과 만나면 외조부야 곧 잊겠지만 코로나 물러 갈 때까지는 친구가 되어주어야겠다는 생각.


영어 못 하는 우리와 대화하다 영어가 안 늘면 어쩌나 이것도 걱정, 이 녀석들 우리나라 와서 “할아버지 뜨신 물 안 나온다.” 이런 소리 할까 이것도 걱정. 참 행복한 걱정! 그래서 영어 한 마디씩 섞어주려 노력 중! 덕분에 집안 곳곳에 포스트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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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 오늘 재밌었어? 엄마는?”

“설거지하고 있다.”

“설거지! 워싱 디쉬.”

처음엔 못 알아듣더니 발음 교정을 해 준다.

“워 워 워싱!” 따라 해도 잘 안되니 몇 번이나 반복해준다. 할애비 가르치는 게 재미있는 모양이다. 입모양을 자세히 보니 워가 원순 모음의 형태다. 워싱이 아니라 우워싱에 가까운 입 형태.

누나의 영어 강좌를 기억한 손자가 토네이도 발음을 내게 전수한 것이다. 십 년 넘게 영어 공부한 할애비 체면 참!


문화의 차이인지, 우리말의 우수성 때문인지 우리나라는 발음 공부를 따로 하지 않는다. 그런데 미국은 글자에 앞서 발음부터 먼저 가르친다. 문제는 발음은 점수화하기가 힘들다는 것이다. 입시가 중요한 우리나라 교육. 대학 입시에서 영어가 빠진다는 말은 벌써부터 있었다. 반대야 있겠지만 그것도 방법 중의 하나가 아닐까 생각!


지금 내가 하고 있는 것들은 목표, 아니면 목적. 이것조차 구분이 되지 않는다. 목적이 아닌 목표란 생각! 목표는 이룰 수 있고 이루고 나면 허망한 기분이 드는 것. 목적이란 나아가야 할 길이 아닐까란 개인적 생각.

일흔 나이에 목표를 세우고 목적을 향하여 한 걸음씩. 약간은 나이에 어울리지 않는 단어가 아닌가 생각. 더구나 몇 년 전 자전거 대신 인라인 스케이트를 타겠다는 말을 꺼냈다가 아내와 딸에게 싫은 소리 들은 기억. 자전거는 항문 질환 걱정. 대신 인라인으로 하체 운동. 마나님 말씀. “나이 들어 넘어지면 약도 없다.” 바로 깨갱!

그래도 오늘도 아침 운동 후 1시간가량 기타 연습. 복지관 방문 후 이렇게 브런치와 씨름하고 있다. 며칠 후면 암 정기 검진.

오래 살고 싶다는 생각보다 목적을 향해 살고 싶다는 조그만 바람!


“세월이 갔지 꿈을 보내지는 않았다는 70! 노친네의 자존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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